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틀라스 [만물상]

김태훈 논설위원 2023. 9. 12.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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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상훈

북아프리카 모로코에서 시작해 알제리를 거쳐 튀니지에 이르는 아틀라스 산맥의 역사는 3억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처럼 여러 대륙으로 쪼개지기 전, 하나였던 대륙 판게아를 관통하던 대산맥이었다. 북미 대륙을 종단하는 애팔래치아도 원래는 아틀라스 산맥의 일부였다. 3000m 넘는 고봉이 줄지어 달리며 2500㎞에 걸쳐 펼쳐지는 아틀라스를 넘으면 척박한 사막 사하라다. 유럽 고대인들이 아틀라스를 ‘세상의 끝’이라 여긴 이유였다.

▶풍요와 불모를 가르는 산맥의 마법이 옛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해 만들어진 게 아틀라스 신화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따르면 아틀라스는 원래 ‘지상에서 가장 먼 땅’을 지배하는 자였다. 그 땅은 가축과 과일이 풍성했다. 메두사의 목을 벤 영웅 페르세우스가 그곳을 지나다 잠잘 곳을 청하지만 아틀라스는 그가 땅을 탐낼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며 거절한다. 분노한 페르세우스가 메두사의 머리를 들어 올려 아틀라스를 거대한 돌산으로 변하게 했다.

▶산이 된 아틀라스가 하늘을 떠받쳐준 덕에 도시가 번성했다. 그중에도 베르베르어로 ‘신의 땅’이라는 뜻의 마라케시는 12세기부터 여러 왕조의 수도였다. ‘모로코’라는 국명도 이 도시 이름에서 유래했다. 지금의 수도 라바트가 정치 중심지, 해변 도시 카사블랑카가 경제 중심지라면, 아틀라스가 병풍처럼 에워싼 마라케시는 문화 중심지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로그 네이션’ 편을 이 도시에서 찍었다. 도시 이름을 딴 유명 국제영화제도 열린다. 산화철을 함유한 흙으로 지은 마라케시는 ‘붉은 도시’로도 불린다. 붉은색 고대 로마와 아랍 유적이 아틀라스의 만년설과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만드는 세계적 관광 도시이기도 하다.

▶아틀라스 산맥의 축복을 받으며 번영하던 마라케시 일대가 지진 피해로 신음하고 있다. 쿠투비아 모스크의 첨탑과 마라케시를 상징하는 성벽이 훼손됐고, “이것 하나 보러 마라케시에 간다”는 말을 낳을 만큼 아름다운 리아드(전통 가옥)의 화려한 문양 타일도 사람들과 함께 흙더미 아래 묻혔다.

▶모로코 국가 ‘샤리프의 찬가’에 ‘형제들이여 가자/ 위엄을 향하여/ 세상에 보여주자/ 우리는 여기에 계속 살아왔다고’라는 구절이 있다. 사막 전사 후예들의 용맹한 기상을 드러내는 가사다. 지난 카타르 월드컵 때 아프리카 국가로는 처음으로 4강에 진출하는 저력도 과시했다. 신화에 따르면 아틀라스가 하늘을 떠받친 뒤 비로소 세상의 혼돈이 사라졌다고 한다. 모로코가 지금의 혼돈을 딛고 다시 일어서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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