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명칼럼] 교육청은 교사에게 변호사를 붙여주라

노원명 기자(wmnoh@mk.co.kr) 2023. 9. 12.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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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마케터에 욕하면
회사가 나서서 보호
교사는 혼자 끙끙 앓아
지금은 그들이 '전국민 乙'

지난 4일 20만명이 모인 국회 앞 서이초 교사 추모 집회가 욕설 하나 없이 끝난 것을 보고 교사라는 직업을 다시 보게 되었다. 한국에 여러 엘리트 직업군이 있지만 그렇게 분노를 절제된 방식으로 표현하는 집단이 교사 말고 또 있을 것 같지 않다. 그 가지런하고 선한 행동 양식에 감명받는 한편 딱한 생각도 들었다. 교사들의 이런 '직업적 착함'을 악용해 정신병적으로 갑질하는 사람이 있고 '문제를 키우지 말라'고 종용하는 관리자와 교육청이 있다.

몇몇 교사들의 죽음에 임해서야 우리는 교사를 상대로 행사되는 폭언·폭력, 협박, 소송의 빈도와 강도에 놀라고 있다. 그것은 '갑을 구도'의 전형처럼 보인다. 갑이 을을 함부로 대하는 이유는 을이 똑같은 강도로 반격해 오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교사는 학생이 때린다고 같이 때릴 수 없고 학부모가 욕을 한다고 똑같이 퍼부을 수도 없다. 소송에 맞소송으로 대응하는 교사는 극소수다. '직업적 착함'이 저절로 을의 지위로 이어지고 그것을 만만히 여긴 '진상 갑'들이 설쳐대는 구도다.

텔레마케터는 고객이 아무리 '진상 짓'을 해도 비례적으로 보복할 수 없다는 점에서 교사와 비슷하지만 그만큼 취약하지는 않다. 모든 통화는 녹음되고 선을 넘어서는 희롱과 모독은 형사고발 대상이 될 수 있다. 일단 문제가 되면 텔레마케터 개인이 아니라 그가 속한 회사를 상대할 각오를 해야 한다. 전화로 행패 부리다 낭패 보는 사람들이 꽤 있다.

내 주변의 한 교사는 4년 동안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대전 초등학교 교사가 남긴 한마디가 자꾸 귀에 울린다고 한다. 숨진 교사는 "'직장 일을 하는데, 왜 직장의 도움을 받지 못하냐'는 남편의 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고 절규했다. 교사가 속한 회사는 학교, 교육청, 국가다. 그 회사는 문제가 생겼을 때 보호해주는 회사가 아니라 가장 먼저 비난하는 회사다. 대전 교사의 관리자는 이유도 묻지 않고 학부모에게 무릎 꿇고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많은 교사가 교장·교감의 "거 잘 좀 하지"라는 한마디에 움츠러든다. 관리자는 학교 평가와 이것이 본인의 진로에 미칠 영향부터 생각한다. 그 이기적 조바심은 모든 사고를 교사 개인의 책임, 능력 문제로 환원시켜 버린다. 문제가 노출되면 무능한 것이고 사과로 무마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억지가 교사를 무릎 꿇게 한다.

한국은 교육 민원이 많기도 하고 먹히기도 잘 먹힌다. 교육청 홈페이지에 민원이 올라오면 장학사는 학교를 들볶는다. 거기에는 무슨 원칙에 기반한 지침이라는 것이 없다. 가령 수업 중 휴대폰을 수거하라는 민원과 걷지 말라는 민원이 같이 올라와도 어느 한쪽 불만이 나오지 않게 해결해야 한다.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학교 자율'로 해결해야 한다. 욕은 교사가 먹는다. 그 교육청은 학부모가 교사를 고소하면 직위해제부터 하고 본다. 일반적인 회사라면 사내 변호사를 붙여줘야 할 일에도 그렇게 한다. 그 관행과 시스템 안에서 교사는 혼자 앓는다.

전교조까지 거슬러 올라갈 학생인권운동의 이상을 폄하하고 싶지 않지만, 그것이 오늘의 학교 풍경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고 생각한다. 그 운동은 학교를 강자와 약자, 선과 악의 구도로 나누고 교사를 잠재적 억압자로 규정했다. 세월이 흐른 지금 교사는 누구도 그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 '전 국민 을'이 되어 있다. 그사이에 아이들은 선생을 패고 교실에서 욕하고 드러눕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아이는 필히 부모도 팰 것이다. 사회에 나가서도 난장을 칠 것이다.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으면 도리가 없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우리 자신을 위해서 혼자 앓는 교사들을 돌아볼 때가 되었다. 교육청이 교사에게 변호사를 붙여주는 일에서부터 시작했으면 한다.

[노원명 오피니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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