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내게 예술작품…박물관도 진화하려 애써요”
컴퓨터와의 추억을 이야기할때면 게임 이야기가 나오곤 한다. 따지고 보면 ‘컴퓨터의 역사’란 ‘게임의 역사’다. 1980년대 팩 꽂아 즐기던 슈퍼마리오, 1990년대 도스(Dos) 시절 페르시안 왕자와 너구리, 2000년대 피시(PC)방 문화의 상징 스타크래프트·리니지·포트리스·카트라이더 등 게임은 시대를 드러낸다. 집에서 텔레비전에 연결해 하는 콘솔게임의 시초는 첫 개인용컴퓨터(PC) 개발보다 3년이나 앞섰다.
개관 10주년을 맞은 제주 넥슨컴퓨터박물관에는 컴퓨터 기술과 게임이 서로를 자극하며 발전해온 역사가 기록돼 있다. 2013년 7월27일 넥슨컴퓨터박물관이 문을 연 때부터 지금까지 10년 동안 박물관을 지켜온 최윤아(55) 관장은 지난 7일 박물관에서 ‘한겨레’와 만나 “개관 당시 ‘국가가 해야 할 박물관을 게임회사가 잘 해낼 수 있겠냐’는 질문을 한겨레 기자로부터 받고, ‘잘 해야지’ 하고 의지를 다졌다”고 말했다.
게임회사 넥슨의 지주회사인 엔엑스씨(NXC)가 자리한 제주에 문을 연 넥슨컴퓨터박물관은 지난 10년 사이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주목받는 컴퓨터박물관으로 성장했고, 제주의 대표적인 ‘관광코스’로 자리잡았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로는 예약제로 운영 중이다. 이날 찾은 박물관에는 1800년대 타자기를 들여다보는 연인, 나무로 만든 세계 최초의 마우스를 보는 가족, 각종 게임을 직접 해보는 아이들까지, 관람객이 끊이지 않았다.
최 관장과 제주, 그리고 넥슨컴퓨터박물관과 인연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화여대에서 교육공학을 전공한 뒤 결혼해 5년 가까이 전업주부로 지내던 최 관장은 불현듯 대학원(서울대 서양학과)과 직장생활(아트선재센터)을 동시에 시작하며 ‘인생의 길’을 바꿨다. 이후 인투뮤지엄 대표, 스페이스 포 컨템포러리 아트 실장 등으로 바쁘게 살다가 몸과 마음이 지쳤을 무렵, 서해안을 따라 제주까지 쭉 길을 나섰다.
“훌쩍 떠나온 제주에서 10년 넘게 머물게 될 줄 상상도 못했죠.” 여행길에 오래 알고 지낸 고 김정주 넥슨 창업자와 유정현(당시는 엔엑스씨 감사·지금은 이사) 부부를 만났고, 그들에게서 컴퓨터박물관 구상을 들었다. “설립 승인을 받을 준비가 아직 안됐다기에 서류 작업을 좀 도와주자고 생각했다가 계속 일하게 됐다.” 40대에 새로 떠난 길 위에 이제 50대의 그가 서 있다.
최 관장은 “한국 게임의 역사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박물관을 만들겠다는 안목을 가진 창업자의 적극적인 지지 덕분에 개관이 됐고, 그 마음이 통해 각지에서 기증이 이어졌다. 현재 전체 소장품 1만6천점 중 1만점이 기증품”이라고 말했다. 얼마 전에도 2018년 개관했던 제로하나컴퓨터박물관이 문을 닫으며 소장품 4573점을 이 곳에 기증했다. 박물관 한 쪽 기증자 명단에는 고 김정주 창업자부터 ‘바람의 나라’ 게임을 함께 개발한 박정협·박원용 등 넥슨의 역사와 함께 한 이름들이 올라 있다.
2011년 제주 여행왔다 창업자 만나
‘컴퓨터·게임 역사 박물관’ 구상 동참
10년 새 제주 대표 관광코스로 성장
‘바람의 나라’ 초기 버전 등 복원하고
출시 안된 게임 아카이빙 작업까지
“은퇴 전 다른 게임사들까지 아울러
외국서 한국 게임 역사 전시하고파”
지난해 2월 김정주 창업자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고, 올해 3월에는 넥슨이 2004년부터 운영해온 누적 이용자 수 3296만7265명의 국민 게임 ‘카트라이더’가 서비스를 중단했다. 뜨거웠던 것이 한순간에 사라지기도 한다. 넥슨컴퓨터박물관은 넥슨의 역사와 함께 오래된 컴퓨터·프로그램·게임 등의 복원 작업에도 공을 들인다. 애플 초기 컴퓨터 본체 복원본에는 애플 공동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이 직접 서명을 남겼고, 세계 최장수 서비스 게임 ‘바람의 나라’ 초기 버전은 개발자들이 힘을 합쳐 다시 만들었다. 서비스가 종료된 카트라이더도 이 곳 박물관에선 살아있다.
최 관장은 “내게 게임은 예술 작품과 다르지 않다”며 “개발자들이 밤 새워서 연구·개발해 벌어들인 돈을 허투루 쓸 수 없어, 사회공헌 성격의 박물관인데도 진화를 거듭하려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들어서는 넥슨의 개발자들이 오랜시간 개발에 공을 들였지만 출시하지 못한 게임들에 대한 아카이빙(자료축적) 작업도 하고 있다.
최 관장은 “은퇴 전에 다른 게임사들을 아울러 한국 게임의 역사를 외국에 전시할 기회가 오길 꿈꾼다”고 말했다.
제주/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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