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포켓’ 희망 못 놓는 모로코 강진 피해 이재민들, 정부 뒷짐에 분노 확산
진흙 벽돌집 붕괴 대다수
에어포켓이 생존을 좌우
늑장 구조에 “버림받았다”
외국의 구조 지원 뜻에도
모로코 정부 “혼선 우려”
사망자는 3000명에 육박
모로코 강진 사망자가 12일(현지시간) 3000명에 육박하고 있다. 지난 8일 지진 발생 후 생존 가능성이 가장 큰 ‘골든타임’ 72시간을 넘긴 상황이라 생존자와 이재민들은 정부의 소극적인 구조 요청과 굼뜬 대응에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
마라케시 남부에서 구조 활동을 벌인 스페인 국경없는소방관연합 안토니오 노갈레스 대표는 진흙 벽돌집들이 “완전히 파괴된 수준”이라며 ‘에어포켓’(공기가 남아 있는 공간) 없이는 “생존 가능성이 줄어든다”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철근 콘크리트 건물이었다면 잔해 사이로 파묻힌 생존자가 숨을 쉴 구멍이 생기지만, 흙으로 만든 건물이 무너지면 그 잔해가 흙먼지로 변해 매몰자의 코와 입을 완전히 덮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무너진 구조물 안에 에어포켓이 있었을 수도 있어서 앞으로도 생존자가 구조되리라 확신한다”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실제로 이번 강진의 피해가 집중된 아틀라스산맥을 낀 산골 마을 주택은 가족이 직접 전통적인 방식으로 짓거나 증축해 현대적 건축 공법을 따르지 않은 경우가 많다. 모 에사니 미국 애리조나대 토목공학 교수는 “지진의 압력으로 진흙집은 먼지처럼 부서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마라케시 도심의 현대적인 건물은 상대적으로 크게 무너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72시간 ‘골든타임’이 지났지만 뒤늦게 도착한 구조 인력과 물자를 향해 주민들이 분노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두아르 트니르 마을의 53세 남성 주민은 구조대원에게 “우리가 사람들을 묻고 구조했다. 사실대로 말해보라.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나”라고 항의했다. 지진 발생 이후 이 마을을 찾은 공무원은 지난 9일 실종자와 사망자 수를 기록한 뒤 떠난 장교 2명뿐이었다고 NYT는 전했다. 그러다 보니 이재민들은 직접 부상자를 수㎞ 떨어진 병원으로 이송하고 맨손과 소도구로 잔해를 파내며 가족과 이웃 구조에 나섰다. 타루이스테 마을에서 어머니를 잃은 한 남성은 “아무도 우리를 구하러 오지 않았다. 버림받은 듯한 느낌이다. 텐트와 음식, 잔해를 옮길 트럭이 필요하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긴급 구조를 요청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음에도, 모로코 정부는 “조율이 되지 않으면 혼선이 빚어진다”는 이유를 고수하며 100여개 국가의 구조 지원 의사에 응하지 않고 있다.
한국 외교부도 12일 모로코에 의료진을 중심으로 구조대를 지원할 의향을 전달했으나 모로코 정부는 아직 결정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는 “모로코가 과거 지진 피해를 보았을 때 여러 나라에서 인도적 지원을 받다 보니 제대로 조율이 안 됐던 선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유엔 또한 전문가를 모로코에 파견했지만 요청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모로코의 태도를 두고 국왕 위주로 돌아가는 모로코의 권위주의 체제가 국가의 약점 노출을 꺼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사미아 에라주키 미 스탠퍼드대 교수는 “외국인이 들어오면 많은 이가 알리려고 노력했던 문제가 들춰지게 될까 불안해하는 것”이라고 워싱턴포스트(WP)에 말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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