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디!퓨전] 영국, 핵융합 야심작 '스텝' 개발 착수…무한동력 꿈꾼다
핵융합에너지 강국으로 꼽히는 영국이 차세대 핵융합실험장치 선두주자 재탈환을 노리고 있다. 그간 핵융합에너지계 실험장치의 대표주자로 꼽혔던 ‘제트(JET, Joint European Torus)’가 올해 말 40년 동안의 활동을 멈추고 은퇴를 앞둔 시점에서 차세대 장치를 내놓는다. 현존 최대 규모로 건립이 추진 중인 핵융합실험장치 ‘ITER(국제핵융합실험로)’와 다른 방식으로 차별화도 노린다.
영국 런던에서 2시간 가량 떨어진 도시 컬햄에는 영국 핵융합실험장치 개발을 주도하는 기관인 영국원자력청(UKAEA)이 있다. 7월 찾은 UKAEA는 부지 내 공사로 분주했다. UKAEA 관계자는 “핵융합에너지 관련 스타트업 사무실 등이 들어설 예정”이라며 “차후 민간과 기관 간의 협력을 활성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핵융합에너지 상업화에 대한 UKAEA의 의지가 엿보였다.
핵융합에너지 발전의 ‘대부격 장치'로 불리는 JET는 드넓은 UKAEA 부지 내에서도 한참을 돌아봐야 만날 수 있었다. ‘JET의 방’이라고 이름 붙여진 철문 너머에 자리해 있었다. JET 자체를 볼 수는 없었지만 JET의 구조를 그대로 재현한 실물 크기의 모사물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은 가능했다. 동행한 김현태 UKAEA 연구원은 “JET가 은퇴한 이후에도 내부의 성분이나 그동안의 데이터 등 다양한 분석이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1983년 건설된 제트는 당초 8년 동안 운영될 예정이었지만 예상을 웃도는 성과를 내놓으면서 운영이 연장됐다. 1991년 세계 최초로 중수소와 삼중수소를 통한 플라즈마를 생성하는 데 성공했다. 1997년 중수소와 삼중수소의 핵융합을 통해 21.7메가줄의 열에너지를 생산해냈다. 지난해에는 핵융합 반응 실험을 통해 5초 동안 약 59메가줄(MJ)의 열에너지를 생성하는 데 성공했다.
UKAEA는 이제 JET의 뒤를 잇는 후계자 개발에 착수했다. 차세대 핵융합 실험장치의 이름은 ‘스텝(STEP, Spherical Tokamak for Energy Production)’이다. 폴 메스벤 UKAEA 스텝 개발국장은 “스텝은 산업계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미칠 정도의 에너지를 생산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표했다. 핵융합에너지계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는 스텝은 7월 영국 옥스퍼드에서 열린 ‘핵융합공학심포지엄2023(SOFE2023)’에서 처음으로 청사진을 제시했다.
스텝은 현재 핵융합에너지발전장치의 주류로 여겨지는 토카막과는 다른 형태를 취한다. 외부에 전자석이 붙은 도넛 형태 용기에 플라스마를 가두는 토카막과 달리 구(球) 모양이다. 이러한 모양을 갖기 때문에 ‘동그란(Spherical) 토카막 핵융합에너지 발생장치’란 이름이 붙었다. 총 길이는 약 14m 정도가 될 예정이다. 김 연구원은 “완성된 스텝은 마치 사과와 같은 모양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스텝이 취하게 될 토카막 형태는 ‘스페리컬 컬럼’이라 불린다. UKAEA가 스페리컬 컬럼에 주목하는 이유는 핵융합발전장치가 이 형태를 취했을 때 일종의 ‘무한동력’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UKAEA가 최근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스페리컬 컬럼 형태는 내부에서 에너지가 위와 아래로 순환한다. 이같은 순환 현상을 통해 ‘24시간 자급자족 발전’이 가능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 연구원은 “스텝은 이제 막 구상 단계지만 ITER보다 작은 규모로 디자인됐기 때문에 건설 속도가 빠를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개발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인공지능(AI)를 활용해 최적의 설계전략을 찾고 있기도 하다.
그는 이어 “도넛 모양 토카막인 ITER와 스텝이 서로 경쟁하면 어느 형태의 토카막 장치가 핵융합에너지 장치 상용화에 적합한지 알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핵융합장치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정해질 것이란 설명이다.
제트의 뒤를 잇는 스텝은 최근 부지선정 작업까지 완료했다. 댄 울프 UKAEA 스텝상용화 책임자는 “노팅엄셔주 북부 석탄발전소 부지가 스텝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될 것”이라며 “2050년 전 시범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편집자주] 에너지는 경제성장, 국가안보와 직결됩니다. 석유 등 화석연료 기반 에너지원은 일부 국가가 선점하고 있는 데다 탄소중립이라는 전지구적인 도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핵융합에너지는 꿈의 청정 에너지원입니다. 기술을 주도하는 국가가 에너지 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습니다. 수십년간 기술 확보를 위한 세계 각국의 노력들이 최근 가시화하고 있습니다. 이미 핵융합에너지 기술을 주도하고 있는 한국도 2050년 핵융합에너지 실증 비전을 최근에 제시했습니다. 동아사이언스는 핵융합에너지 기술 확보를 둘러싼 전세계의 움직임을 짚어보고 기술혁신의 중요성을 공유하기 위해 '레디! 퓨전' 기획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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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햄=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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