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세수펑크에 환율 대응 기금 수십조 ‘임시방편 당겨쓰기’
코로나19 대유행 당시인 지난 2020년 4월 전국민 재난 지원금 등 7조6천억원 규모 2차 추가경정예산안을 발표해야 하는 홍남기 전 경제부총리에겐 고민이 있었다. 재정 건전성을 위해 국채 발행 없는 추경을 하려 했으나 ‘돈 나올 구석’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홍 전 부총리의 고민을 해결해 준 건 뜻밖에도 외환당국이었다. 환율 안정을 위한 외환시장 개입 실탄인 ‘외국환평형기금’(외평기금)에 쌓인 원화 2조8천억원을 끌어오기로 해서다. 정부 관계자는 “실제 외평기금으로 지원할 수 있는 재원은 그보다 많았지만, 나머지는 예산실의 지출 구조조정 등을 통해 마련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올해와 내년 역대급 세수 부족을 겪는 정부가 고안한 ‘돈줄’ 확보 방법도 외평기금을 통한 원화 조달이다. 그 규모만 최대 40조원 남짓으로 추산된다. 외환시장 대응 재원을 가져와 올해 세수 펑크(세수 결손)를 메우고 내년 적자국채 발행도 최소화하겠다는 복안이다. 그러나 이런 임시방편 아닌 근본적인 세수 확충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12일 재정 당국 등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오는 4분기(10∼12월) 중 외평기금이 보유한 원화 일부를 재정 지출 재원으로 넘길 계획이다. 외평기금은 환율 안정을 위해 외환 시장에 개입할 목적으로 만든 정부 기금이다. 원-달러 환율이 오를 땐 보유 달러를 팔아 원화를 사들이고, 반대로 환율이 내리면 갖고 있는 원화를 매도하고 달러를 매입한다.
시장 개입의 실탄 구실을 하는 원화는 ‘공공자금관리기금’(공자기금)으로부터 빌린다. 공자기금은 정부가 국고채를 찍어 조달한 돈을 각종 기금이나 회계 계정에 나눠주는 ‘정부 기금들의 은행’으로 불린다. 반면 달러화 등 외화 매도 물량은 외환보유고를 사용하고 필요시 해외 투자자들에게 달러나 유로화 표시 외국환평형기금 채권(외평채)을 발행해 마련한다.
지금까지와는 반대로 외평기금은 올해와 내년 공자기금에 대규모 원화를 갚기로 했다. 이처럼 원화 상환이 가능해진 건 대외 환경이 확 달라진 영향이 크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안정세를 보이던 원-달러 환율이 고물가·고금리 여파 등으로 큰 폭으로 뛰며 외환 당국도 보유 달러를 대거 내다 팔고 그만큼 원화를 쌓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외환 당국의 달러 순매도액은 2021년 141억3천만달러, 지난해 458억6700만달러에 달했다. 올해도 1분기(‘1∼3월)에만 21억달러어치를 순매도했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2021년부터 올해 1분기까지 달러를 원화로 바꿔 새로 쌓인 원화 자산이 약 78조1천억원(매년 연평균 환율 기준)에 이른다는 의미다.
통상 외환 시장 개입은 정부 외평기금과 한은 자체 재원을 절반씩 동원하는 만큼, 이 기간 외평기금에 추가로 쌓인 원화는 약 39조1천억원가량으로 추산된다. 이처럼 남는 원화로 내년에 외평기금이 공자기금으로부터 빌린 돈 20조원을 상환해 공자기금의 국채 발행 규모를 줄이고, 올해도 수십조원을 갚아 세수 펑크 보전에 쓰겠다는 게 정부의 구상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공자기금에서 빌린 돈은 금리가 국채 만기 10년물 수준으로 높아서 20조원 조기 상환으로 재정에서 부담해야 하는 이자가 연간 5400억원씩 줄어드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내년부터 국내 투자자를 상대로 저금리 원화 외평채 발행도 함께 재개해 금리가 상대적으로 높은 공자기금 의존도를 낮출 방침이다.
이 같은 방향은 재정 운용의 효율성을 높이는 측면도 있으나, 외환시장 대응 목적의 재원을 부족한 세수를 메울 용도로 가져다 쓰며 원칙이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외평기금의 적정 자산 보유 여부는 외환 정책을 따라 결정해야 하는 것으로, 국채 발행 규모를 조절하기 위해 외평기금을 이용하는 건 원칙적으로 맞지 않는다”며 “외평기금을 통한 원화 조달은 일반적인 의미의 세수 보전과 전혀 거리가 멀고 정부가 재정 건전성 악화라는 상처를 숨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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