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움의 순간도 내 모습의 반영"… 라흐마니노프 앨범으로 돌아온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23일~10월 20일 11회에 걸쳐 전국 리사이틀 투어
"라흐마니노프는 감정적으로 들끓게 만드는 작곡가"
"연주 아쉬움 남지만 내 본연 직면하고 싶어"
피아니스트 선우예권(34)은 2017년 한국인 최초의 미국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을 비롯해 국제 콩쿠르 한국인 최다 우승 기록을 지닌 피아니스트로, "맑고 명료하다"(음악 칼럼니스트 류태형)는 평가와 함께 탄탄한 음악적 커리어를 이어 가고 있는 연주자다.
그런 그가 유니버설뮤직 산하 레이블 데카를 통해 3년 만에 새 앨범 '라흐마니노프, 리플렉션'을 발매하고 기자들과 만나 연신 반복한 말은 뜻밖에도 "아쉽다"였다. 이날 서울 서대문구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선우예권은 "애정과 애착이 가는 동시에 가슴 아픈 앨범"이라며 "나를 투영하기도 하고 이 앨범을 통해 나를 다시 한번 점검한다는 의미에서 '리플렉션'이라는 제목을 붙였다"고 새 앨범을 소개했다. 지난 6월 초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이 앨범을 녹음할 당시 선우예권은 빡빡한 일정 속에 부비동염과 편도선염에 고열까지 한꺼번에 몰려와 녹음 도중 병원에서 수액을 맞고 오기도 했다.
앨범에는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1873~1943)가 남긴 단 2개의 변주곡인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쇼팽 주제에 의한 변주곡', 볼로도스가 피아노곡으로 편곡한 첼로 소나타 3악장 안단테 등 6개 작품이 담겼다. 올해 탄생 150주년을 맞은 러시아의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라흐마니노프는 선우예권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작곡가다. 초등학교 2학년 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선우예권은 15세 때 미국 명문 커티스 음악원에 입학했지만 음악적 표현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던 중 18세 때 세이무어 립킨(1927~2015) 교수에게 배운 라흐마니노프의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은 선우예권에게 많은 가르침을 줬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당시 결선 연주곡도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이었다. 선우예권은 "나에게 라흐마니노프는 감정적으로, 가슴으로 들끓게 만드는 작곡가"라고 강조했다. "쇼팽과 비슷하게 대중이 직접적, 감정적으로 느끼는 작곡가로서 저 역시 어려서부터 좋아하는 작곡가예요. 다양한 요리를 할 수 있는 많은 재료를 담아 둔, 피아노를 잘 아는 작곡가여서 더 많은 물감으로 색채를 표현한 작곡가죠."
선우예권은 이번 앨범 발매를 기념해 23일부터 다음 달 20일까지 총 11회에 걸쳐 전국 리사이틀 투어를 갖는다. 공연에서는 라흐마니노프 곡과 함께 브람스의 '왼손을 위한 바흐 샤콘느', 바흐의 파르티타 2번을 연주한다. 그는 지금의 선생님인 독일 하노버 국립음대 베른트 괴츠케 교수가 "바흐마니노프(바흐+라흐마니노프)"라고 농을 건넨 일화를 들려주며 "라흐마니노프와 바흐의 음악은 구조적 측면에서 비슷한 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선우예권에게 반 클라이번 콩쿠르를 비롯한 수많은 국제 콩쿠르 우승 기록은 음악 인생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준 경험이다. 그는 자신을 비롯해 최근 한국의 젊은 연주자들이 잇따라 콩쿠르를 석권하고 있는 데 대해 "본받을 만한 오래전 세대 음악가들이 계셔서 우리가 지금 빛을 볼 수 있는 것 같다"며 "해외에서 한국인의 음악성과 음악에 대한 헌신적 모습을 보게 되면서 좋은 결과들이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먼저 콩쿠르 우승을 경험한 선배로서 후배 음악가들을 향해서는 "콩쿠르 이후 음악 생활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에 대한 현명한 해법은 누구도 갖고 있지 않지만 콩쿠르 이후 음악에 대한 확신과 열정, 본인의 애정을 돌아보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콩쿠르 이후 많은 연주 기회로 정신과 감정 측면에서 고갈돼 연주를 포기하는 사람도 간혹 있는데,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음악에 대한 신선한 마음을 유지하는 게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앨범에는 '이틀간의 녹음 이후 그날을 돌이켜보며 복잡하고 어려운 감정을 마주했지만 아쉬움의 순간도 그 자체가 나의 모습을 반영할 것이다'라는 선우예권의 자필 메시지가 적힌 포토카드가 들어 있다. 그는 이날 앨범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하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리플렉션'이라는 제목에는 모든 일을 예측하며 살 수는 없는 일인데 어떤 과정이든 제 모습을 회피하면 안 된다는 생각도 담겨 있어요. 새 앨범이 제가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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