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균용, 軍판사때 상관 압박에도... 간첩사건에 “고문 의심” 무죄 선고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1987년 군 판사 시절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고문에 의한 자백이 의심된다”며 무죄를 선고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후보자가 주심을 맡은 1987년 제주 방어사령부 보통군법회의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1970년 무렵부터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지도부원에게 포섭돼 국내에 잠입하고 1978년 무렵부터 24차례에 걸쳐 군부대 기밀을 수집하는 등 간첩혐의를 한 혐의(진영간첩, 국가보안법위반, 반공법위반)로 기소됐다.
A씨가 수집한 것으로 군 검찰이 적시한 기밀은 ‘해군아파트는 제주시 모 지역에 있다’ ‘김포에는 해병대 1개 여단이 있다’ ‘(제주시) 모 부대 정문에 헌병 2명이 총을 들고 근무하고 있으며 지문을 찍으러 왔다고 하자 전화로 확인 후 주민등록증을 받고 방문 표찰을 내주어 부대에 들어 갔다가 나올 때 주민등록증과 교환했다’ 등의 내용이다. 수사기관에서 A씨가 자백한 내용에 기초했다. 그는 재판에 이르러서는 “친목회에 참석하라는 조총련 인사의 연락을 받고 거절한 사실만 있고 간첩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당시 해군 법무관으로 사건의 주심을 맡은 이 후보자는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고문으로 인한 자백이 의심된다는 이유였다. 당시 이 후보자는 판결문에서 “A씨가 1985년 8월 자택에서 보안부대 소속 수사요원 두 명에 의해 국군 보안사령부 지하실에 연행돼 수사가 시작되고 그로부터 1주일이 경과한 후 범행을 모두 자백하는 진술서가 작성됐다”고 지적했다.
실제 재판과정에서 A씨에 대한 가혹행위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군 사법경찰관 조사 과정에서 수사요원들이 잠을 못자게 했고 몽둥이로 때렸으며 볼펜을 손가락 사이에 끼워 비트는 등의 가혹행위가 이뤄졌다.
이 후보자는 판결문에서 “A씨가 1954년부터 1981년까지 있었던 수많은 사실관계를 아무런 자료도 없이 일시 상황 대화 내용 등 미세한 사항에 이르기까지 일목요연하게 기억하고 진술하고 있다는 것은 위 자백 내용이 객관적 합리성을 결여하고 정상인의 경험칙에 반한다”고 했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고문에 의한 자백은 증거능력이 없어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 군 검찰이 항소했지만 2심도 1심이 맞는다고 보면서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판결이 선고된 1987년 11월 무렵에는 국가보안법 사건, 특히 군 내에서 수사가 이뤄진 경우 대부분 유죄가 선고됐다. 실제 이 후보자의 무죄 판결 과정에서도 상관으로부터 ‘무죄판결을 하면 판사로 임용되기 어렵다’는 취지의 압박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후보자와 가까운 한 법조인은 “당시 판결 과정에서 판사 임용을 포기하고 변호사 개업을 고민하기까지 했지만, 시국사건이라고 해서 법리와 달리 판단할 수 없어 무죄판결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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