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된 지금도, 여전히 과거에 산다”…학폭 피해자 자살·자해 충동 ‘26.8%→38.8%’ 껑충
김수연씨(24·가명)는 학교폭력 피해자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동급생들로부터 지속적으로 폭행을 당했다. 그는 “강제로 질질 끌려”다니거나 “배를 발로 차였”고 잠시 자리를 비우면 “책상과 의자가 없어지는” 등 악몽 같은 날들이 이어졌다고 했다. 김씨가 학교에 피해 사실을 알린 이후에도 신체폭력과 성희롱 등 괴롭힘은 이어졌다.
학교를 벗어난 후에도 김씨의 시간은 멈춰 있었다. 그는 12일 오전 서울 서초구 푸른나무재단 사무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등교를 못 하는 날이 늘어나 자퇴를 고민해야 했고, 여러 번의 자살 시도와 자해로 제 상황을 표출하기도 했다”면서 “성인이 되어 학교를 벗어났음에도 저는 여전히 과거에 살고 있었다. 왜 아직도 고통받고 힘들어하는가 되뇌고 자책했다”고 말했다.
비영리공익법인 푸른나무재단이12월19일부터 올해 2월29일까지 전국 17개 시·도의 초·중·고등학생 724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학폭을 겪은 학생 중 자살·자해를 생각했다는 응답자는 지난해 27%에서 올해 39%로 증가했다. 학폭 피해 이후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한 학생은 10명 중 8명(77.9%)에 달했다. 푸른나무재단이 운영하는 주간보호형 피해학생전담지원기관 ‘위드위센터’ 이용현황은 2020년 개소 당시 710여건에서 2022년 1570여건으로 2배 이상 늘었다.
설문에 응한 학생 중 학교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 학생은 6.8%였다. 가해 경험은 2.4%, 목격 경험은 11.9%였다. 피해 경험은 초등 7.7%, 중등 6.4%, 고등 4.9%였다. 가해 경험은 초등 3.2%, 중등 2.0%, 고등 1.1%였다. 목격 경험은 초등 12.5%, 중등 11.5%, 고등 11.0%로 나타났다. 최선희 재단 상담본부장은 “저학년의 경우 경미한 갈등이 많다”고 했다.
학폭 피해를 경험한 이후에도 이를 극복하지 못했다고 응답한 학생은 35.4%로 나타났다. 피해 극복을 위해 ‘가해 학생의 사과와 반성’과 ‘부모와 교사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많았다.
학폭 양상도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피해 학생 1명당 경험한 폭력의 유형 수는 2018년 1.8개에서 2021년 2.5개, 2022년 3.8개로 증가했다. 협박·위협, 강요·강제, 성폭력·강취 등 피해가 늘었다. 학폭 피해 경험이 있는 학생들의 98%는 사이버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최 본부장은 “사이버폭력은 가해자를 알 수 없거나 (게시물이) 일시적으로 업로드됐다가 삭제돼 증거확보가 어렵고 피해 기록이 빠르게 퍼져 피해자의 고통을 가중시킨다”면서 “유해한 콘텐츠 차단, 피해 발생 전 신속한 삭제 등 선제적·다각적인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일정 규모 이상의 국내 사용자를 둔 플랫폼은 유해 콘텐츠의 신고 절차 마련, 의무조치 기준, 관련 보고서 공시 등을 의무화하는 제도를 마련해 기업이 자발적 정화 시스템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학폭 문제 해결을 위해 교사의 갈등·조정 권한을 확립하는 게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피해당사자 김수연씨는 기자회견에서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은 초임이셨고, 가해자들은 선생님을 무시했다”면서 “선생님이 저를 보호하다가 가해자들에게 대신 맞는 일도 있었다”고 했다. 이어 “당시에는 몰랐지만 최근 선생님들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고 깨달은 것이 있다”면서 “선생님들도 적극적 보호를 받으며 학생을 교육할 수 있어야 학생들이 행복한 세상에서 교육받을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박길성 재단 이사장은 “학교가 바로 서야 학폭 문제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이미 많이 늦었고 더 늦기 전에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학폭의 지체된 해결은 해결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강은 기자 e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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