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기술 보조금 경쟁 불붙어…무역마찰 감수할 가치 충분
저성장의 늪 벗어나려면
정부 주도 R&D 정책 필요
좋은 아이디어에 인센티브
위험관리 규제도 정부역할
美中갈등 속 한국의 선택
군사·교역 구분해 대응을
◆ 세계지식포럼 ◆
"세계적인 저성장을 극복하기 위해선 강력한 행정부의 권한이 가장 중요하다. 후발 국가는 소득과 기술 수준도 필요하지만 정책이 잘못되면 선두를 따라잡기 힘들다."
2018년 노벨경제학 수상자이자 성장이론의 대가인 폴 로머 보스턴칼리지 교수가 코로나19 이후 저성장의 늪에 빠진 국가들이 정책적인 노력에 더욱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인구가 정체되며 '성장 정점론' 우려가 커지는 한국은 다양한 국가적 실험을 망설이지 말아야 한다는 조언을 내놨다. 12일 세계지식포럼 '폴 로머에게 듣는 신성장 전략' 세션에서 로머 교수는 "아이디어 경제학의 핵심은 전통적인 개념인 노동과 자본보다 정부 정책이 성장에 중요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로머 교수는 인력과 기술 혁신에 대한 투자가 경제를 성장시키는 동력이 된다는 '내생적 성장이론'과 '아이디어 경제학'으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노동과 자본이 생산량을 결정한다고 분석한 전통 경제학과 다르게 연구개발(R&D) 등을 통해 축적된 아이디어와 기술이 장기적으로 경제 성장을 이끈다는 것이다. 최근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가 2% 후반까지 하락하고 피크아웃(정점 통과) 우려까지 불거지면서 로머 교수의 성장이론은 한국을 비롯해 급격한 산업 구조 변화를 겪는 국가들에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그는 "좋은 아이디어를 경제적 가치로 연결하기 위해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인재들이 정부에서 더 많이 일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며 "싱가포르의 경우 정부가 우수한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그에 상응하는 보상체계를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아이디어를 정책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행정부가 강력한 기능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로머 교수는 "중요한 결정을 하기 위해선 거대한 위원회를 만들어 합의점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지만 이 같은 의사결정이 해법은 아니다"며 "아닌 건 아니라고 얘기할 수 있는 의사결정과 용기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1980년대 초반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급격히 인상한 폴 볼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처럼 용기 있는 결정을 지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가가 특정 영역을 발전시키고 위험을 관리하기 위해 규제 정책을 펼치는 것 역시 불가피하다고 봤다. 로머 교수는 "규제가 혁신을 저해하는 측면도 있지만, 아편 중독이나 환경오염과 같은 문제들엔 규제가 필요하다"며 "순진하게 시장 기능을 믿기보다는 정부가 강력하게 행동할 수 있게끔 해 시장경제 체제와 상호보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신보호무역주의와 미·중 무역갈등에 대해서도 "개별 기업 보조금 정책은 논쟁과 무역 마찰의 여지가 있더라도 이를 감내하고 진행해야 한다"며 "기업들의 신재생에너지 기술 등이 육성되면 만인에게 혜택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정부가 강력하게 특정 산업 분야를 적극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미·중 마찰은 경제학적인 경쟁을 넘어 군사 긴장 요소가 있어 민감한 상황이지만 대만 이슈 해법이 나온다면 갈등이 다소 진정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중 갈등 속 한국의 위치와 관련해 "군사와 교역체제를 구분해서 한국은 교역에서 가져올 수 있는 부분은 적극 장려해야 한다"며 "미국이 한중 교역에서 특정 물품이나 서비스가 무기나 군사용으로 사용된다면 제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좌장을 맡은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위기는 우리가 낭비하기엔 너무 아까운 기회'라는 로머 교수의 과거 발언을 언급하며 한국의 경제위기와 개혁에 대한 평가를 물었다. 로머 교수는 "한국의 경우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경험으로 삼아 개혁을 단행한 덕에 다른 나라에 외환보유액이 부족할 때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많은 학습 기회를 줬다"고 진단했다.
[김금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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