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월회의 행로난] 맹자가 사회주의자?

기자 2023. 9. 12.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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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 인(人)과 백성 민(民)으로 이루어진 단어다. 둘 다 아무런 이념적 색채를 띠지 않지만, 우리나라에선 아무렇지 않게 쓸 수 있는 표현은 아니다. 북한과 중국에서 즐겨 사용한 탓에 우리 사회에서 인민은 사회주의와 즉각 연동되는 ‘빨갱이’ 용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맹자도 사회주의자일까? “제후에게는 보물이 셋이니 토지와 인민과 정치다”라고 하여 인민이란 어휘를 비중 있게 사용해서 하는 말이다. 법가를 집대성한 한비자는 또 어떨까? 맹자보다 더 자주 인민이라는 표현을 썼으니 그는 맹자보다 더한 붉은 사회주의자였을까?

본래 인은 고대 중국에서 식자능력을 지닌 이들을, 민은 식자능력이 없는 이들을 가리켰다. 당시 식자능력은 세상 통치의 요체였다. 하여 이를 지닌 인은 지배층, 지니지 못한 민은 피지배층이 되었다. 따라서 인민 하면 지배층, 피지배층을 포함한 세상사람 모두를 지칭하는 표현이었다. 가령 한비자가 “먼 옛날에는 인민이 적었고 금수가 많았으며 인민이 짐승을 당해내지 못했다”고 할 때의 인민은 사람을 가리켰지, 당시 있지도 않은 사회주의자들을 가리킨 것이 아니었다.

또한 인민을 사람이라 번역하지 않고, 인과 민 각각의 뜻을 살리고자 인민으로 번역했다고 하여 역자가 사회주의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인민이란 표현을 썼다고 맹자를 사회주의자라고 우기는 것과 같은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삼척동자가 봐도 말조차 되지 않는 이런 행위를 일삼는 이유는 무엇일까? 역사 날조를 넘어 역사를 훼멸하려는 세력이 득세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친일, 친독재 같은 역사를 세탁하는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 듯싶다. 하여 일제강점과 친일이라는 역사 자체를, 반공 이데올로기에 편승한 친독재라는 역사 자체를 아예 땅속 깊숙이 장사 지내려 한다.

그들은 우리 사회에서 사실을 사실로 직시하는 힘이 갈수록 적어지고 있음을 더없는 호기로 여긴 듯하다. 이런 패악은 우리 사회의 인문적 성숙도가 높고, 사실을 사실로 인정할 수 있는 인문역량이 튼실하다면 꿈꾸지도 못했을 것이다. 결국 그들이 땅속에 파묻으려 하는 역사를 땅 위에 꽃피게 함은 시민의 탄탄한 인문역량밖에 없음이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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