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난리라는데…‘냉동김밥’ 한 번 먹어 봤습니다 [미드나잇 이슈]
식감 떨어지고 가격 비싸…다이어터엔 추천
외국서 인기 폭발에 업체들 “공장 풀가동”
김밥 애호가인 나는 진작부터 이런 날이 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전 세계인이 김밥 맛에 눈 뜰 날 말이다. 김밥은 간편히 한 끼를 떼울 수 있고, 재료에 신경을 좀 쓰면 탄단지(탄수화물·단백질·지방)에 비타민 무기질까지 영양 밸런스를 맞출 수 있으며, (한 끼 식사로 치면) 가격도 저렴하다. 샌드위치, 햄버거와 비교해 손색이 없지 않은가. 영미권 사람들이 새까만 김에 대한 경계심만 조금 낮춘다면 충분히 글로벌 패스트푸드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 냉동김밥이 ‘완성 즉시 영하 45도에서 급랭해 방금 싼 김밥과 맛과 식감이 비슷하다’는 몇몇 글이 눈에 띄었다. 냉기도, 전자렌지에 데운 뒤의 온기도 싫어 웬만하면 편의점 김밥도 먹지 않는 나는 이 대목에서 호기심이 일었다.
‘전자레인지에 해동하면 정말 방금 싼 김밥이 된다고? 즉석밥처럼?’
그렇다면 먹어봐야하지 않겠나. 냉동김밥을 주문해 봤다.
미국 트레이더조스에 김밥을 수출한 ‘올곧’의 ‘바바김밥’을 주문하고 싶었지만 구할 수 없었다. 인기 폭발인 유부우엉비건김밥을 포함해 국내에서도 모든 김밥이 품절이었다.
이에 ‘복을 만드는 사람들’(복만사)의 냉동김밥으로 눈을 돌렸다. 복만사는 국내 최초로 냉동김밥 기술을 개발해 2019년 특허출원한 업체다. 김밥이 터지지 않고 골고루 잘 데워지는 플라스틱 용기 특허도 갖고 있다. 국내에선 이미 ‘다이어트 김밥’으로 이름을 알렸고, 최근엔 영국 H마트와 10t 수출 계약을 체결하면서 분식 한류 바람에 도전장을 냈다.
복만사의 김밥 브랜드 ‘11시45분’에서 단짠우엉유부김밥, 버섯잡채김밥, 해초두부김밥, 숯불향불고기김밥, 계란김밥을 고루 주문했다. 이틀 만에 배송을 받았다. 소비기한은 2024년 4월에서 9월까지로 넉넉했다.
지난 11일 저녁, 식구들을 불러 모아 우엉유부김밥과 숯불향불고기김밥을 데웠다. 설명대로 각각 3분을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렸는데, 우엉유부김밥은 잘 데워졌지만 숯불향불고기김밥은 아랫부분이 녹지 않아 1분을 더 돌렸다.
유부우엉김밥은 건강·다이어트에 초점을 맞춘 만큼 재료에 상당히 신경을 쓴 것 같았다. 고기 대신 양념한 유부를 듬뿍 넣었고 시금치와 당근, 국내산 무로 만든 흰 단무지를 넣었다. ‘프리미엄 김밥’을 표방하는 김밥 체인이 사용하는 일명 ‘무첨가’ 단무지다. 밥은 백미와 알곤약을 섞어 칼로리를 낮췄다.
숯불향불고기김밥은 국내산 돼지불고기가 주요 재료다. 당근채와 달걀 지단이 들어가 있고 시금치 대신 마늘종을 넣었다. 단무지는 중국산 염장무로 만든 노란색 일반 단무지, 밥은 그냥 백미다.
두 김밥 모두 홈페이지 사진이나 SNS 리뷰에서처럼 먹음직스럽게 보이지는 않았다. 야채를 얼렸다가 녹였으니 색이 선명하지 않고 모양이 물러진 건 당연했다.
한 김 식혀 입에 넣었다. 일단 식감은 기대 이하였다. 알곤약이 섞여 있다는 걸 알 수 없게 일반 밥과 비슷했으나 밥알이 한알 한알 살아 입안에서 굴러다닐 정도는 결코 아니었다. 내용물 역시 냉동 후 해동을 거쳤으니 조직이 단단하게 유지될 리 없었다.
다만 기대 이하란 뜻이지 형편없단 말은 아니다. ‘갓 만든 김밥과 식감이 거의 비슷하다’는 몇몇 소비자 평을 곧이곧대로 믿은 내 탓이다.
숯불향불고기김밥에선 은은하게 숯불 냄새가 났다. 원재료를 살펴 보니 숯불베이스를 첨가했다. 얼렸다가 녹였지만 고기 누린내가 전혀 없었다. 달달했고 유부우엉김밥보다는 간이 셌다. 식감은 유부우엉김밥과 비슷했는데, 시금치 대신 마늘종을 넣어 씹는 맛은 조금 더 있었다. 마늘종이 불고기의 느끼함을 잡아주어 질리지 않게 먹을 수 있었다.
다이어트 중인 남편은 유부우엉김밥이 더 맛있다고 했다. 다만 식감 면에선 편의점 냉장고 김밥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며 아쉬워 했다. 7세 어린이와 나는 숯불고기김밥이 더 취향에 맞았다. 아이는 마늘종을 빼고 먹었다.
◆K푸드 ‘김밥’ 알리는 냉동김밥 업체들
시간이 지날수록 밥이 딱딱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결국 라면국물의 힘을 빌렸다. 계란물을 입혀 부쳐 먹으면 나을 것 같았지만 간편하게 먹으려고 산 냉동식품인데 그런 정성을 들이기는 귀찮았다.
두 김밥의 칼로리는 유부우엉김밥 340㎉, 숯불고기김밥 349㎉로 크게 차이가 없다. 칼로리정보 사이트에서 확인되는 체인점 김밥 한 줄 칼로리가 보통 400㎉대 후반에서 500㎉대 초반인 걸 감안하면 냉동김밥이 다이어트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맞는 것 같다.
아쉬운 것은 가격이었다. 아무리 프리미엄 김밥 한 줄에 5000원이 넘는다지만 냉동김밥을 5000원(회원가 4500원) 주고 사 먹기는 소비자 입장에서 아깝단 생각이 들었다. 올곧의 냉동김밥도 한 줄 4000∼5000원이다. “생각보다 괜찮다. 냉동실에 넣어두고 가끔 끼니를 떼워도 되겠다”며 호평하던 남편도 5000원이란 가격을 듣고는 “그럼 됐다”고 말을 바꿨다.
미국 한인타운의 김밥집이나 마트에서 파는 김밥은 맛은 있겠지만 가격이 비싸다. 한 줄에 보통 7∼8달러이며 재료에 따라 10달러 이상도 한다. 그에 비하면 냉동김밥은 식감이 다소 떨어지지만 맛이 좋고, 건강에도 좋고, 가격은 3.99달러(약 5300원)로 반값이다. 나도 외국에 살았다면 오픈런을 해서라도 냉동김밥을 구하러 다녔을 것이다.
더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어 냉동김밥 제조사들에 접촉했지만 연결이 쉽게 되지 않았다. 밀려드는 외국 수요를 맞추기 위해 공장을 풀 가동시키며 모든 직원이 바삐 일하는 중이어서다. 대표들도 수출국 다변화를 위해 열심히 출장을 다니는 중이라 한다. 앞으로는 더 다양한 나라 사람들의 냉동김밥 리뷰를 SNS에서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몇 달 전 회사 근처 분식집에 들렀다가 외국인 손님을 데려온 한국인이 김밥을 ‘코리안 스시’라고 소개하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란 일이 있었다. 김밥의 기원에 대한 논쟁은 차치하고라도 롤스시와 김밥은 엄연히 다르지 않은가. 단지 ‘설명하기 쉽다’는 이유로 그렇게 부르는 것은 문제가 있다. 피자가 이탈리아 빈대떡이 아닌 것처럼 김밥은 코리안 스시가 아닌 김밥이다.
미국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냉동김밥 포장지에는 영문으로 ‘kimbap’이라고 쓰여 있다. 수출업체들이 김밥을 스시로 알고 있던 외국인들에게 김밥을 확실히 알리고 있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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