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금희]우리는 자살 생존자로 남아 있다
절망, 자책에 평균보다 자살률 22.5배 높아
슬픔 되돌아보며 떳떳한 삶의 영위자 됐으면
가족 중에 자살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처음으로 한 건 30대가 돼서였다. 그 전까지는 누구에게도, 아무리 친한 친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상처가 견딜 만했던 건 아니다. 말하지 않을수록 상처는 기이한 양상으로 뒤틀려 트라우마로 진행되기 마련이니까. 그때 나는 겨우 열한 살이었는데도 공포에 가까운 죄책감에 빠져들었고 어둡고 불안정한 내면을 지닌 채 성장했다. 그리고 지금처럼 이야기화해 드러내기까지 많은 위기를 겪었다.
자살 생존자들은 다양한 경로로 전해지는 자살 이야기에 취약하다. 요즘은 뉴스 보도에 있어서도 자살 방법에 대해 묘사하지 않거나 ‘선택’이라는 단어를 지양해 그것이 죽음의 한 방식 중 하나라는 뉘앙스를 주지 않도록 조심하지만 그런다고 한 사람이 자기 삶을 자살로 종결했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큰 사고에서 돌아온 사람이 반복해서 그 꿈을 꾸듯, 사고를 연상시키는 장소를 지나지 못하고 비슷한 것에도 공황을 느끼듯 자살 생존자들도 곳곳에 놓인 위험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살아간다. 걷고 있는 땅이 갑자기 꺼지는 듯한, 삶의 체인을 애써 돌리고 있는 내 모든 안간힘이 무의미해진 듯한, 살아 있음이 나쁘고 비난받아야 할 욕심이 되어버린 듯한 혼란. 자살 생존자들의 자살률은 평균보다 22.5배 높다고 한다. 비극적 소식이 자주 들리는 요즘, 자살 생존자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마치 싸우듯이 절망과 자책, 공포와 대면하고 있을 것이다.
이미 삶에 대해 차가운 실망을 해 생명을 버리려는 사람을 어떻게 되돌릴 수 있을지, 어떤 식으로 계속 살자고, 어렵더라도 버티자고 손 내밀 수 있을지 나도 특별한 방법을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내 경우 아주 오랫동안 만나고 들어온 모든 인생들의 이야기가 나를 변화시킨 것은 분명하다. 스스로 자살 생존자임을 인정하고 자연사를 꿈꾸기까지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들인 것이 타인의 글을 읽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 같이 책을 읽자고, 그러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물론 아니다.
며칠 전 열린 서울국제작가축제에서 중국의 소설가 위화의 강연을 들었다. 질문 시간이 되자 한 대학생이 ‘N포 세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했다. 중국에서는 탕핑족(躺平族)이라고 부르는 이 세대는 삶에 대한 ‘포기’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위화 작가는 치과 의사로 일했지만 도저히 적성에 맞지 않아 자기 삶을 자포자기할 뻔했던 젊은 시절을 이야기하며 다른 길에 대한 모색이 자신을 구해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중국의 한 청년과 나눈 대화를 소개했다. 그 청년은 작가에게 탕핑, 사회에서 열외된 삶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고 작가는 그에게 “은퇴자도 탕핑이라고 생각하는가?” 되물었다고 한다. 청년이 좀 생각한 뒤 맞다고 하자 위화 작가는 “그렇다면 탕핑은 사회제도다”라고 대답했다.
사회제도라는 그 답변은 놀라웠고 묘한 결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측면에서는 개인 구성원들이 사회에 대해 갖는 보편적이고 질서화된 반응이라는 말 같았고 삶의 방식임을 수용하라는 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그 또한 공동체가 만들어낸 제도일 뿐이기에 개선 의지만 있다면 사회가 바꿔 나갈 수 있다는 뜻으로 들렸다. 그리고 여기서 일종의 희망이 발생한다.
자살 생존자로서 나는 어떠한 이유에서의 자살에도 반대하지만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어쩌면 자살의 이러한 성격을 슬프게도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자살이 보편적이고 심지어 일상적인 방법이 되어가는 데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당신이 스스로 죽는 것은 당연하지 않으며 그렇게 해서 우리가 자살 생존자로 남게 되는 것도 당연하지 않다. 생명의 포기라는 사회제도에 동의하지 않으며 그것이 남길 연쇄적인 상처에 사람들이 내몰리는 것도 거부한다. 이런 절박한 의식에서 출발해 오늘의 슬픔을 엄중하게 되돌아볼 수 있기를, 그렇게 해서 모두가 삶의 떳떳한 영위자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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