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관객 향해 달리는 '마라톤 브로맨스'
韓영화 거장 강제규 감독 신작
日 패망후 보스톤대회 출전한
손기정 감독·서윤복 선수 담아
올해 실화 영화들 흥행 부진
한가위 大戰 승자될지 주목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일장기를 가슴에 걸고 뛰었던 손기정 옹은 금메달을 거머쥐고 조선인 중 유일하게 아돌프 히틀러와 악수했던 당대의 민족 영웅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점점 망각해 가는 사실 한 가지. 손기정 옹의 신기록이 조선(한국)의 것이 아니라 일본의 기록으로 영구히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이 황당한 역사는 지금도 바뀌지 않았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하고 2년이 지난 시점. 손기정 옹은 술집에서 막걸리만 축낸다. 그러던 그 앞에 무한한 가능성이 엿보이는 '제2의 손기정' 서윤복이 나타난다. 이제 목표는 1947년 미국 보스톤 국제마라톤. 꿈은 이뤄질까.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로 한국 영화의 새 가능성을 열어젖혔던 강제규 감독의 새 영화 '1947 보스톤'이 27일 개봉한다. 추석 연휴 최고 기대작이다. 당초 2020년 개봉될 예정이었으나 이어지는 코로나19, 참여한 배우들의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개봉이 3년이나 연기됐던 작품이다. 강 감독의 신작 '1947 보스톤'을 지난 11일 시사회에서 미리 살펴봤다.
광복 이후 미군정이 한국 땅을 다스리던 그 시절. 손기정(하정우)은 베를린 올림픽 시상대에서 일장기를 가렸던 죄목으로 육상 포기 각서를 써야 했다. 이북의 가족을 아직 서울에 데려오지 못했다는 슬픔, 일제의 압력으로 마라톤을 포기해야 했던 울분이 겹쳐 그는 하루하루가 생지옥이다.
베를린 올림픽 시상대에 올랐던 동메달리스트 남승룡(배성우)은 젊은 마라토너를 발굴하는 감독으로 런던올림픽 출전을 기획한다. 그는 올림픽 정식 출전을 위해선 먼저 보스톤 국제 마라톤 대회에 출전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는다. 남승룡은 동료 손기정에게 보스톤행을 제안하고 손기정은 갈등 끝에 제안을 수락한다.
그런 두 사람 앞에 전성기 시절 손기정의 최고 기록을 뛰어넘는 서윤복(임시완)이 나타난다. 한 걸음 한 걸음 성실성을 증명해야 하는 마라톤 고유의 정신과 달리, 홀어머니를 모시고 생계가 막막했던 서윤복은 '돈'이 되는 경기에만 출전하는 '상금 킬러'였다. 감독과 선수의 이견 합치, 선수로서의 경기력 향상, 약소국 국민의 해외 대회 출장이란 난관이 세 사람을 차례로 기다린다. 이들은 난관을 차례로 돌파하며 마라토너로서 출발선에 다시 선다.
영화는 예상대로 스크린에서 객석으로 전이될 감동을 겨냥한다. 최근 흥행에 실패한 한국 영화에서 자주 보이는 신파적 요소도 없지 않다. 강 감독이 만들어낸 42.195㎞의 무대는 빛이 난다. 물 흐르듯 이어지는 스토리라인, 배우들 간의 이질감 없는 연기 호흡, 1940년대를 재현한 면밀한 시대 고증도 완성도를 높였다.
서윤복이 보스톤 도로를 질주하면서 본 적 없는 감동이 시작된다. 도저히 쟁취할 수 없을 것만 같던 질주가 서윤복의 빈곤했던 과거사와 얽히면서 관객을 설득시킨다.
단점도 없지 않다. '하정우-배성우-임시완'의 삼각 브로맨스가 극의 전부를 이룰 만큼 강고하다. 반면 여성 배역의 존재감은 그 배역이 왜 영화에 필요한가 싶을 정도로 빈약하다. 외국 배우들의 연기도 재연 배우 수준을 넘지 못한다. 특히 올해에만 '영웅' '교섭' '리바운드' '비공식작전' 등 실화에 기반한 한국 영화가 줄줄이 개봉했지만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한 가운데, 역시 실화 기반의 영화 '1947 보스톤'이 이런 흐름을 역류시킬지도 관전 포인트다.
영화 초반 한 시간은 극을 질질 끌지 않고 대사를 짧게 끊어가며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보스톤 대회에 출전한 서윤복과 남승룡의 성과가 단지 좋은 성적만이 아니라 불가능을 가능성으로 바꿔내려 했던 인간의 눈물과 땀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상영시간 두 시간이 아깝지 않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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