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와 소리 사이…‘영케어러’이자 ‘중간자’인 코다를 읽다
여성학·장애학 연구자 황지성씨(43)는 올해 11명의 성인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s)를 만났다. 코다는 농인 부모의 자녀를 일컫는 말로, 황씨 또한 농인 아버지를 둔 코다 당사자다. “청각장애인들은 역사 속에 계속 있어 왔고, 그 자녀들도 그럴 테죠. 하지만 코다라는 이름과 정체성은 최근에야 알려지기 시작했어요” 황씨가 말했다.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통해 ‘코다’가 차츰 알려졌지만 황씨는 미디어가 개별적인 사례를 소개하는 것에 그친다는 아쉬움을 느꼈다. 한국사회에서 농인의 자녀로서 코다들이 겪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짚어보자는 문제의식으로 황씨와 비영리단체 코다코리아(대표 이길보라)는 실태조사에 착수했다. 1930~1970년대생 농인 부모를 둔 1960~2000년대생 성인 코다 11명이 집단·심층 면접에 참여했다. 언어나 문화 등으로 이중고를 겪는 이주노동자·결혼이민 농인 부모를 둔 코다도 2명 포함됐다. 코다코리아는 12일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그 결과발표회를 열었다.
경향신문은 발표회 전날 서울 성북구 한 카페에서 연구책임자인 황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대화 내내 코다는 단일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비장애인이면서도 농문화의 일원인 복합적인 ‘사이’의 존재들. 계급, 장애 (중복) 정도, 젠더, 교육 정도, 인종, 세대 등이 제각기 다른 코다들과 대화를 나누며 황씨는 확신을 얻었다고 했다. “각각이 다르면서도 음성언어 중심의 사회에서 코다와 농부모들이 겪는 문제에는 유사점이 있었어요.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 문제가 우리 사회에 공고히 버티고 있다는 뜻이겠죠.”
코다의 부모는 누구인가
황씨는 11명의 코다들에게서 그들의 부모 22명의 이야기를 들었다. 농부모들은 나이대가 다양했지만 직업이 비슷했다. ‘미싱, 목공, 청소노동, 건설일용노동, 식모, 세신사, 방문판매’ 등 저임금 육체노동직에 종사한 이들이 대다수였다. 이례적으로 대학에 들어가 외국 유학까지 한 50대 농인 여성만이 장애인에게 일자리를 할당하는 기업에 취직해 사무직 일을 하고 있었다.
농인 여성에게는 교육과 직업 선택의 기회가 더 제한적이었다. 교육 경험이 전혀 없는 ‘무학’자 5명 중 3명이 여성이었다. 면접참여자의 농인 어머니들 다수가 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거나 중도에 학업을 중단했다고 했다. 이들은 10대 시기부터 식모(가사노동 서비스)나 공장에서 여공으로 근무했다. “청인중심사회에서 음성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사회 계층의 위계에서 아래로 밀려나기 쉽다는 것”이라고 황씨는 설명했다.
7명이 참여한 집단면접에서 코다들은 자주 “어머 너도?”를 외쳤다고 했다. 한 30대 면접 참여자는 “저는 사실 부모님 과거 얘기를 잘 안했다. 그런데 듣고 보니 다들 비슷한 환경이더라. 미싱이나 목공 등 겹치는 직업이 많아 반가웠다”고 말하기도 했다.
황씨 또한 “다들 비슷한 경험을 했고, 그런 구조 속에서 살아 왔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한 참여자가 “저희 아버지는 오전에는 운동장 돌을 고르고, 잡초를 뽑은 후에야 농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더라”고 말할 때 든 생각이었다. 황씨도 비슷한 이야기를 아버지로부터 들은 적이 있었다. “농학교가 교육이 아닌 노역을 시켜서 학교를 도망쳐 나왔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그래서 저희 아버지는 수어를 못하세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황씨의 말이다. 가난했거나 소외됐던 경험을 나누며 몇몇 면접 참여자들은 “나만의 경험이 아니었네. 어릴 때 미리 알았다면 좋았겠다”고 했다고 한다.
영케어러로서의 코다
코다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들을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어린 나이에도 가족을 돌보는 입장에 자주 놓인다는 것이었다. 황씨는 ‘가족에게 돌봄을 제공하는 아동·청소년’을 뜻하는 영케어러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이보다 코다 아동·청소년을 더 잘 설명할 말이 있을까’ 생각했다고 했다. 면접 참여자들은 부모를 대신해 통역 등 사회와의 가교 역할을 하며 자란 기억들을 나눴다.
한 30대 참여자는 오토바이를 타다가 교통사고 나는 일이 잦았던 아버지 때문에 경찰서에 통역을 다녔다고 했다. 그는 “집 주변의 경찰서 전화번호를 웬만하면 다 저장을 하고 있었다. 병원도, 관공서도 기본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주민센터 가면 장애인이 어떤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 부모님 대신 확인했다”고 했다.
한 20대 참여자는 중고등학교 때 핸드폰을 제출하지 않고 몰래 숨겨뒀다고 했다. 그는 “엄마와 아빠 다 일을 하고 있었는데, 소통이 안 되면 늘 저한테 카톡으로 내용을 보내셨다. 화장실로 가서 영상통화로 설명을 하거나 대답을 해줘야 하니, 도저히 핸드폰을 낼 수가 없더라”고 했다.
황씨는 경찰서, 병원, 학교 등 공적기관에서조차 수어 통역이 잘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 농인들의 취약성을 극대화시킨다고 했다. “사회적으로 수어 통역 지급이 충분했다면 어땠을까요” 그가 물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이후 전국에 수어통역센터가 190여개 설치될 정도로 양적 규모는 급속하게 확장되었지만, 통상 센터 당 지원되는 기준인력은 센터장 1명과 통역사 4명(3명의 청인 통역사와 1명의 농인통역사)까지 총 5명이다. 황씨는 “수어통역사 1인당 최소 300명 이상의 농인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황씨는 돌봄을 온전히 가족에게만 맡기는 가족주의를 타파해야 한다고 했다. 음성언어를 하지 못하는 사람에 대한 인식과 배려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그는 “현재 농인 가족들에게는 청인 자녀가 유일한 복지 대책이 되고 있다”고 했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코다들은 경찰, 사회복지사, 수어통역사, 학교상담사, 농학교교사, 사회복지 전공 대학생 등이었다. 우연치 않게도 이들은 자신 및 가족이 겪은 것과 비슷한 어려움을 가진 타인을 지원·중재·교육하는 종사자로 자라났다. 황씨는 “일반화할 수 없지만 ‘사이’에 있는 존재들을 보는 감각을 체화하게 되는 듯 하다”고 했다.
브라이언임팩트X다음세대재단의 비영리 발굴 및 성장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이번 연구는 ‘코다’를 다루는 초기 연구격이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황씨는 코다들이 고립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과제라고 했다. 그는 “영국에는 코다 성인들이 주최하고 아동·청소년이 참여하는 코다 캠프가 있다. 경험을 나누는 자리인데, 그런 자리를 지속적으로 만드는 것이 저를 비롯한 코다코리아의 목표”라고 했다. 이어 “더 중요한 건 가정에 복지를 일임하는 게 아니라, 모두가 함께 돌보며 돌봄의 가치가 인정받는 사회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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