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말리는 순위 경쟁에도 주눅 들지 않는다, ‘후반기의 사나이’ 강승호의 방망이에 다시 불이 붙었다
이승엽 두산 감독은 내야수 강승호(29)에 대해 “원래 많이 생각하거나 고민하는 성격이 아니다”라고 했다. 기복이 없지는 않지만, 부담감 때문에 지레 움츠러드는 경우는 드물다는 얘기다.
이 감독은 지난 8일 잠실 삼성전 파격에 가까운 승부수를 던졌다. 6-7로 뒤진 9회말 무사 1루, 이 감독은 중심타자 양석환을 빼고 이유찬을 대타 투입해 번트를 지시했다. 일단 주자를 득점권에 보내놓고, 반드시 동점을 만들겠다는 의지였다. 동시에 후속 타자인 강승호에 대한 믿음과 기대가 있었기 때문에 내릴 수 있는 판단이기도 했다.
양석환을 빼면서 만든 기회인 만큼, 반드시 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여야 한다는 부담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타석에 들어선 강승호는 볼 카운트 1-2로 몰린 상황에서도 4구째를 가볍게 받아쳐 동점 적시타를 때렸다. 이후 삼성의 끝내기 실책까지 겹치며 두산은 극적인 8-7 역전승을 거뒀다.
강승호는 그날 타석에 대해 “압박감을 느끼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오히려 더 편하게 타격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감독이 본 강승호, 본인이 말하는 강승호가 서로 다르지 않다. 매번 좋은 결과만 있을 수는 없겠지만, 결과를 두려워해서 스윙을 망설이는 스타일은 아니다.
두산은 월요일 경기에 더블헤더까지 힘겨운 지난 일주일을 보냈다. 하지만 쉴 수가 없다. 5강 진출을 위해 넘어서야 할 SSG, KIA와 연전이 예정돼있다.
13~14일 잠실에서 SSG와 2연전, 15일부터는 광주에서 KIA와 주말 3연전을 치른다. 맞대결 결과에 따라 단숨에 5강 안으로 진입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힘겹게 이어가고 있는 가을야구 불씨가 사실상 꺼질 수도 있다. 매 타석 부담감이 이전의 경기와는 다를 수밖에 없는 상황, ‘강심장’ 강승호의 활약에 기대가 모인다.
강승호는 늘 시즌 후반기에 강했다. 지난해에도 8월 이후 타격감을 끌어올리며 팀 내 야수 고과 1위를 차지했다. 올 시즌은 8월 타율 0.192로 부진하며 후반기에 강하다는 인식도 흐릿해지는 듯했지만 아니었다. 11일까지 9월 타율 0.429로 무섭게 타격감을 끌어올리고 있다.
5강 다툼에 스트레스가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시즌 후반부까지 경쟁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동기부여가 된다. 지난해 이맘때 두산은 5위권 팀과 10경기 이상 격차로 멀어지며 일찌감치 가을 야구 꿈을 접었다. 승률 5할 아래에서 허덕였고, 9위라는 낯선 위치에서 시즌을 마무리했다. 강승호는 “그때는 이미 순위 경쟁에서 밀려난 상태였는데, 좀 힘들긴 해도 올해처럼 마지막까지 순위 경쟁을 하는 게 선수로서는 훨씬 더 즐거운 것 같다”고 말했다.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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