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구도 바뀌자마자…KBS 이사회 ‘사장 해임 의결’·윤 대통령 바로 재가
윤석열 대통령이 12일 KBS 이사회가 제청한 김의철 KBS 사장(사진)에 대한 해임안을 재가했다. 앞서 KBS 이사회는 이날 임시이사회에서 김 사장의 해임제청안을 의결해 인사혁신처에 전달했다.
정부의 방송장악 시도가 MBC에서는 제동이 걸렸지만 KBS에서는 예상대로 진행됐다. KBS 이사회 관계자는 이날 “임시이사회에서 김 사장 해임안을 표결한 결과 표결에 참여한 서기석 이사장과 이사 등 6명이 모두 찬성해 의결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야권 이사 5명은 김 사장 해임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면서 표결 직전 퇴장했다. 김의철 사장의 해임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날 이사회가 의결하자 윤 대통령이 바로 재가했다. 최근 정부·여당의 방송 관련 기구들에 대한 이사 해임 및 선임 과정을 고려하면 이사회의 KBS 신임 사장 추천, 대통령의 임명 등도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KBS 이사회는 여야 구도가 뒤집힌 지난달부터 김 사장 해임을 논의해왔다. 기존 이사회 여야 구도는 4 대 7이었는데 야권 추천 이사인 윤석년 이사와 남영진 이사장이 해임되고 그 자리에 여권 추천으로 서기석 이사장과 황근 이사가 들어오면서 6 대 5로 바뀌었다. 여권 이사들이 지난달 28일 긴급 안건으로 제출한 김 사장 해임제청안은 이틀 뒤인 30일 정기이사회에서 표결을 거쳐 안건으로 상정됐다. 지난 6일과 11일 임시이사회에서는 김 사장 해임을 둘러싸고 여권 이사와 야권 이사들이 비공개 토론을 진행했다.
이사회는 김 사장의 해임 사유로 방만 경영으로 인한 경영 악화, 직원들의 퇴진 요구로 인한 리더십 상실, 불공정 방송으로 인한 국민 신뢰 상실, 수신료 분리징수 관련 직무유기, 고용안정 관련 노사합의 시 사전에 이사회에 보고하지 않은 점 등을 들었다. 김 사장은 지난 11일 이에 관한 의견서를 이사회에 제출했다.
김 사장은 해임제청안이 이사회에서 의결된 뒤 입장문을 내 “제가 부족함이 많았다고 생각하고 그 점에 국민 여러분과 KBS 구성원들에게 송구스럽게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KBS 사장으로서 해임에 이를 만큼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 ‘사필귀정’이라는 말이 있다.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지루한 법정 공방이 계속될 것”이라며 소송을 예고했다.
김 사장의 임기는 내년 12월까지다. 윤 대통령이 김 사장의 해임제청안을 재가하면서 김 사장은 무효 또는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행정소송 본안 판결이 심급마다 길게는 1년 이상 소요되는 데다 3심제인 점을 고려하면 확정판결은 김 사장 임기가 지나서야 나올 가능성이 크다.
야권 이사들 “절차·내용에 정당성 없는 위법”…KBS 노조 “피해는 국민의 몫”
노무현 정부 때 임명된 뒤 이명박 정부 집권 이후인 2008년 8월 해임된 정연주 전 KBS 사장은 2012년에야 최종 승소 판결을 받았다. 박근혜 정부 때 임명된 뒤 문재인 정부 집권기인 2018년 1월 해임된 고대영 전 KBS 사장은 올해 6월 최종 승소했다. 모두 임기 만료 시점이 훌쩍 지난 뒤다.
김 사장은 행정소송 외에 바로 사장직으로 복귀가 가능한 해임 처분에 대한 효력 집행정지도 신청할 가능성이 크다.
이사회 야권 이사들은 해임제청 사유가 논의 과정에서 여러 차례 변경됐고 이날 표결 직전까지 10건이었던 사유가 6건으로 변경됐다며 ‘명백한 절차적 하자’라고 반발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해임제청안 처리는 절차와 내용에서 정당성을 전혀 갖추지 못해 위법”이라며 “여권 이사들의 독단적인 처리에 엄중하게 항의한다”고 밝혔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이번 김의철 사장 해임으로 KBS는 또 한 번 격랑에 휩싸일 것이다. 새 사장 선임 등을 놓고 내부 혼란이 이어질 것이고, 공영방송을 둘러싼 아귀다툼의 피해는 국민의 몫이 될 것”이라며 “앞으로 불어닥칠 KBS 혼란의 모든 책임은 사장을 해임한 이사들에게 있음을 똑똑히 알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는 KBS와 함께 MBC의 사장 교체도 추진하고 있으나 지난 11일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는 11일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권태선 이사장이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를 상대로 낸 해임 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했다. 권 이사장은 이날 바로 이사장직에 복귀했다.
방통위가 야권 추천인 김기중 이사를 해임하더라도 방문진의 ‘여소야대’ 구도는 바뀌지 않는다. 김기중 이사 외에 야권 측 이사를 한 명 더 해임하고 그 자리에 여권 이사를 추가해야 여권 우세로 만들 수 있다. 김기중 이사가 해임을 당하더라도 권 이사장처럼 법원에서 집행정지 신청이 인용될 가능성도 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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