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조작" "반역" "폐간"… 뉴스타파 압박, 다음 단계는
대통령실·여당 연일 언론탄압 발언
수사결과 안 나왔는데도 공작 규정
언론단체들 "보안사·안기부 떠올라"
지난해 대선 직전 ‘김만배 음성 파일’을 보도한 뉴스타파에 정부여당의 압박이 쏟아지고 있다. 이 녹취록 내용이 ‘허위’인지, 녹취록을 ‘합작’한 대가로 신학림씨가 돈을 받은 것인지, 뉴스타파가 이런 ‘공작’을 알고도 보도를 한 것인지 명확히 밝혀진 것이 하나도 없건만 벌써 이 사건은 ‘희대의 대선 조작극’, ‘국가반역죄’, ‘쿠데타’로 규정된 듯하다. 일각에선 이번 사태를 계기로 뉴스타파를 ‘발행정지’, ‘폐간’, ‘법인취소’, ‘계약해지’ 해야 한다는 주장도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이번 사태는 지난 1일 검찰이 신학림씨의 자택 등을 압수수색하면서 시작됐다. 검찰은 지난해 3월6일 뉴스타파가 보도한 ‘김만배 음성 파일’과 관련, 김만배씨가 신씨에게 “허위 인터뷰 관련 금품 제공”을 했다며 이날 “(신씨의) 주거지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뉴스타파가 서둘러 “(신씨는) 보도 여부를 결정할 위치에 있지 않았고, 당시 보도는 뉴스타파 편집회의에서 기사 가치를 면밀히 검토한 뒤 나갔을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소용없었다. 이후 약 일주일간 대통령실을 비롯해 국민의힘, 문화체육관광부, 방송통신위원회,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서울시 등이 전면에 나서 뉴스타파에 대한 공세를 퍼부었다.
가장 먼저 나선 것은 방통위였다. 이동관 방통위원장은 지난 4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특정 매체가 가짜뉴스의 원천 역할을 하고 포털, 유튜브 등을 통해 확산시키며 공영방송이 다시 보도하는 조직적인 악순환을 근절”해야 한다며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거론했다. 이어 6일엔 ‘가짜뉴스 근절 TF’를 가동하고 방심위를 비롯한 유관 기관과 협조해 철저한 심의와 이행 조치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또 다음날엔 방송사들의 팩트체크 검증 시스템에 대한 실태점검에 나서겠다며 KBS, MBC, JTBC를 콕 집어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방심위도 가만있지 않았다. 뉴스타파는 인터넷 매체라 방송통신 심의 대상이 아니지만 방심위 여권 위원들은 “국민 관심 사항”이라며 뉴스타파를 인용한 방송 보도에 한해 12일 ‘긴급심의’를 결정했다. 문체부 역시 ‘가짜뉴스 퇴치 TF’를 가동하고 해당 뉴스가 일부 방송과 신문으로 집중 유통·재생산되는 과정을 살펴보겠다고 했다. 또 뉴스타파의 보도 과정과 내용이 신문법상 위반 행위가 있는지 들여다보겠다며, 뉴스타파 등록 지자체인 서울시 등과 협조해 필요한 조치를 해나가겠다고 했다. 서울시도 이에 동조하듯 다음날 뉴스타파의 신문법 위반사항을 살펴보고, 결과에 따라 발행정지 혹은 등록취소 등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사태 초기부터 아예 뉴스타파 보도를 ‘희대의 대선 정치 공작 사건’으로 규정하고, 언론 탄압을 정당화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지난 5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대선 사흘 전 녹취록을 풀어 대선 결과를 바꾸려” 했다며 “날조된 사실과 공작의 목표는 윤석열 후보의 낙선이었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의원들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뉴스타파 보도를 “치밀히 기획된 대선 공작”이라 규정하며 “사형에 처해야 할 만큼의 국가 반역죄”라는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
국힘 의원들은 심지어 7일엔 ‘김만배 음성 파일’을 최초 보도한 뉴스타파 기자 1명, 그리고 이를 인용 보도한 MBC 기자 4명, 유사한 취지의 내용을 먼저 보도한 전 JTBC 기자 1명을 수사기관에 고발했다. 당시 ‘김만배 음성 파일’을 인용 보도한 언론사가 MBC 말고도 수없이 많았지만 “집중 보도한 것”을 문제 삼으며, 이 사태 관련 단순 여야 공방을 다룬 MBC 기자까지 모조리 고발했다. 또 이번 사태가 “거물급 정치인의 뒷배가 없다면 추진됐을 리 없다”며 민주당과의 ‘유착’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검찰 역시 이에 질세라 같은 날 검사 10명 규모의 이른바 ‘대선개입 여론조작 사건 특별수사팀’을 구성하고, 강도 높은 수사를 벌일 것임을 암시했다.
언론단체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한국기자협회 등 6개 현업 언론단체는 7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대체 역대 어떤 정권이 언론사에 대한 등록을 취소하고, 방송사 내부 심의 시스템을 점검해 업무 정지까지 내리겠다는 발상을 했던가”라며 “보안사 군인과 안기부 직원을 언론사에 상주시키고 방송사들을 통폐합했던 군사독재 시절에 버금가는 국가 폭력”이라고 비판했다. 윤창현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은 “보도 내용을 가지고 실제 등록이 취소된 사례는 전두환 이후 단 한 건도 없었다”며 “이 사안은 언론자유의 헌법 가치를 훼손해서라도 이 기회에 방송 장악 기도를 관철해보겠다는, 윤석열 정권의 또 다른 정치적 음모”라고 비판했다.
금전거래·검증부족… 언론윤리 치명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다만 국가기관과 정부 여당이 총동원된 언론 탄압과는 별개로 이번 사태는 언론 윤리 측면에선 여러 아쉬움을 남긴다. 이해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더욱 조심해야 할 취재원과의 금전거래가 이번 사태의 배경에 있다는 점, 또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는 음성 파일임에도 이에 대한 충분한 검증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 등이 그렇다. 특히 한 사람의 주장을 실을 수밖에 없는 인터뷰 보도의 한계가 정치적 맥락 위 가장 최악의 방식으로 드러났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가 언론계에 남긴 과제는 작지 않다.
먼저 이번 사태가 김만배씨와 신학림씨 간 금전거래로 촉발됐다는 점은 뼈아프다. 검찰은 신씨가 김씨의 청탁을 받고 뉴스타파를 통해 음성 파일을 보도했다는 전제로 지난 1일 신씨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신씨가 김씨의 음성을 녹취한 닷새 뒤 김씨로부터 1억6500만원을 받았는데, 이를 ‘허위 인터뷰’의 대가로 본 것이다. 신씨는 자신의 책 3권 값이라고 설명했지만 취재원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보도의 신뢰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점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책 3권 값 주장, 보도 신뢰 훼손 비판... 언론개혁시민연대 “상식 벗어나”
언론개혁시민연대는 지난 6일 낸 논평에서 “(신씨는) 본인 저서가 그만한 금액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보편의 상식이나 일반의 판단에서 벗어난다”며 “지나치게 고액의 책값을 내놓는 김만배의 의도와 돈의 출처에 대해 의심했어야 했다. 시비가 따를 수밖에 없는 책값을 애당초 받지 않는 게 옳았다”고 지적했다. 또 “(신씨는) 뉴스타파에 녹취 파일을 제보하며 금전거래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며 “설사 그의 주장대로 사적인 대화였다고 해도, 보도를 전제로 언론사에 제보하는 시점에서는 이해충돌 문제가 발생한다. 올해 초 김만배가 언론인을 상대로 전방위 로비를 벌인 사실이 드러났는데, 그때라도 그가 왜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지 참으로 안타깝다”고 전했다.
뉴스타파도 신씨와 김씨의 금전거래에 대해선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뉴스타파는 지난 5일 올린 입장문에서 “금전거래의 경위는 차후 법적 절차를 통해 명확히 밝혀질 일이지만 취재원과 거액의 금전거래를 한 사실은 저널리즘 윤리 상 결코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며 “신씨와 김씨가 오랜 친분이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했고 결과적으로 두 사람이 이해관계로 얽혔을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후원회원과 시민들께 깊이 사과드리며, 해당 보도의 경위와 과정에 대해 보다 철저하게 조사하기 위해 외부 조사위원이 참여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리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한 명 주장만 싣는 인터뷰 한계점, 정치적 맥락서 최악의 방식으로 드러나
한편에선 ‘김만배 음성 파일’ 보도와 관련, 뉴스타파의 검증이 다소 부실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뉴스타파는 지난해 3월4일 밤 11시 경 신씨에게 녹취록을 넘겨받은 후, 다음날인 3월5일 음성 파일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 4명에 연락해 김씨 증언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다만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박길배 변호사, 조우형씨에겐 아무런 답을 듣지 못했고, 박영수 전 특검에게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취지의 답변을 들었다. 이 상황에서 뉴스타파는 다음날 편집회의를 통해 보도를 결정하고 이날 밤 음성 파일을 보도했다. 대선 직전이라는 특수한 상황이긴 했지만, 녹취록에 등장하는 주요 당사자 대부분의 해명을 듣지 못한 상태서 이틀도 안 돼 보도가 나간 셈이다.
내용 면에서도 뉴스타파의 원 보도에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뉴스타파가 지난 7일 공개한 72분짜리 음성 파일 전문을 보면 지난 2011년 부산저축은행 대출 사건 수사를 무마해준 주체가 윤석열 당시 대검 중수2과장인지 박길배 검사인지 명확히 나오지 않는다. 김만배씨는 처음엔 “윤석열”을 언급했지만 신씨가 재차 묻자 “박길배가 얽어 넣지 않고 그냥 봐줬지”라고 말했다. 다만 원 보도에선 이 부분이 생략되고 윤석열 검사가 수사를 무마해준 것처럼 편집됐다.
수사기관 아닌 언론사의 보도 검증, 어느 선까지 인정할지 과제로 남아
원 보도를 한 한상진 뉴스타파 기자는 이와 관련, 8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지금 와서 돌아보면 아쉬운 것들이 좀 있다”며 “녹음 파일 내용을 가능한 선에서라도 좀 더 검증을 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다만 보도 내용과 관련해선 “이 사건은 부산저축은행 사건에 대해 봐주기 수사가 있었는지가 핵심”이라며 “박길배 검사는 독립기구가 아니다. 박길배가 봐줬으면 윤석열 주임검사는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인지 여기에 대해 먼저 검찰, 언론들이 답을 해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김만배씨가 말을 하고자 하는 취지는 내가 왜 박영수를 조우형에게 소개시켜줬는지를 얘기하면서 거기에 윤석열이 있다는 걸 전제로 지금 얘기한다”며 “혈관을 잘 아니까 이 사람들한테 통할 수 있는 박영수를 소개시켜줬다고 시작을 하는 문장이다. 박길배가 커피를 타줬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고, 저는 김만배씨가 말하고자 하는 취지를 훼손한 것은 없다는 입장”이라고 했다.
결국 이번 사태는 한 사람의 주장 혹은 증언을 일방 보도하는 것이 언론 윤리적 측면에서 옳은지, 검증이 필요하다면 어느 선까지가 적정한지 등의 과제를 우리 언론에 남긴다. 특히 수사기관이 아닌 언론사의 한계를 어디까지 인정할지가 주요한 고민 지점이다. 종합일간지 한 정치부 기자는 “인물 검증 보도의 경우 결국 한계가 있게 마련인데, 이번 사태를 보면서 그 한계가 정권에 따라 언제고 큰 문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검증의 잣대를 어디까지 둘 것인지 어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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