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북한 회동 놀랍지 않아…우크라 전쟁은 독재와 민주주의 간 전쟁” [세계지식포럼]
노벨평화상 우크라 시민자유센터
올렉산드라 마트비추크 대표 대담
끔찍하고 참혹한 러 전쟁폭주에
‘중립’ 입장은 공범 되겠다는 것
우크라 무너지면 전쟁 확산 우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자행한 전쟁 범죄 사건을 조사해 세상에 알린 공로로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받은 우크라이나 시민단체 시민자유센터(CCL)의 설립자 올렉산드라 마트비추크 대표(39·인권 변호사)는 12일 서울신라호텔에서 열린 세계지식포럼에서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의 폭주를 막지 못하면 러시아는 물론 북한과 아프가니스탄, 이란 같은 다른 전체주의 독재 정권들도 상대적으로 군사력이 약한 다른 국가들을 약탈하면서 더욱 진격해 나갈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이처럼 말했다.
이날 세계지식포럼에서 마트비추크 대표는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의 미래’를 주제로 테리 마틴 독일 도이체 벨레 수석 앵커와의 인터뷰 형태로 대담을 나눴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았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부모로부터 자유의 가치를 부여 받았고 한 번도 이를 쟁취하기 위해 싸워본 적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며 “지금 우크라이나는 민주주의의 미래를 위해 싸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제질서를 유지하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정상화하는 것은 전 세계가 동참해야 하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마트비추크 대표는 이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전격 회동해 정상회담을 가진 것과 관련해 “북한이 러시아를 지지하는 것은 놀랍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전체주의 독재 정권들은 늘 서로를 지지하면서 더 강력하게 체제를 유지하려고 한다. 예컨대 북한과 러시아는 ‘민주주의는 거짓된 가치’라는 걸 세계에 알리는 공동의 계획을 구상할 수도 있다”며 “그만큼 민주주의는 위협을 받게 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9일 주요 20개국(G20)이 공동성명에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직접적인 규탄 내용을 담지 않는 등 세계 각국이 러시아에 대한 제재 수위를 높이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유감을 표했다.
마트비추크 대표는 “중국, 인도, 베트남 같은 국가들의 공식 입장은 ‘중립’인데 러시아 같은 경제대국이자 군사강국이 일방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국제법을 완전히 무시한 행위에 대해서는 중립이라는 게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이런 끔찍한 일에 중립이라고 하는 건 사실상 우크라이나를 점령하는 러시아를 지지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러시아와 적당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푸틴 대통령과 악수한 자들은 전범과 손을 잡은 댓가를 반드시 치르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트비추크 대표는 “우리가 기록한 5만건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며 “러시아 군은 학교와 병원, 교회, 가정집을 공격하면서 사람들을 강제로 이주시키고 민간인을 대상으로 강간, 납치, 고문을 일삼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이는 일반 시민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가함으로써 저항 심리를 꺾고 완전한 속국으로 만들려는 러시아 군의 전략”이라며 “그게 아니고서는 탱크로 시민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발포하고 그 시신들 잔해가 도로에 뿌려지도록 할 이유가 없고, 8살짜리 아이 앞에서 어머니를 강간할 이유가 없으며 공놀이를 하던 14살짜리 아이를 총으로 쏴 죽일 이유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러시아 군의 이 같은 전쟁범죄는 본격적인 우크라이나 침공이 있기 전인 2014년부터 계속돼 왔지만 그동안 러시아가 이런 일에 특별한 책임을 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게 마트비추크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푸틴 대통령을 비롯한 러시아 지도세력을 심판하고 실질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권한과 힘을 가진 ‘우크라이나 침공 특별재판소’ 설립을 위해 세계 각국이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도 전쟁범죄를 취급하는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있지만 러시아는 ICC 당사국이 아니기 때문에 푸틴 대통령을 과거 나치 전범처럼 법정에 세울 만한 법적 근거가 없다.
앞서 ICC 전심재판부는 지난 3월 우크라이나 점령지에서 아동 수백명을 납치해 러시아로 불법 이주시킨 전쟁범죄 혐의로 푸틴 대통령과 마리아 알렉세예브나 리보바-벨로바 러시아 대통령실 아동인권 담당 위원 등 2명에 대한 체포 영장을 발부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체포영장 발부 다음날 예고 없이 크림반도를 찾아 보란 듯 어린이 센터와 미술학교를 방문해 공분을 샀다.
이와 관련해 마트비추크 대표는 “ICC의 체포영장 발부는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며 “‘핵무기가 있어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러시아의 대통령이어도 국제질서를 해치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메세지를 세계에 던진 것으로 상당한 여파가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그는 “국제 사법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오늘날 상황에서는 법적인 수단은 더 이상 효과가 없다. 미래에는 국제질서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당장은 무기를 갖고 우리 자신을 방어해 생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정당 방위할 권리가 있고 전 세계는 우리를 지지할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맨손으로 싸울 수 없다”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주저하는 국가들에 우회적으로 지원을 촉구했다.
‘수만 건의 전쟁범죄를 기록할 때 정서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느냐’는 앵커의 질문에 “가끔은 인간적인 고통이 우리를 태우고 있다고 느낄 정도”라면서도 “그럼에도 계속해서 이 일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은 첫째로 언젠가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그 댓가를 치르게 만들겠다는 목표가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또 다른 힘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우크라이나 키이우가 러시아 군에 포위됐을 때 많은 국제기구가 우리를 혼자 두고 철수했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무너진 잔해 속에서 사람을 구했고 목숨을 걸고 지하에서 의료 시술을 해줬다”며 “이런 사람들이 상상 이상의 임팩트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마트비추크 대표는 ‘어떻게 하면 우크라이나를 도울 수 있느냐’는 청중의 질문에는 “사실 우리를 돕는 방법은 수백 가지가 있을 수 있다”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글을 쓰고 러시아의 선동에 맞서 주셔도 되고, 난민을 받아 줄 수도 있고, 기금을 모금해 물품을 지원해 주실 수도 있고, 우크라이나에 더 많은 지원을 할 수 있도록 정부에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거대한 전쟁을 맞닥뜨렸을 때 한 사람의 노력은 너무나 작게 느껴질 수 있지만, 우리는 그 노력이 필요하다”며 “하나의 물방울 같은 개개인들이 힘을 합치면 우리는 바다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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