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일본의 오염수 방류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이 지난달 24일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에 쌓여 있는 오염수의 해양 방류를 강행했다. ‘과학적으로 안전한지 아닌지’ 논쟁에 앞서, 오염수 방류가 ‘비도덕적 행위’라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2011년 3월 원전 사고 이후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는 엄청난 양의 방사성 물질이 바다와 토양 등에 방출돼 왔다. 세슘137이라는 한 가지 방사성 물질만 놓고 보더라도 정상 가동 시 상한선의 약 7만년 분량이 누출됐다. 사고 직후의 오염은 막을 수 없었을지 모르지만 현재의 해양 방류는 고의적인 투기이다. 이미 7만년치의 방사능으로 오염시킨 바다를 더 오염시키는 것이 용납될 수 있는 일인가. 바다는 쓰레기장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원전 사고가 세계적인 문제가 됐다는 점이다. 오염수를 육지에 보관하면 일본 국내 문제로 한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바다에 흘려보내면서 전 세계적 문제가 돼 버렸다. 나는 일본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한국 사람들을 비롯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사죄하고 싶다.
이런 상황에서도 후쿠시마에서 대규모 반대운동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의아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정부와 매스미디어의 선전이다. 2021년 4월 해양 방류 방침을 결정한 이후 일본 정부가 지난 2년4개월 동안 주력한 것은 ‘안전 홍보’와 수산업계의 영업피해 대책이었다. 정부는 언론과 국민에게 오염수 대신 ‘알프스(ALPS·다핵종제거설비) 처리수’라고 부르도록 했다. 그리고 TV·신문 광고를 통해 ‘ALPS 처리수는 안전하다’고 퍼뜨렸다. 정부 관계자들은 전국 고등학교에서 안전성을 홍보하는 수업을 진행했다. 후쿠시마산 수산물 판촉 캠페인도 반복적으로 진행했다. 이런 선전과 어업인 지원을 위해 일본 정부는 800억엔의 세금을 투입할 예정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가장 중요한 것을 소홀히 했다. 2021년 오염수 방류 결정 이후 시민들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정부 주최의 공청회는 열리지 않았다. 올여름 들어 후쿠시마현 여러 곳에서 시민과 정부·도쿄전력의 의견 교환회가 열렸다. 하지만 이는 시민 자원봉사자들이 요청해 개최한 것이다. 정부 주최가 아니다.
오염수 방류 직전인 지난달 20일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후쿠시마 제1원전을 시찰하고 도쿄전력 간부들과 만났다. 왕복 도중에 후쿠시마현을 지나갔지만, 후쿠시마 주민들과 대화할 시간은 만들지 않았다. 정부가 시민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결국 ‘대화’를 경시하고 ‘돈’과 ‘선전’으로 합의를 조작했다. 오염수 해양 방류에 관해서는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또 다른 이유는 후쿠시마에 사는 사람들이 지쳐버렸다는 것이다. 후쿠시마현에는 지금도 원자력 비상사태 선언이 내려져 있다. 방사능 수치가 높아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지난 12년 동안 피폭 걱정은 오로지 후쿠시마현 주민들만의 몫이었다. 정부는 주민들의 피해 호소를 귀기울여 듣지 않았다.
이번엔 오염수 해양 방류다. 후쿠시마 주민들에게는 이제 ‘분노’보다 ‘포기’의 감정이 지배적이다. 후쿠시마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한 여성은 “지난 12년간의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해양 방류가 시작됐다는 소식을 듣고 존엄성을 짓밟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절망했다. 너무 억울했다”고 말했다. 일본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도, 후쿠시마에 사는 사람들을 절망에서 구하기 위해서라도 합의 없는 해양 방류는 중단, 재검토돼야 한다.
이미 그 움직임은 시작됐다. 지난 8일 시민들은 국가와 도쿄전력에 해양 방류 중단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원고 수는 100명이 넘었으며,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정치의 폭주를 막는 것은 사법부의 역할이다. 재판부의 판단을 주목하는 이유다.
일본에서는 원전 사고 이전부터 원전 정책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하지만 정부는 매스미디어와 일체화된 선전으로 ‘원전 안전 신화’를 만들어 반대 목소리를 억눌렀다. 일본은 ‘지진대국’임에도 원전을 계속 지었다. 사고가 난 지금은 ‘해양 방류 안전 신화’를 만들어 또다시 반대 목소리를 억누르려고 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부디 이 문제에 계속 관심을 가져 일본 정부가 더 이상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압박해주기를 부탁한다.
마키우치 쇼헤이 전 아사히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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