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마스크걸과 시뮬라시옹
넷플릭스 드라마 '마스크걸'을 재밌게 봤다. 자극적 소재와 선정적인 묘사, 후반부 서사의 밀도가 풀어져버리는 점 등 논란과 아쉬움이 없진 않지만 흥미로운 캐릭터와 속도감 있는 이야기 전개, 무엇보다 현대사회에 시의성 있는 메시지를 던진다는 점이 돋보인 수작이다. 인물들 개인 서사에 포커스를 두면서 때로 만화적 장치를 통해 캐릭터를 부각하거나 주인공이 무기수로 복역하는 형무소 생활을 그린 6화 전체를 흑백처리한 감각적 연출도 주목할 만했다.
주인공 이름은 김모미다. '미모'를 거꾸로 쓴 건데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못생긴 외모를 콤플렉스로 지닌 채 자랐다. 사람들 앞에서 춤추고 노래하며 박수받는 걸 좋아하지만 외모 때문에 가수의 꿈을 포기당했다. 엄마로부터, 친구들로부터, 학교와 사회로부터. 성인이 된 김모미는 낮에는 외모 때문에 무시당하는 직장인으로, 밤에는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인터넷방송에서 춤을 추는 BJ '마스크걸'로 이중생활을 한다. 얼굴은 감추고 싶지만 몸매만큼은 자신 있는 그녀는 란제리만 걸친 채 격정적인 춤을 춰 남성 시청자들의 지지와 환호를 받는다.
그 남성 중에 김모미의 직장 상사인 주오남이 있다. 빠르게 읽으면 추남, 그도 못생긴 외모를 지녔다. 소심하고 말수도 적어 존재감이 전혀 없다. 태어나 실제 이성과 연애한 경험이 없이 고립된 자신의 방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야동, 리얼돌로 욕구를 해소하는 오타쿠다. '마스크걸' 방송을 본 그는 그녀가 김모미임을 알아차리고 사랑에 빠진다.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진 것이다.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본격적인 갈등구조로 치닫는다.
외모지상주의, SNS 스노비즘이 어떻게 인간을 파멸시키는지를 보여주는 드라마다. 주인공 김모미는 무표정한 금빛가면으로 못생긴 얼굴을 가린다. 극 중 실제 마스크를 쓰는 건 김모미뿐이지만 사실 모든 인물이 전부 무형의 마스크를 쓰고 있다. 음험한 욕망을 감추기 위해, 욕망하는 것을 얻기 위해. 주오남은 '존재감 없는 아웃사이더'의 가면 뒤에 왜곡된 성적 욕망을 감추고 있었고 박 팀장은 신사적이고 공사구분 철저한 능력 있는 상사라는 마스크 뒤에 불륜을 감췄다.
마스크의 가상성으로 진짜 자신을 감추면 타인으로부터 인정과 주목을 받는다. 김모미는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면 누리지 못했을 큰 관심을 얻었고 오타쿠 주오남 역시 소심하지만 선하게 보이는 '초식남'의 가면을 쓴 채 김모미의 호감을 얻으려 했다. 모든 사람이 가짜 얼굴로 교류하는 허상의 무대, 이게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모미와 춘애의 처절한 우정이다. 둘 다 기구한 삶을 살았고 자신의 과거와 정체를 감추기 위해 성형수술을 하고 지방으로 도망쳐 왔다. 그곳의 한 클럽에서 댄서로 일하며 동고동락하는데 자매처럼 끈끈해진 둘은 어디서도 드러내지 않은 '진짜'를 서로에게 보여준다. 온통 마스크를 쓴 가짜 세상에서 오직 모미는 춘애에게, 춘애는 모미에게 존재의 민낯을 나눈 한 평짜리 고시원은 그들에게 단 하나의 진짜 세상이었다.
장 보드리야르가 지적한 시뮬라시옹(Simulation)의 세계에서 가상의 이미지는 실재와 관계를 완전히 끊어버림으로써 실재와 상관없이 스스로 존재하게 된다. 김모미가 그토록 욕망한, 예쁜 연예인의 화려한 춤 역시 외모지상 엔터테인먼트산업이 만들어낸 가상의 이미지다. 가상성이 실재를 대신하는 시대에 드라마의 비극적 결말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나는 어떤 마스크를 쓴 채 나를 감추고 있는가, 내가 지워지는 줄도 모르고 가면 뒤에서 나를 지우며 살고 있는가. 우리는 가상성에 점점 지쳐간다. 우리에게는 진짜 눈빛과 진짜 손길과 진짜 체온과 진짜 마음이 필요하다. 모미와 춘애의 우정에서 나는 공동체의 존재가치를 본다. 당신에게는 '진짜'를 털어놓을 수 있는, 가면을 벗고 맨얼굴을 보여줄 수 있는 친구가 있는가.
이병철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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