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대’와 ‘조려대’…후폭풍 휩싸인 대학가
(시사저널=강윤서 인턴기자)
대학가가 '본교·분교' 논쟁으로 들썩이고 있다. 학생들의 화합과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가을 축제가 역설적으로 분열과 갈등을 밀어올리며 혐오 민낯을 드러낸 모습이다.
12일 대학가에 따르면, 대학생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익명으로 올라 온 "원세대 조려대" 글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이다. '원세대'와 '조려대'는 각각 연세대학교 미래캠퍼스(원주)와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세종시 조치원읍)를 비하하는 의미로 쓰이는 표현이다.
해당 글 작성자는 "연고전 와서 사진 찍고 인스타 올리면 네가 정품 되는 거 같지"라며 "너흰 그냥 짝퉁이야 저능아들"이라고 격한 표현을 동원해 캠퍼스 학생들을 저격했다.
지난 11일 고려대 자유게시판에도 "(세종캠퍼스가) 차별당하는 게 당연한 거다. 분교와 본교랑 어떻게 같나"라는 글이 게시되면서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이와 함께 '세종(세종캠퍼스 학생)은 왜 멸시받으면서 꾸역꾸역 기차나 버스 타고 서울 와서 고연전 참석하려는 것임?' 등 복수의 조롱성 글이 다수 게시됐다.
본교의 분교 저격에 분교 총학생회도 논쟁에 뛰어들었다. 고려대 세종캠퍼스 총학생회는 지난 4일 "서울캠퍼스에서 세종캠퍼스 학생들을 차별한다"는 대자보를 양쪽 캠퍼스에 모두 게시했다. 세종캠퍼스 총학은 대자보에서 지난 5월 고려대 응원제인 '입실렌티'를 준비하면서 서울 캠퍼스 총학생회장이 세종캠퍼스 재학생을 '학우'가 아닌 '입장객'으로 표현한 점을 지적하며 "세종캠퍼스 학생을 학우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 담긴 것"이라고 반발했다.
학생들은 '축제 참가 자격'을 두고 쪼개졌다. 고려대 인문대학에 재학중인 최아무개씨는 "세종캠퍼스와 우리는 입학 성적이 다르며 엄연히 다른 학교로 인식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세종캠퍼스 학생들이) 같은 혜택과 행사를 누리려고 하는 것에서 불만이 있을 뿐"이라며 본교와 분교 성적이 다른 만큼 학교 축제나 행사에서도 동일한 입장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캠퍼스 간 '차별 논란'을 마주하는 해석도 다양하다.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02학번 졸업생 김아무개씨는 "본교·분교 차별은 마치 인종차별 같다"며 "특히 고연전이라는 축제 자체가 엘리트들끼리만 즐기는 '그들만의 리그'처럼 자리 잡히면서 더 심각해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거에 비해 현 세대가 분교에 대한 차별적 발상을 더 강하게 내면화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이어 "수능이라는 단편적인 잣대에 따라 성장한 아이들의 자화상이기도 해 안타까운 마음도 크다"고 씁쓸함을 전했다.
일각에서는 청년층의 이 같은 저격과 혐오에 대해 '현대판 계급주의' 인식을 드러낸 것이라며 자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낸다. 그러나 또 한쪽에서는 입학 성적에 따른 '다름'이 있는데 본교와 동일한 혜택과 대우를 누리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반박한다.
대학교의 본교·분교를 둘러싼 잡음은 해묵은 논쟁이다. 고려대와 연세대 뿐 아니라 이원화 캠퍼스를 둔 다른 학교들도 해마다 이 같은 논쟁에 휩싸여왔다.
경기 안성시 대덕면에 다빈치캠퍼스를 운영하는 중앙대학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에브리타임 내 중앙대 서울캠퍼스 자유게시판에는 "지방 사람인데 어제 술자리에서 안성캠 (사람을) 만났다"며 "XX이 (서울캠이랑) 같은 학교인 것처럼 말하는데 고소 가능한가?"라며 욕설을 담은 글이 게시됐다. 글 작성자는 "솔직히 (안성캠 학생이) 같은 학교인 척 하는 거 굉장히 버릇없고 싸가지 없다고 생각한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임명호 단국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해마다 본교·분교 논쟁이 반복되는 데 대해 "기성세대는 나만 공정하면 괜찮다는 인식이 강했다면 현 2030세대는 '나'의 공정뿐만 아니라 '타인'의 공정까지도 엄격하게 판단하려는 성향이 강하다"며 "젊은 세대가 '공정'에 대한 잣대를 기성세대에 비해 더 엄격하고 분명하게 구분짓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임 교수는 "예컨대 출튀(출석체크만 하고 수업을 듣지 않고 몰래 나가는 경우)에 대해서 수업을 잘 듣는 학생들이 찾아와 지적하는 경우가 많이 늘어난 것과 비슷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기본적으로 현 세대는 '똑같은 노력을 하지 않고서 왜 똑같은 혜택을 누려야 하느냐'는 불만이 강하게 나타난다"며 "보이지 않는 공정에 대해 더 예민하게 지적하는 경향이 있다고"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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