[르포]골목마다 시신 냄새… 생지옥 된 산간마을

아미즈미즈=김기윤 특파원 2023. 9. 1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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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120년만의 강진]
모로코 지진 현장 르포
스페인 구조대, 수색견 동원 허사
주민 “손길 안닿은 곳 훨씬 많아”
모로코 아미즈미즈에서 11일(현지 시간) 주민들이 무너진 집의 잔해 속에서 가구 조각을 꺼내 옮기고 있다. 아미즈미즈=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아미즈미즈=김기윤 특파원
“여기 냄새가 이상해요. 아무래도 사람(시신)이 있는 것 같습니다.”

11일(현지 시간) 찾은 모로코 중부의 산간 지역 소도시 아미즈미즈. 천년 고도(古都) 마라케시에서 차로 1시간 거리인 이 조용한 소도시는 8일 모로코 중부에서 발생한 규모 6.8의 강진 이후 생지옥으로 변했다. 기자가 도시에 들어서자 흙바람과 함께 시신이 부패할 때 나는 듯한 악취가 코를 찔렀다.

건물이 가루처럼 무너져 내린 한 골목에선 이 냄새가 유독 강했다. 주민들은 “이 구역에서만 260명 정도가 죽은 것 같다. 신원을 확인하지 못한 시신이 건물 잔해 속에 있는 것 같다”면서 분주히 건물 안팎을 오갔다. 이번 지진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한 주민은 “모텔로 쓰이던 건물이라 안에 몇 명이 머물고 있었는지, 누가 있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현장에 있던 스페인 구조대는 구조탐색견까지 동원해 생존자를 찾으려 안간힘을 썼지만 날이 저물 때까지 허사였다.

진앙으로부터 북동쪽으로 약 20km 떨어진 이 도시는 이번 지진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도시 중 하나다. 모로코 강진으로 인한 사망자가 12일 기준 2862명에 육박한 가운데 인명 구조 골든타임인 발생 후 72시간이 임박한 상황에서도 구조 활동에는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 인근 산악 지대 사정을 잘 안다는 한 주민은 “산맥 안쪽으로 깊이 들어가면 구조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은 한참 더 많다”며 울먹였다.

지진 65시간 만에 정부 구조대… 주민들 “장례까지 마쳤다” 분노

모로코 지진 현장 르포
“정부 기다렸다면 사람들 더 희생”
텐트서 머물며 구호품車 기다려
“담요-약-식량 등 모든 게 필요해”

12일 기자가 찾아간 아미즈미즈는 마을이 자리 잡은 언덕을 따라 위로 올라갈수록 곳곳에 전선과 벽돌, 콘크리트가 많이 뒤엉켜 있었다. 이미 30도 이상 기울어진 채 앙상한 철근에 간신히 버티는 건물도 많았다. 지진으로 집이 무너져 차에서 지내고 있는 파테마 베니자 씨(32)는 “지진이 나고 사흘째가 돼서야 외부인이 보였다. 우리는 그저 고립돼 있었다. 조금만 더 빨리 구조하러 왔더라면 최소 몇 명은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마을 사람들은 “정부가 우리 존재조차 모른다는 것에 익숙해졌다”고 자조했다.

● “여기가 내 집이었어요”

당장 주민들이 할 수 있는 건 세간살이를 하나라도 더 챙겨 공터에 만든 텐트로 옮기는 것뿐이었다. 돌무더기로 변해버린 집 앞에서 쓸 만한 가재도구를 하나둘씩 집어 올리던 이스마일 씨와 그의 부인은 “기운 내라”며 서로 물을 한 잔씩 권했다. 부부는 침대 매트리스, 베개, 테이블, 의자 등 물건을 몇 개 꺼내긴 했는데 이를 보관할 장소가 없어 집 앞 길가에 그냥 쌓아둘 뿐이다.

이스마일 씨는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회색빛 잔해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가 내 집이었어요. 이젠 집도, 돈도, 인생도 없습니다. 며칠 전까지 같이 얘기하던 이웃들도 사라졌어요.” 인근에서 복구 작업을 지켜보던 다미안 튀르핀 씨는 “지진 이틀 전까지 옆집에 살면서 반갑게 인사하던 어린아이 두 명도 먼 곳으로 떠났다”고 했다.

길을 오가는 주민들은 서로 눈을 마주칠 때마다 가슴에 손을 얹은 채 눈을 감으며 상대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 각국 취재진에게도 현장에 와준 것만으로도 감사를 표하며 눈인사를 건넸다.

구호물자 받으려… 주민들 인산인해 8일(현지 시간) 모로코에서 발생한 규모 6.8의 강진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으로 꼽히는 아틀라스산맥의 산간 마을 아미즈미즈에서 11일 구호품을 받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지진 발생 나흘째인 이날 기준 2862명이 숨지고 2562명이 부상을 입은 것으로 집계됐다. 아미즈미즈=신화 뉴시스
체념한 듯 텐트 안에서 머물던 생존자들은 이따금씩 담요, 물, 의료품 등 구호물품을 실은 차량을 보면 분주해졌다. 가파른 언덕길을 뛰어 내려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구호품으로 담요를 받은 한 주민은 “집에 언제 들어갈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게다가 조금 지나면 산간 지역에 겨울이 온다. 담요는 물론이고 약, 식량 등 모든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텐트 안에는 주로 어린이들과 여성들이 모여 있었다. 몸이 축 처진 어린 아들을 텐트 안에 눕힌 한 여성은 “괜찮다”면서 머리를 쓰다듬을 뿐 별다른 조치를 하진 못했다. 텐트 옆에 임시 설치한 화장실은 이미 포화 상태였다. 한 구호단체 직원은 “여성들이 열악한 위생 상태 때문에 화장실 이용을 못 하고 있다”고 전했다.

● 구조대 본 주민들 “왜 이제야” 분노

아미즈미즈에서 26km 떨어진 고산마을 두아르트니트에는 지진 발생 65시간 만에 정부 구조대가 도착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11일 오후 4시 45분경 도착한 구조대는 무함마드 아바라다 씨의 완파된 자택으로 향했다. 그는 나흘간 쉬지 않고 잔해를 파헤쳐 어머니와 부인의 주검을 수습한 뒤 다시 곡괭이를 들고 작업 중이었다. 지진에 놀라 현관으로 뛰어나오다 매몰된 아홉 살 딸 차이마를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은 구조대원들에게 몰려와 분노를 표했다. 한 주민이 “몇 시간 만에 나타난 거냐. 우리가 직접 구조하고 장례까지 마쳤다”고 소리치자 소방대원 둘이 그를 현장 밖으로 끌어내려 했다.

지진 발생 직후 마라케시에서 차를 타고 이 마을로 와 구조 작업을 도왔다는 메디 씨(25)는 “경찰에도 도움을 청했지만 길이 막혀서 못 온다고 했다. 길이 막혀 구조가 늦어진다는 건 핑계다. 우리는 아이들까지 힘을 합쳐 잔해를 치우면서 올 사람들은 이미 다 왔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를 기다렸다면 살릴 사람도 못 살렸다”고도 했다.

뒤늦게 찾아왔던 스페인 구조대와 정부 구조대 대원들은 불과 2시간가량 작업을 한 뒤 이내 마을을 떠났다. NYT는 “모로코 국영방송 2M 취재진을 대동한 채 마을에 온 구조대는 구조견까지 동원해 수색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더니 기자가 리포트 촬영을 마치자 함께 철수했다”고 전했다.

아미즈미즈=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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