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금류 결정적 장면…석양 때 바람 등지고 매를 기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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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지깃을 활짝 펼치며 암컷이 내려오자 갈대숲 사이에서 수컷이 날아올랐다 . 갈대숲에 둥지를 짓고 교대로 알을 품는 중이다.
강한 바람 때문에 마치 새들이 하늘에 매달린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수리과 맹금류 중 개구리매(Geranospiza속)의 영어 이름은 '해리어'(Harrier)다.
잿빛개구리매의 사냥 장면을 찍을 때도 최대 관건은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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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지깃을 활짝 펼치며 암컷이 내려오자 갈대숲 사이에서 수컷이 날아올랐다 . 갈대숲에 둥지를 짓고 교대로 알을 품는 중이다. 갈색 깃을 가진 암컷은 한눈에 봐도 검은 수컷보다 크다. 2023년 봄 몽골 헨티 아이막(우리나라의 도에 해당하는 몽골 행정구역)의 빈데르 마을 주변 습지에 번식 중인 개구리매(천연기념물 제 323-3 호) 한 쌍이 모습을 드러냈다. 몸집에 비해 긴 날개를 너풀거리며 하늘을 나는 새는 연신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사냥감을 찾고 있었다. 날개를 치켜든 채 브이(V) 자 모양으로 갈대밭 위를 활강하기도 한다.
너풀너풀 날아도 사진 촬영이 수월하지는 않다. 경계심이 강한 맹금류는 사람보다 시력이 훨씬 좋고, 천적을 가까이 두지 않으려 한다. 때마침 불어온 강풍의 도움을 받아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날 때 양력을 이용하는 새는 본능적으로 바람 방향으로 앉았다 날아오른다. 바람을 등진 채 기다리면 맞바람에 몸을 띄운 새가 먹이를 쫓아 가까이 다가오기도 한다. 맹금류 사진을 찍는 데 결정적 순간이다. 물론 바람 세기가 강할수록 새는 날갯짓 속도를 높일 수 없다. 강한 바람 때문에 마치 새들이 하늘에 매달린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수리과 맹금류 중 개구리매(Geranospiza속)의 영어 이름은 ‘해리어’(Harrier)다. 영국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수직 단거리 이착륙형 전투공격기가 같은 이름을 쓴다. 습지의 갈대밭 위를 낮게 날아다니다 공중에서 멈춰 땅 위의 먹이를 사냥하는 모습이 수직이착륙기의 기동 방식과 닮았기 때문이다. 미국과 영국은 자국이 만든 비행기에 맹금의 이름을 붙인다. 미국에서 도입해 우리나라가 운용하는 전투기 에프 -16 의 이름은 ‘팔콘 ’, 우리말로 매다. 시속 300㎞ 로 날아 먹이를 낚아채는 매처럼 최고의 공중 사냥꾼이라는 의미다. ‘ 이글’은 검독수리와 흰꼬리수리 같은 대형 수리류에서, 미 해병대의 수직 이착류기 ‘ 오스프리’는 물수리에서 이름을 따왔다.
개구리매류인 개구리매와 알락개구리매(천연기념물 제 323-5 호), 잿빛개구리매(천연기념물 제 323-6 호) 3 종을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다. 모두 월동하거나 드물게 통과하는 나그네새로 알려져 있다. 이 중 겨울에 충남 천수만이나 경기도 화성 화옹호 간척지에 가면 월동 중인 잿빛개구리매를 볼 수 있다. 사람 키만큼 자란 갈대밭과 논두렁 위를 느릿느릿 날며 먹이를 찾아나서곤 한다.
잿빛개구리매의 사냥 장면을 찍을 때도 최대 관건은 바람이다. 바람을 등지고 기다리면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사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겨울에 새를 찍을 때는 어려운 점이 하나 더 있다. 석양이 질 무렵에야 비로소 새들이 활발하게 사냥에 나선다는 점이다. 바람 방향마저 자주 바뀌는 날은 마치 적벽대전을 앞두고 동남풍을 기다리는 장수의 처지가 된다. 겨울에는 해 지는 시간이 짧아 석양 아래서 맞바람이 불어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질 수밖에 없다.
헨티 아이막(몽골)=사진·글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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