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넘어 공감할 ‘여성 차별의 서사’… 위트 있게 꼬집었죠”
1950~1960년대 브라질 배경
가부장제 사회 억압·편견 딛고
두 자매의 자아찾기 분투 그려
18國 번역… 영화는 칸 수상도
뻔한 해피엔딩? 열린 결말이 현실
“흥미로운 韓작가들 알아가고파”
뉴욕에 살게 되면서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그것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브라질이 현지에 살 때보다도 이곳 뉴욕에서 오히려 선명하고 확실하게 보인다는 점이었다. 자신의 가족이나 브라질 여성들이 굉장히 다른 삶을 살고 있고, 자신 역시 주위 작가들과 굉장히 다른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도.
브라질에선 출판사를 운영한 경험도 있었지만, 자신이 직접 쓴 책을 처음 내는 일이었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이야기를 꼼꼼하게 설계해 쓰는 게 아니라 직관적으로 쓰는 편이어서 쓰는 동안 ‘자신이 정말 작가가 맞나’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에우리지시는 리우데자네이루의 작은 동네 치주카에서 은행원 남편 안테노르와 아들 아폰수, 딸 세실리아와 함께 안정적인 삶을 꾸려간다. 어느 순간 인생의 공허를 느끼고 요리책 한 권을 완성하지만 “가정주부가 쓴 책을 누가 본다고 그래? 이쑤시개나 갖다 줘”라는 남편의 말 한마디로 끝나고, 다시 동네 최고의 재봉사로 거듭나지만 역시 남편에게 들켜 수포로 돌아간다.
아름다운 외모로 남성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던 언니 기다는 자신을 버린 남편 때문에 경제활동과 육아를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이중고에 빠진다. 기다는 강인한 생활력으로 일을 다시 구하고 여성 공동체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간다. 에우리지시 역시 자신을 옥죄는 세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새 자아를 시도하는데.
“에우리지시는 이제 무를 바라본다기보다는, 어떤 느낌을 다시 느끼기 위해 앉은 자리를 지켰다. 그 느낌은 서서히 다가와, 고요 속에 터를 잡고 점점 자라나기 시작했다. 커질 대로 커진 느낌은 마침내 에우리지시의 눈에 들어왔고, 에우리지시는 그것을 알아보았다. 그 느낌은 바로 볼 줄 아는 능력이었다. 에우리지시는 책장에 꽂힌 책을 보았다. 그녀는 책장을 보았다….”
“여성들이 자아실현 하기가 지금보다는 당시가 훨씬 더 어려웠기 때문이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는가) 지금 많이 변화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여성 살인율은 굉장히 높고, 브라질 내 지역에 따라서 차이도 많이 난다. 사회적 지위에 따라서 차이도 나고. 역사적으로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는데, 포르투갈이 보수적 사회여서 그 영향을 받은 것도 있을 것이다.”
―에우리지시나 기다의 실제 모델이 있는가.
“책에 나오는 두 자매 이야기는 그동안 알고 지냈거나 만났던 여성들의 삶을 모아놓은 것이다. 예를 들면, 어렸을 때 할머니로부터 요리책을 받았는데, 할머니처럼 요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기분이 좋았다. 처음 본 것은 오리 레시피였다. 첫 번째, 오리를 사라, 두 번째, 오리를 죽여라…. 너무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많은 것을 해야 한다니. 여성들이 오리요리 하나를 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수고를 해야 하는지를 깨달았고, 사람들이 요리를 평가 절하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책에 요리와 관련된 장면을 많이 넣게 되었다.”
―애정이 갔던 인물이나 캐릭터는 누구인지.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는 젤리아다. 제가 가톨릭학교에서 수녀들과 함께 자랐다. 당시에 수녀들을 봤을 때 인생이 쓸쓸하다거나,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물론 몇몇 분들은 행복해 보였지만, 몇몇 분들은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이런 면이 젤리아를 좋아하는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에우리지시에게 독서와 글쓰기, 타자기는 무엇일까.
“저는 비록 브라질 여성 이야기를 했지만, 대한민국 여성들은 물론 전 세계 여성 독자 모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여성들이 어떤 나라에 살고 있든지, 여성들의 경험은 모두 유사하고 똑같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 이거 우리 할머니 이야기인데. 이거 우리 고모 이야기인데’라고. 책을 읽고 나면 다른 나라 여성들이 어떤 환경에 처해 있는지 느낄 수 있을 것이고, 둘째 모든 여성이 똑같은 경험을 하고 있구나라고 공감할 것이다.”
1973년 브라질 헤시피에서 태어나서 리우데자네이루의 작은 동네 치주카에서 자란 마르타 바탈랴는 2016년 첫 장편소설 ‘보이지 않는 삶(A vida invisivel de Euridice Gusmao)’을 출간하면서 작가로 데뷔했다. 이후 ‘성은 없었다(Nunca houve um Castelo)’ 등을 펴냈다.
―작가로서 포부나 희망이 있다면.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글쓰기는 저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일이다. 다행히 에우리지시가 아니어서 글을 계속해 쓸 수 있다는 점이 굉장히 좋다.”(웃음)
인터뷰는 그가 스페인어가 박힌 기자의 티셔츠에 대해 “나이스!”라는 말을 연발하면서 시작됐다. 깊은 눈과 사려 깊은 주름이 인상적인 그의 얼굴에선 다정한 웃음과 표정이 그치지 않았다. 가끔 유머러스한 대답도 나왔다. 영어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지만, 다행히 몇 번은 웃을 수 있었다.
뉴욕에서 6년 정도 살다가 현재는 캘리포니아 샌타모니카에서 신문사에 글을 쓰면서 남편 및 두 아이와 함께 살고 있다. 며칠 전 처음 방한한 그는 이번 주까지 파란만장한 도시 서울에서 보낼 예정이다. “한국 문학을 많이 접해보진 못했습니다. 이번 서울국제작가축제에서 흥미로운 작가들을 많이 만났어요. 앞으로 많은 대화를 나눠보고 싶군요.”
글·사진=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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