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 강원 노포 탐방] 58. 동해 까치분식

전인수 2023. 9. 13.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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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걱정없이 한 끼 뚝딱, 25년 한결같은 잔치국수
잔치국수 1000원 ‘25년전 가격’ 그대로
어묵·계란 등 전메뉴 주문해도 ‘5000원’
식자재 시장 조달·휴일 없이 혼자 운영
화학조미료 맛 아닌 담백하고 순수한 맛
도 유일 전국 모범업소 10선 선정되기도
“손님 덕분에 IMF 어려운 시기 이겨내…
일 할 수 있을때까지 이 가격 유지할 것”
좋은 후계자 나타나면 노하우 전수 계획

전국의 145개 대학이 1000원으로 아침식사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천원의 아침밥’을 운영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물가가 크게 오르면서 도내 7개 대학들이 재원 마련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축소될 위기에 처했다. 사업은 농림축산식품부가 1000원을 지원하고 각 대학이 나머지 2000~4000원 가량의 부담금을 지원해 이뤄지고 있다. 도내 지자체의 지원이 전무한 상황에서 재원조달 방안이 마련되지 않아 적자를 보게 되자 사업을 중단하려는 대학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같이 정부지원을 받는 대학조차 ‘1000원 밥상’을 포기하려는 상황에서 동해 동쪽바다중앙시장 앞에 23년째 자리를 잡은 작은 분식집은 잔치국수를 1000원에 판매하고 있다.

동해 ‘까치분식’은 직장인들이 점심식사를 해결하기 위해서 1만원을 들여야 하는 요즘, 가벼운 주머니 사정으로도 든든한 한끼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이다. 안영해(61)씨가 운영하는 발한동 6-8(중앙시장길 2-1)에 있는 아담한 ‘까치분식’에선 잔치국수 1000원(곱배기 2000원), 비빔국수 2000원(곱배기 3000원), 어묵 5개 1000원, 삶은 계란 3개 1000원, 전 메뉴를 모두 주문해도 5000(곱배기 7000원)원을 넘지 않는다. 코로나19 사태 이후부터는 포장도 해 주는데 1회용 용기 비용은 추가로 받지 않는다. 이곳은 오전 9시에 문을 열어 오후 5시까지 손님을 받는다. 이후부터는 7시 30분 정도까지 다음날 영업을 위해 육수와 고명 등 식재료를 준비한다.

2011년에 행정안전부가 전국 2497개 업소를 물가안정 모범업소로 지정하고, 이 중 가장 모범적인 업소 10곳을 별도로 선정해 지방물가정보 공개서비스와 지자체 홈페이지에 등재했는데, 도내에서 유일하게 까치분식이 전국 모범업소 10선에 선정됐다. IMF가 한창이던 1998년에 개업한 이후 단 한번도 가격을 올리지 않았기에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1000원이면 잔치국수 한 그릇에 1500~2500원 하던 25년전에도 절반 이하의 가격으로 3500원~5000원 하는 요즘에도 그대로 1000원을 받고 있으니 착해도 너무 착한 업소인 것이다.

물가안정 모범업소는 가격만 싸다고 선정되지 않는다. 청결도·친절도는 물론 옥외가격표시제·원산지표시제 이행 등 공공성이 잘 지켜지는지 꼼꼼히 체크한 후 선정된다.

안 대표가 가격을 10여년간 올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식자재를 중앙시장에서 직접 조달하고, 쉬는 날 없이 혼자서 운영하며 인건비를 절감, 이문을 덜 남기는 운영철학 때문이다.


동해시도 2011년 물가안정 모범업소(착한가격 지정업소)로 지정된 까치분식에 모범업소 지정증과 표지판을 부착한데 이어 ‘지역사회 발전에 앞장선 공로’를 인정해 표창장을 수여했다.

▲ 동해 까치분식

외환위기로부터 시작된 국가부도로 인해 IMF의 구제금융을 받아 근근이 살아가던 시기인 지난 1997~2001년은 까치분식이 탄생하는 배경이 됐다. 남편이 건축 일용직으로 일 하면서 수입이 일정치 않아 먹고 살기 힘들었던 안 대표는 이대로 가족들을 굶길수 없어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고깃집에서 시간제로 서빙 일을 했다. 고깃집에 근무하면서 IMF의 어려운 와중에도 메뉴중에서 가격이 저렴한 서민음식인 잔치국수가 그나마 잘 팔리고 있다는 걸 유심히 관찰했다.

당시 집에서 열무국수를 만들어 이웃 엄마들과 나눠 먹곤 했는데, 멸치 등으로 우려 낸 육수와 특별한 고명을 얹은 국수가 너무 맛있다고들 칭찬해서 언젠가 기회가 되면 잔치국숫집을 운영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중 마침 발한동 중앙시장 인근 목욕탕 앞쪽에 조그마한 해장국집이 나오자 인수해 곧바로 운영에 들어갔다. 당시 주메뉴가 해장국이었고, 사이드 메뉴로 분식을 팔았는데, 열무와 배추겉절이를 얹은 잔치국수와 비빔국수, 수제비·어묵·계란 등 분식으로 단순화해서 가게 상호도 ‘까치해장국’을 ‘까치분식’으로 바꿔 영업을 시작했다.

판매가격은 누구나 돈 걱정없이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도록 최대한 저렴하게 책정했다.


몇 년후 무허가 건물이었던 첫 가게 자리가 철거되면서 매장을 옮겨야 해 시장 안으로 들어갈까도 생각했지만, 시장 안에는 먹는 장사가 너무 많아 경쟁하기 힘든데다 저렴한 가격에 팔면 옆 매장에서 항의할 수도 있을거라 판단해 시장밖 도로변, 지금의 자리에 까치분식을 이전 오픈하게 됐다. 당시 시장안 상인들에게도 1000원 국수가 인기가 많아 시장 안으로 배달을 많이 했다. 지금은 힘에 부쳐 배달은 못 하지만 방문·포장손님들에게 정성을 다해 집중하고 있다.

안 대표는 “개업 당시 IMF로 주위분들 모두가 어려운데다, 저희도 남편의 일거리가 없을 때가 많아 굉장히 빈곤한 생활을 하던 엄혹한 시절이었다”며 “초·중학생 남매를 키워야 해서 식당업에 뛰어들었다”고 회상했다.

안 대표는 전국에 없는 1000원 짜리 잔치국수이지만, 전국에 없는 까치분식만의 레시피로 음식을 만들고 있다. 자극적인 화학조미료 맛이 아닌 담백하면서도 순수한 맛의 육수에 아삭한 식감의 숙주나물과 상추·쪽파 등 갖가지 채소가 고명으로 들어가 건강한 맛의 잔치·비빔국수, 부드러운 식감에 자연스러운 옛날 맛의 어묵, 식어도 맛 있는 구운 계란이 전부인 단출한 밥상이다.

안 대표는 “어려운 시절 1000원짜리 식당을 찾아주시고 도와주신 손님들 덕분에 자녀들을 다 대학까지 보내 반듯하게 키워내고, 가족이 먹고 사는 등 어두운 터널, 깊은 산중을 헤치고 나올수 있었는데, 밝은 빛을 봤다고 지금 와서 그 감사함을 저버리고 바로 가격을 올릴 수는 없잖아요”라고 했다. 이어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늙고 몸이 아파 일을 할 수 없을 때까지는 그냥 이대로 가격 올리지 않고 운영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저렴하지만 인공감미료가 들어가지 않은 재료 자체에서 나오는 순수한 맛과 푸짐한 양, 1000원이지만 조리에 정성을 쏟아 친절하게 운영되는 모습에 20년이 넘도록 묵호지역 남녀노소 누구나 꾸준하게 이 곳을 찾고 있다. 혼자 운영하기 때문에 손님을 더 많이 받을수 없어 전날 준비해 놓은 재료 만큼만 손님을 받는다. 특히 요즘에는 SNS를 통해 입소문이 나면서 사시사철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있다. 4명이 앉을수 있는 테이블이 두 개밖에 없어 주말이면 줄을 서야 할 정도다.

그는 “이 가게가 어려웠던 우리 가족이 생활할 수 있게 일정한 수입을 유지해 준 고마운 존재이기 때문에 몸이 아프고 고달플때도 즐거운 마음으로 힘을 내서 일하게 된다”며 “손님들이 파스를 사다 주는 등 위로해 줄때 감사함을 느껴 이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1000원 식당을 오래도록 유지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일이 힘들기 때문에 자녀들에게 물려줘 대대로 까치분식을 이어가는 것은 어렵겠지만, 사회적으로 공익이 되는 이 일을 하려는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해 보고 싶다고 하면 운영노하우를 전수해 주는 정도까지는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뜻을 내비쳤다. 전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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