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시선] ‘사적보복’ 왜 문제인가

2023. 9. 13.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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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감 앞세운 신상공개 부작용 우려
개인정보 보호 위배돼 법정 비화될 것

최근 교사들을 자살로까지 내몰았던 갑질 학부모에 대한 신상털기가 새로운 논란을 낳고 있다. 못된 짓을 했던 학부모에 대해서 이 정도의 사회적 비난은 당연히 감수해야 할 몫이며, 갑질 학부모들이 했던 행위의 결과에 비하면 오히려 가벼운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신상털기가 또 다른 인권침해라는 비판도 있다.

이러한 논란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향후 유사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클 뿐만 아니라, 이 문제에 대한 국민 인식은 범죄피의자의 신상공개를 비롯한 다양한 문제들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의감을 앞세워 자칫 ‘집단 괴롭힘’처럼 신상털기가 확산할 경우에는 그 부작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헌법학
학부모의 과도한 갑질이 잘못된 것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도 이 문제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 이유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학부모의 갑질뿐만 아니라 직장 상사의 갑질, 거래처의 갑질 등 세상에는 갑질로 비난받는 것이 무수히 많고, 때로는 교사의 갑질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 모든 갑질에 대해 신상털기로 대응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둘째, 갑질로 인해 사람이 죽었을 때에 한정하여 신상털기가 정당한 것으로 볼 수 있을까? 그러나 갑질의 심각성이 항상 피해자의 사망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피해자의 멘탈이 얼마나 강한지, 주변에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 있는지 등에 따라서 결과에 차이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행위의 심각성과 무관하게 결과만 보고 책임을 묻는 것도 정당하지 않으며, 현대 형법이 결과책임이 아닌 행위책임을 중심으로 구성된 것도 이를 반증한다.

셋째, 신상털기가 확산할수록 오남용 위험성도 커진다. 얼마 전의 부산 돌려차기 사건에 대한 유튜버의 신상털기가 논란된 바 있지만, 갑질에 대한 신상털기는 오남용의 위험성이 더욱 크다. 어느 정도의 심각한 갑질이 신상털기의 대상이 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명확한 기준을 세울 수 없고, 개인의 주관적 판단이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밖에 피의자 신상공개가 ‘현대판 연좌제’라고 비판되었던 점도 신상털기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고, 신상털기가 개인정보의 보호와 충돌하는 문제도 가볍게 생각할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최근 인터넷에서는 이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압도적인 것은 교사들의 억울한 죽음에 분노하는 정의감 때문일 것이다.

이제 분노를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생각해 보자. 학부모의 갑질이 범죄행위라면 법적인 처벌로 해결해야 한다. 직장 내의 괴롭힘과 달리 이런 문제에 대해 충분한 법적 장치가 없는 것이 문제라면 법을 고쳐야 할 것이고, 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 당국이나 교육청 등에서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면 이 또한 해결해야 할 과제다.

그러나 개인적인 정의감을 앞세워 사적 보복을 정당화할 경우에는 불법이 불법을 낳고, 복수가 또 다른 복수를 낳는 일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그런 과정에서 엉뚱하게 신상이 털리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는 경우가 생기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범죄피의자의 신상공개에 대해 법이 매우 엄격한 요건과 절차를 적용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무죄 추정의 원칙 때문에 피의자를 범죄자로 취급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며, 요건을 완화하여 신상공개를 확대했다가 그중에서 무죄로 밝혀지는 사례가 발생하면 이를 돌이킬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엄격한 요건과 절차를 거쳐서 신상공개된 피의자 중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사람은 지금까지 없었다. 하지만 신상털기가 확산할 경우에는 필요 이상으로 개인정보를 노출하는 문제, 가족이나 친지, 회사 동료 등에게 과도한 피해를 주는 문제, 심지어 엉뚱한 사람의 신상이 공개되는 문제 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에 대해 누가 어떻게 책임질 수 있는가?

더욱이 사적인 신상털기는 개인정보의 보호에 위배되는 것으로서 불법이다. 지금까지 피해자가 자신의 죄로 인해 이를 문제 삼지 못했기에 법적 분쟁이 되지 않았을 뿐, 신상털기가 계속 늘어나면 조만간 법정에서 이 문제를 다투게 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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