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떼로 몸살 '치유의 섬'…긴급 투입된 수의사들이 한 일 [최기자의 동행]

최서윤 동물문화전문기자 2023. 9. 12.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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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수의사회 봉사단 야나, 승봉도 봉사활동 현장

[편집자주] 세상에 동물과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은 굉장히 많습니다. 반려동물과 박람회도 가고 여행도 가고 유실유기견을 돕는 일까지 다양합니다. 사람과 동물의 행복한 동행을 위해 어디든지 가는 동물문화전문기자가 그 현장의 목소리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인천 승봉도에 살고 있는 길고양이 ⓒ 뉴스1 최서윤 기자

(인천=뉴스1) 최서윤 동물문화전문기자 = "아기 울음소리는 안 들리고 고양이 울음소리만 들려요."

지난 10일 승봉도 내 경로당. 안병구 자월주민자치위원장은 포획틀에서 울고 있는 고양이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승봉도는 인천 연안부두에서 배를 타고 1~2시간 더 가야 하는 옹진군의 한 섬이다. 섬의 지형이 봉황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승봉도'라는 이름이 붙었다.

'치유의 섬'으로 불릴 만큼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이곳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인천 승봉도 해변 전경 ⓒ 뉴스1 최서윤 기자

◇경치 좋은 승봉도…늘어난 고양이들로 골치

산 좋고 물 좋기로 소문난 승봉도는 주변이 소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햇빛을 가려주기 때문에 산책하기에 최적의 장소로 꼽힌다.

모래가 고운 해수욕장과 '1박2일' 바다낚시 코스 또한 많은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주민들이 자급자족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밭은 아이들에게 체험학습장으로 제격이다.

겉으로 보기에 마냥 아름답고 평화로워 보이는 승봉도. 하지만 최근 이 섬에 고민거리가 생겼다. 원인 제공자는 다름아닌 고양이떼라고 했다.

승봉도 주민들에 따르면 이 섬에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는 주민은 150여명이다. 상당수가 70세가 넘는 노령 인구다. 어르신들이 직접 펜션과 식당을 운영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없어서 하나밖에 없는 초등학교는 수년 전 폐교했다.

그리고 최근 야생에 사는 길고양이들이 이곳을 장악했다. 고양이들은 밭을 헤집어놓고 담장을 뛰어넘어 말린 생선을 훔쳐먹기 일쑤다. 곳곳에는 배설물을 남겨 골칫덩어리가 됐다.

어르신들은 고양이들의 습성을 잘 몰랐다. 교미배란을 하는 고양이들이 1년에 2~3번씩 번식하고 한번에 5~6마리씩 새끼를 낳는 습성을 알 리 없었다. 게다가 천적도 없으니 개체 수는 계속 늘어났다.

시나브로 늘어난 고양이들이 밤마다 울어대는 바람에 밤잠을 설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주민들의 고민은 커졌다. 수소문 끝에 인천시수의사회에 연락해 도움을 요청했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배를 타고 1~2시간이면 승봉도에 도착한다. ⓒ 뉴스1

인천수의사회 봉사단 야나(단장 이재필)는 승봉도 주민들과 고양이들을 위해 휴일을 반납하기로 했다.

섬 내 고양이들의 정확한 숫자를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급한 대로 옹진군에서 지원해준 포획틀 30개를 이용해 잡힌 고양이들을 중성화 수술을 하기로 했다.

포획된 고양이들은 30여 마리. 이 중에는 대장 고양이도 있었다. 한 어르신은 "요 쪼꼬렛(초콜릿) 색깔 고양이가 대장 고양이인데 씨를 다 퍼뜨리고 다닌다"고 얘기했다.

이번 봉사에 참여한 윤혜영 연수구의원은 고양이를 다정스럽게 쳐다보며 "네가 대장 고양이구나. 녀석 참 잘 생겼네. 수술 잘 받고 건강하게 지내자"고 말했다.

포획틀 안에서 울고 있는 고양이들을 안쓰럽게 바라보던 한 주민은 "에구, 불쌍해라. 네가 싫어서 가둔 게 아니니 잠시만 자고 일어나서 맛있는 것 먹자"며 달래기도 했다.

윤혜영 연수구의원이 10일 인천 옹진군 승봉도에서 진행된 인천시수의사회 봉사활동에 참여해 중성화 수술을 앞둔 대장 고양이를 보고 있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수의사들, '내돈내산' 중성화수술 봉사 진행

지난 10일 30여 명의 수의사와 건국대학교 수의대생, 업체 사람들이 수의료봉사를 하기 위해 승봉경로당에 모였다.

봉사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2시간 동안 선박에 싣고 온 수술 탁자와 의자, 의료장비 등을 경로당 바닥에 깔았다.

마취 전담 수의사와 수술 전담 수의사는 업무를 분담해 고양이들의 중성화 수술을 진행했다. 수의대생들은 이들을 보조했다.

소노블레이드 업체에서 초음파수술기를 대여해준 덕분에 수술은 더 빨리 끝났다.

또 다른 봉사자들은 중성화를 했다는 표시로 귀 끝을 커팅하고 개체수를 파악했다.

이들은 수술이 끝난 뒤 탁자를 접고 주변 정리까지 끝난 이후에야 비로소 늦은 점심으로 샌드위치를 먹었다.

인천시수의사회 봉사단 '야나'는 10일 인천 옹진군 승봉도에서 길고양이 중성화 봉사를 진행했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인천시수의사회 봉사단 '야나'는 10일 인천 옹진군 승봉도에서 길고양이 중성화 봉사를 진행했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70세가 넘는 한 할머니는 무거운 수박화채를 두 손으로 들고 들어오면서 "정말 고맙다. 다른 건 줄 것이 없고 이것만이라도 먹어달라"며 감사인사를 건넸다.

동물보호소에서 봉사활동을 하다 보면 도움을 요청한 사람들 중에는 수의사들의 봉사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 봉사를 가면 일부 캣맘이 수술부터 시작해서 항생제까지 지정하는 등 간섭하는 경우도 있다. 수술을 하다 부득이하게 불상사라도 생기면 봉사 온 사람들을 힘들게 해서 회의감을 느끼게 하는 일도 생기곤 한다.

하지만 이곳의 어르신들은 봉사자들에게 연신 고마움을 표시했다. 수술할 때도 방해가 될까 외부에 나가 있었다.

봉사가 끝나고 한 주민은 수의사들에게 "중성화 수술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몰랐다. 그냥 쉽게 하는 건 줄 알았는데 정말 고생 많으셨다"며 "이렇게 봉사하면 정부에서 세금 혜택은 주느냐"고 물었다.

이에 수의사들은 "저희는 개인사업자고 봉사는 좋아서 하는 것"이라며 "경비도 제 돈 쓰고 온다"고 빙그레 웃었다.

실제 이날 봉사 경비는 인천시수의사회 야나의 자체 비용과 봉사자들의 사비로 충당했다. 이른바 '내돈내산(내 돈 주고 내가 산 물건)'인 셈이다.

인천시수의사회에 따르면 인천시 중성화 수술 사업에 참여한 일부 수의사들은 사업비의 절반을 다시 수의사회로 보낸다. 이 돈으로 봉사활동에 필요한 경비를 지출한다. 얼마 안 되는 돈을 벌어서 자발적으로 다시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것이다. 물론 세금 혜택은 없다.

박정현 인천시수의사회장은 "동물을 좋아하지만 어떻게 돌봐야할지 잘 모르는 어르신들의 도움 요청을 거절할 수 없어서 섬을 찾게 됐다"며 "앞으로도 동물복지 향상, 동물과 사람의 건강하고 행복한 동행을 위해 인천수의사회가 앞장서겠다"고 말했다.[해피펫]

인천시수의사회 봉사단은 10일 인천 옹진군 승봉도에서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을 진행했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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