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떼로 몸살 '치유의 섬'…긴급 투입된 수의사들이 한 일 [최기자의 동행]
[편집자주] 세상에 동물과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은 굉장히 많습니다. 반려동물과 박람회도 가고 여행도 가고 유실유기견을 돕는 일까지 다양합니다. 사람과 동물의 행복한 동행을 위해 어디든지 가는 동물문화전문기자가 그 현장의 목소리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인천=뉴스1) 최서윤 동물문화전문기자 = "아기 울음소리는 안 들리고 고양이 울음소리만 들려요."
지난 10일 승봉도 내 경로당. 안병구 자월주민자치위원장은 포획틀에서 울고 있는 고양이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승봉도는 인천 연안부두에서 배를 타고 1~2시간 더 가야 하는 옹진군의 한 섬이다. 섬의 지형이 봉황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승봉도'라는 이름이 붙었다.
'치유의 섬'으로 불릴 만큼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이곳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경치 좋은 승봉도…늘어난 고양이들로 골치
산 좋고 물 좋기로 소문난 승봉도는 주변이 소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햇빛을 가려주기 때문에 산책하기에 최적의 장소로 꼽힌다.
모래가 고운 해수욕장과 '1박2일' 바다낚시 코스 또한 많은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주민들이 자급자족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밭은 아이들에게 체험학습장으로 제격이다.
겉으로 보기에 마냥 아름답고 평화로워 보이는 승봉도. 하지만 최근 이 섬에 고민거리가 생겼다. 원인 제공자는 다름아닌 고양이떼라고 했다.
승봉도 주민들에 따르면 이 섬에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는 주민은 150여명이다. 상당수가 70세가 넘는 노령 인구다. 어르신들이 직접 펜션과 식당을 운영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없어서 하나밖에 없는 초등학교는 수년 전 폐교했다.
그리고 최근 야생에 사는 길고양이들이 이곳을 장악했다. 고양이들은 밭을 헤집어놓고 담장을 뛰어넘어 말린 생선을 훔쳐먹기 일쑤다. 곳곳에는 배설물을 남겨 골칫덩어리가 됐다.
어르신들은 고양이들의 습성을 잘 몰랐다. 교미배란을 하는 고양이들이 1년에 2~3번씩 번식하고 한번에 5~6마리씩 새끼를 낳는 습성을 알 리 없었다. 게다가 천적도 없으니 개체 수는 계속 늘어났다.
시나브로 늘어난 고양이들이 밤마다 울어대는 바람에 밤잠을 설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주민들의 고민은 커졌다. 수소문 끝에 인천시수의사회에 연락해 도움을 요청했다.
인천수의사회 봉사단 야나(단장 이재필)는 승봉도 주민들과 고양이들을 위해 휴일을 반납하기로 했다.
섬 내 고양이들의 정확한 숫자를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급한 대로 옹진군에서 지원해준 포획틀 30개를 이용해 잡힌 고양이들을 중성화 수술을 하기로 했다.
포획된 고양이들은 30여 마리. 이 중에는 대장 고양이도 있었다. 한 어르신은 "요 쪼꼬렛(초콜릿) 색깔 고양이가 대장 고양이인데 씨를 다 퍼뜨리고 다닌다"고 얘기했다.
이번 봉사에 참여한 윤혜영 연수구의원은 고양이를 다정스럽게 쳐다보며 "네가 대장 고양이구나. 녀석 참 잘 생겼네. 수술 잘 받고 건강하게 지내자"고 말했다.
포획틀 안에서 울고 있는 고양이들을 안쓰럽게 바라보던 한 주민은 "에구, 불쌍해라. 네가 싫어서 가둔 게 아니니 잠시만 자고 일어나서 맛있는 것 먹자"며 달래기도 했다.
◇수의사들, '내돈내산' 중성화수술 봉사 진행
지난 10일 30여 명의 수의사와 건국대학교 수의대생, 업체 사람들이 수의료봉사를 하기 위해 승봉경로당에 모였다.
봉사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2시간 동안 선박에 싣고 온 수술 탁자와 의자, 의료장비 등을 경로당 바닥에 깔았다.
마취 전담 수의사와 수술 전담 수의사는 업무를 분담해 고양이들의 중성화 수술을 진행했다. 수의대생들은 이들을 보조했다.
소노블레이드 업체에서 초음파수술기를 대여해준 덕분에 수술은 더 빨리 끝났다.
또 다른 봉사자들은 중성화를 했다는 표시로 귀 끝을 커팅하고 개체수를 파악했다.
이들은 수술이 끝난 뒤 탁자를 접고 주변 정리까지 끝난 이후에야 비로소 늦은 점심으로 샌드위치를 먹었다.
70세가 넘는 한 할머니는 무거운 수박화채를 두 손으로 들고 들어오면서 "정말 고맙다. 다른 건 줄 것이 없고 이것만이라도 먹어달라"며 감사인사를 건넸다.
동물보호소에서 봉사활동을 하다 보면 도움을 요청한 사람들 중에는 수의사들의 봉사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 봉사를 가면 일부 캣맘이 수술부터 시작해서 항생제까지 지정하는 등 간섭하는 경우도 있다. 수술을 하다 부득이하게 불상사라도 생기면 봉사 온 사람들을 힘들게 해서 회의감을 느끼게 하는 일도 생기곤 한다.
하지만 이곳의 어르신들은 봉사자들에게 연신 고마움을 표시했다. 수술할 때도 방해가 될까 외부에 나가 있었다.
봉사가 끝나고 한 주민은 수의사들에게 "중성화 수술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몰랐다. 그냥 쉽게 하는 건 줄 알았는데 정말 고생 많으셨다"며 "이렇게 봉사하면 정부에서 세금 혜택은 주느냐"고 물었다.
이에 수의사들은 "저희는 개인사업자고 봉사는 좋아서 하는 것"이라며 "경비도 제 돈 쓰고 온다"고 빙그레 웃었다.
실제 이날 봉사 경비는 인천시수의사회 야나의 자체 비용과 봉사자들의 사비로 충당했다. 이른바 '내돈내산(내 돈 주고 내가 산 물건)'인 셈이다.
인천시수의사회에 따르면 인천시 중성화 수술 사업에 참여한 일부 수의사들은 사업비의 절반을 다시 수의사회로 보낸다. 이 돈으로 봉사활동에 필요한 경비를 지출한다. 얼마 안 되는 돈을 벌어서 자발적으로 다시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것이다. 물론 세금 혜택은 없다.
박정현 인천시수의사회장은 "동물을 좋아하지만 어떻게 돌봐야할지 잘 모르는 어르신들의 도움 요청을 거절할 수 없어서 섬을 찾게 됐다"며 "앞으로도 동물복지 향상, 동물과 사람의 건강하고 행복한 동행을 위해 인천수의사회가 앞장서겠다"고 말했다.[해피펫]
news1-100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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