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동물원] “머리까지 바쳤건만”…파멸로 끝난 사마귀 총각의 로맨스

정지섭 기자 2023. 9. 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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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컷, 수컷 머리 부여잡고 산채로 갉아먹기 시작
먹히는 중에도 수컷은 처절한 짝짓기
사마귀 180종 중 ‘섹슈얼 카니발리즘’은 일부종에서만 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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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컷 사마귀가 짝짓기를 시도하려던 수컷을 잡아 머리부터 파먹기 시작하고 있다. /Michelle Boss Facebook 캡처

오늘 보실 21초짜리 이 동영상은 동일한 서사를 어떤 관점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장르가 될 수 있습니다. 식사 장면을 담았다는 점에서 ‘먹방’이 될 수도 있고, 암수가 진득하게 몸을 부둥킨 장면에선 ‘에로물’의 성격도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본질적으로 무엇을 위해 그렇게 처절하게 달려드는가에 대해 생각하는 심오한 ‘철학 다큐’가 될 수도 있겠어요. 절대적인 피지컬, 그악스런 외모, 그리고 잔혹한 생활습성까지 곤충계의 괴수를 언급할 때 늘 첫손에 꼽히는 풀숲의 괴물 사마귀가 오늘 주인공입니다. 미국 KREM방송 소속 기상전문가인 미셸 보스가 최근 페이스북에 올린 동영상부터 보실까요? 비위가 약하신분은 건너뛰시길 권합니다.

사마귀를 괴수로 인식하게 한 유명한 습성이 있죠? 성적 동종포식(Sexual Cannibalism)입니다. 암수가 만나 짝짓기를 할 때 수컷이 암컷이 밥이 된다는 것 말입니다. 먹고 먹히는 동안에도 짝짓기는 계속됩니다. 몸을 부둥킨 한쌍은 맞붙은 꼬리를 통해 수컷의 유전자가 암컷의 몸으로 흘러들어가는 동시에, 수컷의 몸뚱아리는 머리부터 야금야금 갉아먹히기 시작하는 장면은 사마귀의 번식을 세상에서 가장 기괴한 짝짓기의 반열에 올려놓았죠. 사마귀의 이 섬뜩한 성적 동종포식을 이렇게 근접촬영한 장면은 쉽게 보기 힘듭니다. 암컷은 수컷의 머리 부근을 움켜쥔뒤, 여느 사냥감을 포식하든 끄트머리부터 갉아먹기 시작합니다. 역삼각형 머리모양에 외계인 같은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던 초롱초롱한 눈동자가 암컷의 빠른 턱놀림에 믹서처럼 갈려 사라집니다. 안구, 코, 턱, 뇌... 벌레의 움직임을 컨트롤하던 사령탑이 흔적도 없이 산산이 흩어집니다. 이 동영상이 끝난 뒤에도 암컷 사마귀의 수컷 포식은 계속되면서, 목, 가슴팍, 배, 힘차게 공중을 가르던 날개까지 갈리고 썰려서 암컷의 위장으로 직행할 것입니다.

짝짓기 도중 머리를 암컷에게 먹혀버린 수컷이 여전히 짝짓기 자세를 취하고 있다. / Josh Cassidy/KQED. PBS

이렇게 몸뚱아리가 파괴되는 와중에도, 격렬한 몸짓은 계속되기 마련입니다. 사마귀 수컷의 로맨스는 전세계에 살아가는 모든 피조물들중에서 가장 엽기적일 정도로 헌신적인 것으로 이름났죠. 자신의 유전자가 이어지는 대가로 몸뚱이를 헌납하니 말입니다. 머리와 가슴팍이 이미 고깃덩이가 돼 암컷의 위장에서 소화되고 있는 와중에도 파르르르 사랑의 몸짓은 지속됩니다. 가당키나 한 일일까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그건 사마귀 특유의 신경 매커니즘 때문에 가능합니다. 사마귀의 신체를 통제할 신경 시스템은 머리 뿐 아니라 하반신에 걸쳐 길게 이어져있습니다.

수컷 사마귀가 짝짓기를 시도하기도 전에 암컷에게 붙들려 가슴팍부터 얼굴방향으로 잡아먹히고 있다. /Josh Cassidy/KQED. PBS

이 부분을 복부 신경구(abdominal ganglia)라고 합니다. 정치적 관점에서는 지방분권화, 기술적 관점에서는 블록체인의 핵심기술인 분산원장, 투자적 관점에서는 리스크 헤징이죠. 이런 탈중심화 시스템 덕에 머리가 통째로 사라져도 하반신에 남아있는 신경 덕에 여전히 몸뚱이는 흘레붙는데 열중할 수 있는 것이죠. 수컷사마귀의 입장에서는 내 피를 이어받은 자손만대를 번성시키는 ‘실리’를 취하되, 오늘의 삶이라는 ‘명분’은 버린 셈입니다. 하지만 실리와 명분을 모두 잃는다면 그처럼 기막히고 허망한 일이 또 어디 있을까요? 오늘 동영상에 등장하는 사마귀가 그런 경우입니다. 동영상 게시자는 이런 설명을 곁들입니다. “이 커플은 우선 암컷은 행복하다. 이 암컷은 수컷이 데이트 신청을 채 하기도 전에 덮쳤다. 자연은 거친 법.” 그러니까 가련한 수컷 사마귀는 어떻게든 우선 암컷과 한몸이 되기 위해 살금살금 접근을 시도했지만, 톱니바퀴 같은 가시가 돋아있는 앞발에 단박에 붙들리고 말았습니다.

옆에서 본 사마귀의 모습. /Sturgis McKeever, Georgia Southern University, Bugwood.org

두 이성(異性)이 눈을 마주봅니다. 긴장과 설렘이 적절히 배합된 오묘한 분위기. 사람이라면, 핑크색 무드가 연출되면서 자연스레 입술을 포갰을지도 모르죠. 그러나 이들은 사람이 아닌 본능에 저당잡혀 살아가는 일개 짐승일 뿐입니다. 암컷의 눈에 수컷은 제법 큼지막하고 싱싱한 먹거리일 뿐입니다. 이 수컷은 그렇게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그러나 어쨌든 바라던대로 암컷과 하나가 됐네요. 이렇게 든든하게 속을 채운 암컷은 다른 놈과 짝을 짓겠죠? 영화 ‘황산벌’의 명대사가 떠오릅니다. “강한자가 살아남는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

동종포식이 꼭 머리부터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수컷을 잡아서 가슴 부위부터 먹어치운 암컷이 날카로운 앞발에 수컷의 얼굴과 목 부분을 쥐고 막 갉아먹을 참이다. /PBS 유튜브 캡처

사마귀의 동종포식은 모든 사마귀류의 짝짓기에서 벌어지는 현상일까요? 다시 말해 모든 수컷들은 사랑의 대가로 자신의 머리통을 헌납해야 할 운명을 타고난 것일까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미국 PBS 방송에 따르면 전세계 사미귀류 180여 종 중 일부 몇 종류만이 이런 습성을 보인다는 거예요. 사마귀의 식욕과 성욕을 연결지어 이 기괴한 매커니즘을 연결짓는건 무의미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저 단순하게 배는 고파 죽겠는데 눈앞에 맛있게 생긴게 아른거리다보니 잡아먹게 됐다는 겁니다. 동종포식을 성적 행위와 연결짓는게 무의미하다는 걸 보여주는 페이스북 동영상(Michael Petersen) 보실까요?

이 장면에서 사마귀 암컷이 먹고 있는 건 자신과 비슷한 몸뚱이의 암컷이라는 것을 쉽게 알아챌 수 있습니다. 산란을 앞두고 부풀어오른 복부의 모양새가 똑같거든요. 희생된 암컷 뱃속의 알집까지도 뱃속으로 사라질 참입니다. 그렇게 동족 암컷을 먹어치우는데 여념이 없는 암컷의 뒤에서 수컷이 올라타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잡은 셈이 됐습니다.

암컷 사마귀가 똑같이 생긴 동족 암컷을 먹는 동안 위에서 수컷 사마귀가 짝짓기를 진행하고 있다. /Michael Peterson Facebook

섬뜩하다못해 기괴한 이런 일상이 사마귀들의 세계에서는 흔하디 흔한 일상일 수 있습니다. 이들은 풀숲 생태계 최고 포식자의 지위를 얻는대신 목숨과 맞바꾸는 살떨리는 번식이라는 멍에를 짊어졌습니다. 그 기이한 유전자는 아비의 피와 살로 만들어진 알주머니의 새끼들을 통해서 지금도 되물림되고 있을 것입니다. 이 족속은 새와 뱀, 도마뱀, 개구리까지 사냥해먹는 지구상 거의 유일한 풀벌레입니다. 지구상 인류의 축복 중 하나는 사마귀의 몸뚱이가 더 이상 커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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