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자 ‘에어 포켓’ 덮는 진흙 벽돌 집…구호 막는 모로코 정부에 ‘분노’

김서영 기자 2023. 9. 12.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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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현지시간) 북아프리카 모로코 치차우아주의 한 마을이 강진으로 폐허가 된 모습. AFP연합뉴스

모로코 강진으로 인한 사망자가 12일(현지시간) 3000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8일 지진 발생 후 생존 가능성이 가장 큰 ‘골든 타임’ 72시간을 넘긴 상황이라 생존자와 이재민들은 정부의 소극적인 구조 요청과 굼뜬 대응에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 특히 진흙으로 만든 전통 가옥이 매몰 생존자의 ‘숨구멍’을 막고 있을 가능성 때문에 1분1초가 시급한 상황이다.

‘에어 포켓’ 덮는 진흙 벽돌집

마라케시 남부에서 구조 활동을 벌인 스페인 국경없는소방관연합 안토니오 노갈레스 대표는 진흙 벽돌집들이 “완전히 파괴된 수준”이라며 ‘에어 포켓’(공기가 남아 있는 공간) 없이는 “생존의 가능성이 줄어든다”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철근 콘크리트 건물이었다면 잔해 틈 사이로 파묻힌 생존자가 숨을 쉴 구멍이 생기지만, 흙으로 만든 건물이 무너지면 그 잔해가 흙먼지로 변해 매몰자의 코와 입을 완전히 덮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무너진 구조물 안에 에어 포켓이 있었을 수도 있어서 앞으로도 생존자가 구조되리라 확신한다”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실제 이번 강진의 가장 큰 피해는 아틀라스 산맥을 낀 산골 마을에 집중됐다. 이 지역 주택은 가족들이 직접 전통적인 방식으로 짓거나 증축해 현대적 건축 공법을 따르지 않은 경우가 많다. 모 에사니 애리조나대학 토목공학 교수는 “지진의 압력으로 인해 진흙집은 먼지처럼 부서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마라케시에 지어진 도심의 현대적인 건물은 상대적으로 크게 무너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콘크리트 건물도 내진 설계가 부족한 경우가 많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랫동안 큰 지진을 겪지 않으면서 지진 위험까지 고려하는 이가 드물었다는 것이다. 콜린 테일러 브리스톨대학 지진공학 교수는 “정부는 재건축 시 현대식 건축 방법을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진흙 벽돌로 다시 짓는 것은 수십 년 후 또 다른 재난을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물과 음식 없이 버티는 이재민…“왜 이렇게 늦게 왔냐” 분통
규모 6.8의 강진으로 큰 피해를 본 모로코 타루단트주 산악 마을의 주민이 11일(현지시간) 구조대를 기다리며 기도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진 피해에서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도 물과 음식 없이 버틴 시간이길어지면서 도움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뒤늦게 도착한 구조 인력과 물자를 향해 주민들이 분노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두아르 트니르 마을의 53세 남성 주민은 구조대원에게 달려들며 “우리가 사람들을 묻고 구조했다. 사실대로 말해보라.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나”라고 항의했다. 또 다른 남성(25) 역시 “당신들보다도 먼저 외국에서 여객기를 타고 와서 돕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길이 없다고들 하는데 사실이 아니다. 아이들조차도 땅을 파고 있다”고 말했다. 지진 발생 이후 이 마을을 찾은 공무원은 지난 9일 실종자와 사망자 수를 기록한 후 떠난 장교 2명뿐이었다고 NYT는 전했다.

이재민들은 직접 부상자를 수㎞ 떨어진 병원으로 이송하고 맨손과 소도구로 잔해를 파내며 가족과 이웃 구조에 나섰다. 한 주민은 현장에 나온 모로코 국영 방송사 2M의 취재진을 보고 “(구조대원들은) 방송에 내보내기 위해 단지 일하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을 뿐”이라며 “우리가 정부를 마냥 기다렸더라면 아무도 구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타루이스테 마을에서 어머니를 잃은 한 남성은 “아무도 우리를 구하러 오지 않았다. 버림받은 듯한 느낌이다. 텐트와 음식, 잔해를 옮길 트럭이 필요하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아직도 도움 요청 미적대는 모로코 정부

이처럼 긴급한 구조를 요청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음에도, 모로코 정부는 “조율이 되지 않으면 혼선이 빚어진다”는 이유를 고수하며 100여개 국가의 구조 지원 의사에 응하지 않고 있다.

이를 두고 의아하다는 반응이 커지자 모로코가 자국의 지원을 승인하지 않는 것이 양국 외교 관계가 나빠서가 아니라는 해명까지 나오고 있다. 카트린 콜로나 프랑스 외무장관은 이날 프랑스 BFM TV에 출연해 “모로코는 프랑스의 도움을 ‘거절’한 것이 아니며, 프랑스는 모로코에 540만달러를 지원할 준비가 돼있다”고 밝혔다. 독일 외교부도 “긴급 상황에서는 조율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규모 6.8 강진이 덮친 모로코 알하우즈주 물라이 브라힘 마을에서 10일(현지시간) 사람들이 희생자 관을 옮기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한국 외교부 역시 12일 모로코에 의료진을 중심으로 구조대를 지원할 의향을 전달했으나 모로코 정부는 아직 결정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는 “모로코가 과거 지진 피해를 보았을 때 여러 나라에서 인도적 지원을 받다 보니 제대로 조율이 안 됐던 선례가 있다. 모로코 정부의 입장을 존중해 외교 채널을 통해 협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엔 또한 전문가를 모로코에 파견했지만 요청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모로코의 태도를 두고 국왕 위주로 돌아가는 모로코의 권위주의 체제가 국가의 약점 노출을 꺼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해외 구조인력이 들어오면 모로코의 빈곤과 지역사회에 대한 통제력 상실 등이 드러날 것을 우려한다는 것이다. 사미아 에라주키 스탠퍼드대학 교수는 “외국인이 들어오면 많은 이들이 알리려고 노력했던 문제가 들춰지게 될까 불안해하는 것”이라고 워싱턴포스트(WP)에 밝혔다. 모로코 인권운동가 푸아드 압델뭄니는 “100개국의 지원을 무시하는 모로코의 오만함”이라며 “긍정적이고 신속하게 반응했더라면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NYT에 밝혔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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