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랑 증상 똑같은데 다른 병…병원 갔더니 "치료 가능"

박정렬 기자 2023. 9. 12.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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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렬의 신의료인]

40대 김모씨는 79세 어머니가 최근 아파트 비밀번호를 깜빡 잊어버리는 등 기억력이 떨어진 것을 체감했다.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럽고 걷는 속도도 느려져 치매일까 하는 걱정에 병원을 찾았다. 정밀 검사 결과 어머니는 치매가 아닌 '정상압 수두증'이었다. 생소한 병명에 당황했지만, 치료가 가능하다는 말에 김씨는 금세 안도할 수 있었다.


치매는 고령사회의 복병이다. 특히, 전체 치매 환자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알츠하이머 치매는 뚜렷한 치료법이 아직 없어 나이 든 어르신들에는 '공포의 대상'이다. 하지만, 치매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다른 질환도 많다. 오히려 소극적으로 대처하다 병을 키우는 것이 더 위험할 수 있다.
걸음걸이 바뀌고 배뇨장애 동반 '정상압 수두증'
정상압 수두증은 뇌의 액체 성분인 뇌척수액이 정상보다 많아지면서 치매와 유사한 이상 증상을 일으키는 병이다.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2'에서 주인공인 안정원 교수(유연석)의 어머니 정로사(김해숙)가 이 병을 앓고 치매와 달리 치료 가능하단 말에 안도의 눈물을 흘렸다. 드라마처럼 인지기능 저하와 무기력증을 느끼고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워져 발을 넓게 벌리거나 작은 보폭으로 발을 질질 끌며 다니기도 한다. 소변을 참지 못하고 화장실에 가기도 전에 요실금으로 옷에 실수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일반인에겐 생소하지만 사실 70세 이상 노인 100명 중 2명꼴로 발생할 만큼 드물지 않은 병이다.
정상압 수두증은 치료가 어려운 치매와 달리 완치를 내다볼 수 있는 병이다. 일단 정상압 수두증은 뇌 CT나 뇌 MRI 검사로 뇌척수액이 있는 뇌실이 커졌는지 보고, 요추를 통해 30~50cc 정도의 뇌척수액을 뽑은 후 걸음걸이 등 이상 증상이 개선되는지 확인해 진단한다. 치료는 보통 전신마취 후 두개골에 구멍을 내고 션트 튜브(플라스틱 관)를 이용해 뇌실에서 복강으로 뇌척수액을 빼는 '뇌실-복강 단락술'을 시행하는데 최근에는 허리에서 복강 내로 우회로를 연결하는 '요추-복강 단락술'도 활발히 적용되고 있다. 중앙대병원 신경외과 박용숙 교수는 "요추 복강 단락술은 머리에 구멍을 내는 '두개골 천공술'을 시행하지 않아 국소마취로도 시행이 가능하고 전신마취 고위험군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며 "정상압 수두증은 치료가 가능한 질환이기 때문에 방치하지 말고 65세 이상에 걸음이 느려지고, 기억력이 저하되고, 배뇨장애가 있으면 반드시 검사를 시행해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자주 멍때리고 실수 반복하면 '노년기 우울증'
매사에 의욕이 없고,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우울증의 특징이다. 단순히 기분 변화에서 그치지 않고 집중력과 기억력 저하 등 인지 증상이 동반하기도 하는데 이 때문에 치매와 헷갈릴 수 있다. 정신이 멍해져 무슨 일을 하려 했는지 까먹거나 엉뚱한 실수를 반복하는 식이다. 두통, 복통, 소화불량 등의 신체적 증상이 동반하기도 하는데 검사하면 문제가 없어 "꾀병을 부린다"며 가족이 오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노년기 우울증은 약물, 인지행동치료 등을 통해 충분히 개선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이런 급성기 치료로 70~80%는 좋아진다. 약물의 부작용은 과거보다 눈에 띄게 감소했고 치료 전략도 다양해졌다. 고려대안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신철민 교수는 "약물 치료에는 항콜린성 부작용에 취약한 노인의 특성상 삼환계 항우울제보다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를 많이 쓰고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억제제는 통증에 효과적이라 평소 몸 이곳저곳이 아픈 노인에게 주로 처방한다"며 "평생 약을 먹어야 할까 우려하는 환자도 있는데 꾸준히 적극적으로 치료하면 더 이상 약을 먹지 않아도 좋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입원한 부모님, 시간과 장소 헷갈린다면 '섬망'
(서울=뉴스1) 이성철 기자 = 22일 코로나19 거점전담병원인 서울 광진구 혜민병원에서 관계자들이 중환자실을 음압병동으로 교체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2021.12.22/뉴스1

성격이 폭력적으로 변하거나 가족을 못 알아볼 때, 횡설수설하거나 헛것을 보는 증상이 입원과 같은 특정 환경에서, 갑자기 시작됐다면 의심해야 할 병이 바로 섬망이다. 수술·감염·약물 등으로 인해 뇌가 일시적으로 고장 나는 병으로 신체적인 스트레스가 심한 중환자실 환자 3명 중 1명이 경험하는 것으로 보고된다. 영양실조와 근육이 빠지는 근감소증일 땐 섬망 발생 위험이 더 크다. 최근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오주영 교수·고유진 강사가 중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 결과 체질량지수(BMI) 상 저체중에 해당할 때 역시 섬망이 더 많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만성적으로 서서히 악화하는 치매와 달리 섬망은 갑자기 시작하고 주로 낮보다 밤에 증상이 심해진다는 특징이 있다. 현재 있는 장소나 시간을 모르는 지남력 저하도 두드러진다. 대부분 원인을 해소하면 증상도 개선되고 인지기능 저하 등의 합병증 역시 남지 않는다. 다만, 섬망의 발생·악화 요인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는 만큼 입원 시 가족사진이나 평소 자주 쓰는 물건을 둬 안정감을 들게 하거나, 안경·보청기 등을 조기 사용해 의사소통 능력을 유지하게 돕는 등 예방에 신경을 써야 한다. 섬망은 재발률이 높아 이전에 경험한 적이 있다면 사전에 의료진에게 이 사실을 미리 알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치매 위험 ↑ 조기 관리 중요한 '경도인지장애'
경도인지장애는 기억력 등 인지기능의 저하가 객관적인 검사에서 확인될 정도로 뚜렷하게 감퇴한 상태다. 일상생활 수행 능력은 보존돼 있어 치매라 할 수는 없지만, 정상 노인은 매년 1~2%만이 치매로 진행하는 데 비해 경도인지장애는 매년 약 10~15%가 치매로 진행해 '고위험군'에는 속한다. 크게 기억형 경도인지장애와 비기억형 경도인지장애로 구분하는데 전자는 주로 기억력 감소를 호소하는데 일상생활 유지능력은 정상인 경우고, 후자는 방향감각이나 지남력처럼 기억력 이외의 다른 영역의 기능장애가 나타난다.

경도인지장애일 땐 고혈압과 당뇨병, 고지혈증 등을 관리하고 일주일에 3번 이상 걷는 등 규칙적인 운동으로 건강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금연과 외상에 주의하는 등 뇌 손상을 예방하는 데도 힘써야 한다. 경도인지장애의 치료 목적은 증상 호전보다 치매로의 진행을 막는 것이다. 세란병원 신경과 윤승재 과장은 "경도인지장애는 치매로 진행할 확률이 높긴 하지만 모든 경도인지장애 환자가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며 "치매로 진행하기도 하지만 정상 노화 상태로 되돌아오거나 경도인지장애 정도를 유지하기도 해 조기 관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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