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바둑요정 스미레, 한국 진출 뜻 이룰까
-바둑의 어떤 점이 좋아요?”
“이길 때 많이 기쁜데 지면 너무 슬퍼요.”
-약한 상대와 강한 상대 중 누구와 두는 게 더 재미있나요?”
“강한 상대요. 공부가 되니까요.”
2019년 1월, 나카무라 스미레 양의 인터뷰 일부다. 두 달 뒤 열 살 생일을 맞는 스미레는 한국 보도진의 취재 열기에 압도된 듯 말수가 적었지만 중요한 질문엔 또렷이 답했다. 미래 목표에 대해선 “빨리 세계 최고기사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바둑이 싫었던 때는 한 번도 없었다고도 했다.
당시 스미레는 4월 프로기사 ‘임관’을 앞둔 상태였다. 열 살 짜리 일본 천재기사 내한 소식에 맞춰 한국 최정 9단과의 기념 대국이 만들어졌다. 스미레의 정선(定先) 치수로 진행된 바둑은 균형이 일찍 무너지면서 최정의 완승으로 끝났다. 시무룩한 스미레를 향해 최정이 “너무 긴장했던 것 같다”며 위로했다.
프로가 된 스미레는 일직선으로 성장해갔다. 대표적인 실적이 2023년 2월의 여류기성전 우승이다. 도전 3번기에서 타이틀 보유자 우에노 아사미에 2대1로 역전승했다. 13세 11개월. 일본 바둑사상 최연소 우승 기록에 전국이 뒤집어졌다. 인터뷰에 25개 언론사 기자 70명이 참석했다고 한 매체가 전했다.
스미레는 입단 전 일곱 살 때 약 2년 간 한국 한종진 도장서 유학했다. 그녀의 유별난 한국 사랑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한국 친구들과 친하고 한국 음식을 즐기며 한국어도 능통하다. 올해 초 김은지와 맞선 한일 천재소녀 3번기 때도 “한국서 살고싶다”고 했다.
스미레의 눈길은 결국 한국의 객원기사 제도로까지 어어졌다. 구체적으로 움직인 것은 올해 5월 무렵부터라고 한다. 그녀는 “한국엔 강자도, 대국 기회도 많다. 이런 환경에서 공부해 더 강해지고 싶다”고 주변에 말해왔다. 친구나 음식이 한국을 사랑하는 이유의 전부가 아닌 것이다.
난처해진 것은 일본기원이다. 약간 과장하자면 스미레는 일본기원을 지탱해주는, 몇 안 되는 기둥 중 하나였다. 바둑 인기의 가속적 하락, 기전의 잇단 축소, 국제 경쟁력 저하 등 여러 역경 속에서 스미레는 그나마 일본 바둑의 희망을 담은 유일한 불빛 같은 존재였다.
일본기원은 천재소녀 출현 소식에 영재 특별채용 제도를 급조하고 고단 기사의 추천과 시험기를 거쳐 ‘바둑의 날’에 발표했다. 그렇게 사상 최연소 프로로 만들어진 스미레를 위해 다양한 스타 마케팅을 베풀어왔다. 스미레가 관중과 보도진을 몰고 다니면서 이 전략은 크게 성공했다.
일본 바둑 팬들의 스미레를 향한 기대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녀가 등장하는 곳엔 예외없이 사인을 받기 위한 행렬이 만들어진다. 각종 캠페인에도 단골로 초청받는다. 웬만한 연예인 못지 않은 인기다. 20세기 후반까지 세계를 지배하다 추락한 일본 바둑을 다시 일으킬 구세주로 자리매김했다.
스미레의 가족들도 힘든 시간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일본 바둑계의 대들보적 존재로 떠오른 딸의 해외 이적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스미레의 아버지는 일본 중견기사인 나카무라 신야(仲邑信也) 9단이다. 어머니 역시 바둑 강사로 활약 중인 바둑 집안이다.
스미레가 해외 무대로 옮겨갈 경우 일본 바둑계가 마주칠 충격파는 만만치 않을 것이다. 어쩌면 실망감이 너무도 커서 재기를 향한 동앗줄을 놓아버릴 가능성도 있다. 그만큼 스미레는 일본 바둑계와 팬들에겐 옛 영광 회복이 걸린 상징적 존재였다.
일본 현역 프로가 한국, 중국 등 경쟁국으로 이적한 사례는 단기 유학과 보급 목적자 외엔 한 번도 없었다. 더욱이 스미레는 일본바둑 정상의 한 봉우리 격인 현역 타이틀 홀더다. 그나마 한 중 일 3국이 근근히 이끌어온 세계 바둑 균형도 흔들리게 됐다.
루이나이웨이 사례와는 성격이 많이 다르다. 루이는 당시 세계 여성 최고수였다. 그리고 정치적 박해를 받아 갈 곳이 딱히 없는 곤궁한 처지였다. 한국은 루이에 손을 내밀어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겼다. 시장 규모와 종목 특성을 볼 때 손흥민 김하성 등과 비교하는 것도 어울리지 않는다.
일본측은 고심 끝에 스미레의 객원기사 활동을 위한 추천장을 8월초 한국기원에 보내왔다. 그리고 시작 시점을 내년 3월 초 이후로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스미레가 보유한 여류기성전 첫 방어전이 2월 말 끝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때까지 보안을 요청했는데 한국은 이를 지키지 못했다.
한국기원은 곧 스미레의 객원기사 신청 안건 심의에 들어간다. 13일 기사 대의원회에서 추천 여부를 결정하고 15일 운영위원회로 넘긴다. 최종 결정은 10월 말로 예정된 이사회에서 판가름난다.
어떻게 처리될까. 결국 받아들일 공산이 훨씬 크다. 최고 선수가 되고 싶어 최고 시장을 노크한다는 사람에게 문을 닫아 거는 것도 도리가 아니다. 수십년 전 일본 바둑에 괄시받던 한국이 언제 이렇게 컸나 싶어 통쾌하기도 하다.
하지만 스미레의 결정에 100점 만점을 줄 생각은 없다. 그녀는 한국의 동년배 기사들과 특별대국을 가질 기회가 꽤 많다. 올해는 한국여자리그 정식 선수로도 등록해 한 시즌을 뛰고있다. 언제든지 건너와 대면(對面)으로 대국할 수 있다. 12일 현재 6판을 두어 4승 2패, 다승 동률 12위를 기록 중이다. 이 정도 대국량이면 적정선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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