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모르는 세상 무서워"…'1947 보스톤'에 담은 진심(종합) [N인터뷰]

장아름 기자 2023. 9. 12.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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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규 감독, 8년만의 신작 '1947 보스톤' 인터뷰
27일 개봉
강제규 감독 / 롯데엔터테인먼트

(서울=뉴스1) 장아름 기자 = 한국 영화의 흥행사를 돌아볼 때 단연 강제규 감독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강제규 감독은 '은행나무 침대' '쉬리'로 주목받은 뒤 '실미도'의 강우석 감독에 에어 '태극기 휘날리며'로 한국영화 1000만 시대를 연 감독이다.

그런 그가 노년의 로맨스를 다뤘던 '장수상회' 이후 8년 만에 신작으로 추석 극장가를 찾아왔다. 오는 27일 개봉하는 '1947 보스톤'은 1947년 광복 후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 대회에 출전하기 위한 마라토너들의 도전과 가슴 벅찬 여정을 그린 영화다.

강제규 감독 / 롯데엔터테인먼트

12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만난 강제규 감독은 오랜 시간 관객들을 만나지 못했던 신작을 드디어 선보이는 소감을 털어놨다.

'1947 보스톤'은 각각 실존인물 손기정과 서윤복, 남승룡을 연기하는 하정우와 임시완 배성우의 캐스팅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배성우가 지난 2020년 12월 음주운전이 적발되면서 개봉이 연기됐었다. 배성우는 극 중 손기정(하정우 분)과 서윤복(임시완 분)을 서포트하는 페이스메이커 남승룡으로 활약했다. 남승룡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동메달리스트로, 서윤복과 함께 1947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뛴 국가대표이기도 하다.

이에 강제규 감독은 "(배성우와) 1시간 넘게 통화를 했는데 마음이 너무 아프다"며 "자기도 너무 미안해 하는 거다, 자기도 그런 일이 없었으면 홍보도 돕고 할 텐데 스태프들이나 감독에게 너무 마음의 힘듦을 준 것 같아서 힘들어하더라"고 밝혔다.

이어 강 감독은 "후반 작업하면서도 여러 많은 생각이 들었고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었다"며 "나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지혜롭게 잘 해야겠다 싶더라"고 고백했다. 또 그는 "그렇다고 영화 개봉을 안 할 수는 없지 않나"라며 "내부적인 아픔이 많았지만 여러분 고민을 잘 듣고 제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편집을 하고 마무리를 했다"고 전했다.

그뿐만 아니라 강 감독은 "다 만들어놓고 오랫동안 영화를 개봉 못한 건 처음"이라며 "감독이나 배우들 다 똑같은 심정일 거다, 답답하고 힘든 시간이었던 것 같다"고도 털어놨다. 이어 그는 "2년 반 정도의 시간이 더 걸렸으니까 굉장히 힘든 시간이기도 했다"면서도 "시간적 여유가 많으니까 편집실과 녹음실도 자주 갔고, 블라인드 시사회도 4번 정도로 많이 했다, 제가 만든 영화 중 가장 많은 블라인드 시사회를 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는 "2년이란 시간동안 작품의 내실 다질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며 "답답하고 그랬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값진 시간이었다 얘기할 수 있다"고 고백했다.

강제규 감독 / 롯데엔터테인먼트

강제규 감독에게 2년이 넘는 기다림은 외려 의미있는 시간이 됐다. 그는 "요즘 관객들이 이 얘기에 얼마만큼 동화할 수 있을까, 동화되기 이전에 관심을 가질까 궁금했다"며 "관심이 있어야 영화도 보고 공감도 받고 할 텐데 그런 것에 대해 알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신파' '국뽕' 등을 영리하게 간파하는 한국 관객들이 우려하는 지점에 대해서도 공감했다. 그는 "신파 구조나 국뽕에 대해 관객들이 거부감이 있지 않나"라며 "그런데 로그라인을 보면 국뽕에다가 신파가 너무 세더라, 제가 관객이라도 그럴 것 같더라, 그래서 '이걸 어떻게 극복하지?'가 가장 큰 숙제였다"고 밝혔다.

베테랑 강제규 감독 또한 이를 극복하기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사실이 기반이기 때문에 제한적인 게 많다"며 "앞으로의 예비 관객들에게 '거북하니?' '내가 과했니?'라고 자꾸 물었다, 그 당시에 옳은 판단이라 생각하고 넣었지만 개봉 후 5년이 지나서 TV에서 자기 영화를 볼 때 낯간지러운 건 없애보자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인위적으로 없는 사실을 만들어서 표현했다면 작위적인 목적 달성을 위한 국뽕이라 할 수 있지만 역사적 팩트를 얘기한 것이기 때문에 궤는 다른 국뽕이지 않나 한다"고 강조했다.

강제규 감독 /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손기정과 동메달리스트 남승룡, 그리고 이들과 사제지간으로 1947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낸 서윤복이 국가대표로서 태극마크를 처음 달고 이룬 기적에 대해 다룬다. 강제규 감독은 "훌륭한 삶을 살아오신 세 분의 마라토너들을 한 영화에 담을 수 있다는 건 큰 행복이고 축복"이라며 "제게도 좋은 기회였고 영광이었다"고 털어놨다.

이에 강제규 감독은 배우들과 실존인물의 일치율이 높은 영화를 선보이려 노력했다. 그는 하정우 캐스팅에 대해 "손기정 역할을 가장 먼저 캐스팅했다"며 "다큐멘터리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진짜 많이 닮았다, 손기정 기념 재단에서 좋아하셨다"고 밝혔다. 이어 "말투나 걸음걸이나 눈빛이나 체격의 조건이나 이런 게 매우 비슷하다"며 "그래서 (하)정우가 하면 딱이겠다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헤어스타일, 의상 이런 것까지 디테일이 들어가면서 점점 손기정화가 돼가는 게 보이더라"고 당시를 돌이켰다.

또 강제규 감독은 손기정 캐릭터가 다소 까칠하면서 강하게 표현됐을까 우려한 지점도 있었다며 "하지만 남승룡(배성우 분)과 서윤복(임시완 분)이 상쇄하고 세 사람이 조화를 이루니까 이게 잘못된 게 아니구나, 하정우가 연기한 톤이 맞았구나 하고 촬영하면서 느꼈다"고 고백했다.

강제규 감독은 하정우에 대해 "계산을 철저하게 하는 배우"라며 "베를린 올림픽 시상대에서 화분으로 가슴의 일장기를 가렸던 아픔의 시간을 가졌다면 보스턴 광장에서 태극기가 올라갈 때 눈물이 날 것 같지 않나, 그런데 하정우는 안 울더라, '그래도 눈물이 날 것 같은데 왜 안 울지?' 당황스러웠다"고 돌이켰다.

이어 그는 "하지만 '하정우 이 배우가 정말 똑똑한 배우구나' 했다"며 자기가 갖고 있는 역할에 대해 집요할 정도로 끈질기게 쥐고 가더라, 그걸 표현해내는 감정 표현 방식이 다른 거다, 나중에 더 큰 화면에서 보면서 '아, 참 타고난 배우구나' 했다"고 감탄했다.

1947 보스톤 스틸

임시완은 대한민국 최초로 태극마크를 달고 뛴 마라토너 서윤복을 소화하기 위해 체지방을 6%까지 낮추며 선수로서의 외형을 갖춘 치열한 노력으로 화제가 됐다.

이에 대해 강제규 감독은 "배우로서 손색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야무지게 자기 캐릭터를 분석하더라"며 "배우로서 가져야 할 몸가짐, 훈련 그런 걸 성실하게 하나하나 잘 만들어간 멋진 친구였던 것 같다"고 칭찬했다. 그러면서 "서윤복 선수가 갖고 있는 신체적 조건에 일치하기 위해 촬영 5개월 동안, 거의 선수와 같은 자세로 식사하고 운동했다"며 "저희가 간혹 회식도 하는데 '정말 대단한 친구다' 했다"고 회상했다.

강제규 감독이 영화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바에 대해서도 털어놨다. 그는 "나이가 먹어서 그런 지 지나온 과거에 애착을 많이 갖게 되는 것 같다"며 "일본의 10대, 20대는 현대사에 대해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없더라, 특별히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들은 역사에 대해 잘 모르더라"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그는 "저는 그런 세상은 좀 무섭더라"며 "일본을 보니까 우리나라도 그렇게 안 되리라는 법은 없지 않나, 역사 교육에서는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싶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궤적들을 잘 봐야 이해가 넓어지지 않나 한다"고 진심을 전했다.

강제규 감독은 어른으로서의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는 "요즘 갈수록 살아가기 너무 각박하고 힘들다"며 "우리가 추구하는 기본적인 가치인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위해서는 내 윗 세대의 삶, 내가 잘 모르고 있던 역사적 사건에서 인물을 대면해보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나 한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는 "나와 같이 견줘서 비교해보는 과정이 결국 행복해지는 길이라는 걸 이제 안다"며 "지금 사는 것도 힘든데 관심을 둘 여유가 있나 할 수 있겠지만 조금 더 나은 삶을 위해서는 필요하다 말하고 싶다,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면 척박한 삶을 살아가는 데 큰 동력이 되는 건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1947 보스톤'은 오는 28일 개봉한다.

aluemcha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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