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석유 보일러 퇴출!” 유럽의 결단, 난방 시장 어떻게 바꿀까? [세모금]

2023. 9. 12.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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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오스트리아 등 보일러 금지 법안 속속 통과
화석연료 난방·취사, 탄소 배출 주범 중 하나로 지목
신재생에너지 65% 이상 강제, 히트펌프에 보조금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유럽 최대 가전 전시회 ‘IFA 2023’ LG전자 부스에서 차세대 히트펌프 관련 기술이 소개되고 있다. 김민지 기자

[헤럴드경제=양대근 기자] 유럽 주요국가에서 화석연료 보일러의 신규 설치를 금지하는 법안이 속속 통과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가정용·사무용 난방 및 취사기기 등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표준 체계들이 빠르게 바뀔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12일 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지난 8일(현지시간) 독일 하원은 오는 2024년 1월 1일부터 발효되는 ‘보일러 금지법’을 통과시켰다. 이번 법안은 가스 및 석유 보일러의 신규 설치를 사실상 금지하고, 새 보일러는 신재생에너지를 최소 65% 이상 사용하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또한 히트펌프 등 친환경 보일러 설치비용의 일부를 보조금으로 지원하고, 탄소 포집 및 저장 기술을 적용해 생산한 이른바 ‘블루수소’의 사용을 인정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다른 유럽국가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오스트리아는 올해부터 이미 신규 가스보일러의 설치를 금지했으며, 영국과 덴마크 역시 국제에너지기구(IEA)의 가스보일러 판매금지 권고에 맞춰 오는 2025년부터 신축 건물에 가스와 석유 보일러 설치의 단계적 금지를 추진할 예정이다. 프랑스도 2026년부터 새 건물의 가스 보일러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독일 루브민에 위치한 노드스트림1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의 모습. [AP=연합]

IEA 등에 따르면 난방·취사를 위해 사용된 화석연료에서 나온 이산화탄소는 지구 전체 탄소 배출량의 약 25%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일의 경우 현재 약 3000만 가구가 화석연료 기반 보일러를 사용 중이다

LNG(액화천연가스)와 LPG(액화프로판가스) 등은 일반 가정의 생활용 난방·온수·취사를 담당하는 가장 기초적인 생활 연료다. 가정 이외에도 일반 상점이나 사무용 건물 등의 난방체계 또한 화석연료 기반 표준에 맞춰 운영돼 왔다.

업계에서는 유럽을 중심으로 기존 체계가 빠르게 바뀔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각국 정부와 기업들이 주도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은 이러한 전망에 힘을 싣는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독일 정부는 화석연료 보일러를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난방으로 전환하기 위한 지원금으로 약 14조원의 예산을 책정하는 것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달 초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유럽 최대 가전 전시회 ‘IFA 2023’에서 관람객들의 큰 주목을 받았던 히트펌프는 화석연료 보일러를 대체할 수 있는 대표적인 ‘새 얼굴’로 꼽힌다.

히트펌프는 가열된 따뜻한 공기나 냉각된 찬 공기를 건물 내부 등에서 전달·순환시키는 장비를 말한다. 난방용 히트펌프는 지열이나 소량의 에너지 등으로 가열한 물에서 열을 추출한 후 온기를 띤 공기를 실내로 순환시키는 시스템이다. 기존 가스보일러식 난방 대비 3배에서 5배 가량 에너지 효율성이 크다.

유럽의 히트펌프 시장 규모는 2020년 60만대에서 오는 2027년에는 250만대 수준으로 4배 이상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가전업계 역시 이러한 성장세를 주목하고 있다. LG전자가 개발한 고효율 히트펌프 냉난방시스템의 올해 유럽 판매량은 작년 대비 30%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을 비롯해 전세계에서 천연가스 등 난방 에너지의 가격이 급등한 것도 화석연료 보일러 퇴출을 앞당길 수 있는 요인이다. 일례로 러시아 천연가스 의존도가 유럽에서 가장 높았던 오스트리아는 지난해 에너지 대란을 겪은 이후 화석연료 보일러 퇴출에 앞장선 바 있다.

히트펌프의 설치 비용은 원화 기준 700만~800만원으로 일반 가스보일러 대비 10배 가량 비싸다. 하지만 유지비용은 기존 보일러의 절반 정도로 상대적으로 낮아 미래 경제성이 더 크다는 평가다.

반면 화석연료 중심의 기존 난방체계 패러다임 변화에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반론도 있다. 히트펌프나 재생에너지 기반 설비의 초기 설치 비용이 비싸기 때문에 정부 보조금이 일부 지원되더라도 일반 국민들에게 경제적인 부담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 제기된다.

영국의 에너지·유틸리티 연합 측은 “2035년 이전까지는 히트펌프가 일반 가정에 설치하기에 여전히 비싼 가격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며 “소비자가 경제성 격차를 충족할 수 없기에 기존 보일러를 유지하면서 파이프라인에 수소를 혼입하는 것이 더 나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한국의 경우 기존 화석연료 보일러 체계가 상당 기간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히트펌프는 가스보일러보다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한다. 단독 주택 비중이 높은 유럽에서는 공간 마련이 용이하지만 공동주택이 많은 한국은 실외기 설치 공간 등 추가적인 제약이 따른다.

최근 서울시의회가 진행한 연구 용역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기존 노후 보일러를 신형 콘덴싱보일러로 교체하는 것만으로도 에너지 절감과 온실가스 감축, 질소산화물 저감 등 총 7720억원에 달하는 편익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bigroo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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