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의 늪' 유럽 성장전망 0%대로…EU, 0.8%로 전격 하향
근로시간 단축·강성노조
美 맞먹던 유럽경제 추락
유럽 근로자들 여가 중시
경직된 노사관계 '고질병'
신기술 투자에도 소극적
노동생산성 美에 크게 밀려
◆ 가난해지는 유럽 ◆
세계 경제를 떠받치는 두 축인 미국과 유럽의 희비가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미국은 인플레이션이 완화되면서 동시에 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하는 '골딜록스' 시나리오에 한걸음 더 다가가고 있는 반면 유럽 국가들은 고물가 파고에 여전히 휩싸이면서 경기 침체의 늪에 빠지고 있다. 유럽 국가들이 특단의 체질 개선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한 미국과 유럽 사이 경제 격차는 계속해서 벌어질 전망이다.
11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EU의 올해와 내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1.1%와 1.6%에서 각각 0.8%와 1.4%로 하향 조정했다. 불과 4개월 만에 성장 전망치를 크게 낮춘 것이다. 파올로 젠틸로니 EU 집행위원은 "EU 경제는 올해 봄 이후로 추진력을 잃었다"고 고백했다.
EU 집행위원회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 경제성장률 전망을 대폭 하향 조정한 것은 EU 스스로 경기 둔화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다는 점을 인정했다는 의미다. 코로나19 팬데믹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유례없는 금리 인상, 미국과 중국 사이 패권경쟁 심화 등의 충격이 예상보다 컸다는 것을 자인했다는 얘기다. 최근 일련의 사태들을 통해 유럽 경제의 기초체력이 생각보다 허약하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유럽 내부에서는 자성론이 제기되고 있다.
유럽의 쇠락은 최근 물가가 잡히고 경기도 호조세를 보이면서 경제 연착륙을 현실화하고 있는 미국과 비교되며 더욱 도드라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7월 미국의 경제성장률 추정치를 상향 조정했다. IMF는 미국 성장률 전망치를 4월 1.6%에서 7월 1.8%로 0.2%포인트 올렸다. IMF는 관련 보고서를 통해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예상보다 빠르게 하락하면서 긴축통화 정책의 필요성이 줄고 내수가 다시 회복력을 보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과 유럽 사이 격차는 우크라이나 전쟁 등 외부 요인 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더욱 뼈아프게 다가온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미국과 유럽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격차를 벌려왔다. IMF에 따르면 올해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추정치는 26조9000억달러로 2008년 대비 15년 만에 82% 증가한 반면 유로존 GDP는 15조1000억달러로 15년 전 대비 6% 늘어나는 데 그쳤다. 그 결과 유럽 국가들은 미국 개별주보다도 1인당 GDP가 낮아졌다. 유럽의 싱크탱크 '유럽국제정치경제센터'는 지난 7월 미국 각 주와 유럽 주요 국가들의 1인당 GDP 순위를 비교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이탈리아는 미국 50개주 가운데 가장 가난한 미시시피주에 약간 앞섰다. 프랑스는 48위인 아이다호주와 49위인 아칸소주 사이에 위치했고 '유럽의 경제 심장' 독일은 오클라호마(38위)와 메인(39위) 사이에 있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보도를 통해 "유럽이 가난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WSJ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기반으로 자체 추산한 국가별 연평균 임금을 보면 미국의 2019년 대비 지난해 임금 수준은 약 6% 증가했지만 독일과 이탈리아, 스페인의 임금은 같은 기간 3%, 3.5%, 6%씩 감소했다. 소비지출 규모 역시 지난해 기준 미국은 2008년 대비 55.32% 커졌는데, EU는 0.16% 증가하는 데 그쳤다.
유럽의 경기 부진은 낮은 생산성과 경직된 노사관계 등 구조적인 원인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분석도 힘을 얻고 있다. 노동생산성 감소가 가장 큰 원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WSJ는 "여가 시간을 더 중시하고 고용 안정성을 선호하는 고령화된 근로자들로 인해 생산성이 부진해졌다"고 분석했다. 유럽국제정치경제센터는 "제조업에서도 정보기술(IT) 등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은 미국과 달리 유럽은 생산성 증가율이 현저하게 감소했다"고 평가했다. 유럽의 강력한 노조문화와 근무시간 감소도 경기 둔화의 주요 배경으로 지목된다. 독일 최대 노조는 올 11월 단체협상을 앞두고 주 4일 근무제를 요구하고 있다. 핀란드 근로자들은 사측과 협상을 통해 언제라도 임금 삭감을 전제로 근무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유럽 기업들이 신(新)기술 투자 등 '혁신'에 소극적이었다는 점도 지적된다.
[김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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