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종이영수증을'…실손보험 전산청구 14년 만에 국회 문턱 넘나
14년간 법안 다수 발의됐지만 의료계 반발로 무산
서류제출 불편…미청구 실손 보험금 연간 2000억원대
의료계 "개인정보 유출 우려…보험사 이윤만 늘릴 것"
[이데일리 정병묵 기자] 앞으로 병원 진료 후 보험사에 실손보험비를 청구할 때 종이 진단서와 진료비 영수증을 첨부하지 않아도 될 전망이다. 14년간 발목이 잡혀 있던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가 이달 국회를 통과하고 본격 첫발을 뗄 지 관심을 모은다.
이 법안은 의료기관이 보험금 청구를 위해 필요한 서류를 디지털화해 전송할 수 있도록 전산화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전산화된 서류는 의료기관에서 중개기간을 거쳐 보험사에 전달된다. 현재 유력한 중개기관으로 거론되는 것은 보험개발원이다.
법안심사소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전체회의 안건으로 올릴 수 있는 법사위의 특성상 당일 특별한 이견이 없다면 통과될 예정이다. 다만 법안 상정에 앞서 열리는 현안질의가 길어질 경우 다음 법사위 전체회의인 18일 처리될 가능성도 있다.
“아직도 종이영수증 받아 팩스로 보내야 보험료 받아”
실손보험은 작년 말 기준 약 3997만명이 가입, 연간 1억건 이상이 청구돼 제2의 국민건강보험으로 불리고 있지만 복잡한 청구절차에 따른 불편이 지속했다. 보험금을 청구할 때마다 가입자가 의료비 증빙서류(진단서, 진료비 영수증, 진료비 세부내역서 등)을 의료기관에서 발급받아 보험사에 제출해야 했기 때문이다.
보험 가입자들은 종이문서 발급 시간에 비용이 소요되고 발급받아야 되는 진료기록을 정확히 인지 못하고 있어 불편을 호소하고 있었다. ‘스마트폰으로 보험을 손쉽게 가입하는 시대에 아직도 종이 서류를 받아 내야 하느냐’라는 불만이 폭증했다. 최근에는 민간 핀테크 기업 차원의 청구 전산화가 일부 이루어졌으나, 의료계의 적극적인 참여가 없어 활용은 미미한 상황이었다.
실제 매년 수천억원대 실손 보험금이 청구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건강보험공단과 보험사 통계를 분석한 결과, 2021년과 2022년 청구되지 않은 실손 보험금은 각각 2559억원, 2512억원으로 추정된다.
보험사 실손보험 실적 자료를 보면 2021년에는 12조4600억원이, 2022년에는 12조8900억원의 보험금이 지급됐다. 윤 의원실은 올해 지급되는 보험금을 13조3500억원으로 추정했을 때 미지급 보험금이 3211억원 규모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최근 3년간 연평균으로 보면 약 2760억원 규모의 실손보험금이 지급되지 않은 셈이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에서 개선을 권고한 후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담은 법안이 지속적으로 논의됐지만 의료계의 반대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21대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이 6건 발의돼 지난 6월 정무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했으나 의료계는 계속 반대 중이다.
의료계 “개인정보유출” vs 보험사 “구시대적 일처리”
의료계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중개기관을 거치면 개인정보 유출 우려가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보험금 지급, 보험 가입 등에도 불리하게 사용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만약 청구간소화로 의료정보가 보험사에 집적된다면 거절 사례가 지금의 2~3배는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보험업계는 적극 찬성하는 입장이다. 간소화에 따라 지급해야 할 보험금이 늘어나더라도 ‘아날로그 일처리’에 들어가는 비용이 너무 크다는 이유다. 의사들이 비급여 진료로 벌어들이는 막대한 수입을 지키기 위해 전산화를 반대한다고도 주장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스마트폰 시대에 가입자들이 팩스나 이메일로 보내는 진단서, 진료비 영수증을 보험사 직원이 일일이 입력해 처리하고 있다”며 “청구 전산화가 이뤄지면 운영 효율성이 높아지고 데이터 축적으로 쓸 데 없는 보험비가 나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와함께’ 등 9개 소비자단체연합도 이날 “이제 의료계도 더 이상 무조건적인 반대를 즉각 멈추고, 소비자들의 편리한 실손 보험금 청구를 위해 대승적으로 협조하는 것이 국민적 신뢰를 얻는 길이며, 이해관계자 모두가 상생하는 길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단지 종이서류가 전자문서로 바뀐다고 해서 보험금 지급, 다른 보험가입 거절, 개인정보유출 우려가 커진다는 의료계의 근거 없는 주장은 더 이상 국민들 입장에서 납득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정병묵 (honnez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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