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6개월 늘린다지만...중소·중견기업에는 ‘그림의 떡’ 육아휴직

최정석 기자 2023. 9. 12.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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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한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중인 30대 여성 A씨는 얼마 전 둘째 아이를 출산했다.

육아휴직 없이 아이 둘을 키우기는 어렵겠다 싶어 회사 사장을 찾아 간 그는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육아휴직을 쓰지 말고 차라리 회사를 떠나라는 뜻을 간접적으로 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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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 관련 불리한 처우 신고, 5년간 증가세
근로자 수 많은 대기업 전유물이란 인식 강해
“기업문화 안 바꾸면 육아휴직 기간은 무의미”
지난 2월 16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7홀에서 열린 제43회 맘앤베이비엑스포에서 관람객들이 유아용품을 둘러보고 있다. /뉴스1

광주의 한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중인 30대 여성 A씨는 얼마 전 둘째 아이를 출산했다. 육아휴직 없이 아이 둘을 키우기는 어렵겠다 싶어 회사 사장을 찾아 간 그는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육아휴직을 얼마 동안 쓸 거냐는 물음 대신 사장은 느닷없이 실업급여와 퇴직금 이야기를 꺼냈다. 육아휴직을 쓰지 말고 차라리 회사를 떠나라는 뜻을 간접적으로 전한 것이다. A씨는 “한국에서 애 낳기 힘들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올해 2분기 합계 출산율이 0.7로 곤두박질쳤음에도 중소·중견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에게 육아휴직은 여전히 ‘그림의 떡’인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육아휴직 기간을 12개월에서 18개월로 늘릴 필요가 있다 강조하고 있으나 곳곳에서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육아휴직을 쓰는 것부터가 어려운데 기간을 늘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것이다.

12일 임의자 국민의힘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육아휴직 관련 신고사건은 지난 5년간 꾸준히 늘어났다.

그래픽=손민균

육아휴직 미부여, 육아휴직 중 해고, 육아휴직 이후 임금 수준이 같은 직무에 복귀하지 못한 것과 같은 불리한 처우에 대한 신고 건수가 2017년 99건에서 2022년 223건으로 2배 이상 늘었다. 올해 7월까지 접수된 신고는 193건으로 2021년 전체 신고 건수인 189건을 이미 넘어섰다.

정부도 마냥 손을 놓고 있지는 않다. 지난 8월 말 기획재정부(기재부)는 28년간 12개월이었던 육아휴직 급여기간을 내년 하반기부터 18개월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일·육아 병행 예산은 올해 1조8000억원보다 약 3500억원 증액해 2조1500억원 수준으로 확정했다.

그러나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현재 상황에서 기간을 늘리는 건 무의미한 조치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2021년 고용노동부가 전국의 상시근로자 5인 이상 사업체 중 5070개의 표본사업체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해당 연도에 육아휴직을 활용한 실적이 있는 회사는 11.4%에 불과했다. 100개 중 89개 회사에서는 육아휴직이 제대로 쓰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신청할 수 없는 이유 1순위는 ‘근로자 수가 매우 적어서’(38.3%)였다. 그 뒤를 동료 근로자 업무 부담 증가(24.7%), ‘대체인력 채용 어려움(11.6%), 사내눈치 등 조직문화(8.1%) 등이 이었다. 육아휴직은 근로자 수가 많은 소수 대기업의 전유물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상황 탓에 자녀를 갖길 원하지만 임신을 고민 중인 부부들도 있다. 서울의 한 중소기업에 근무 중인 30대 여성 B씨는 “회사에서 육아휴직은 3개월까지만 가능하다고 으름장을 놓은 상태”라며 “남편과 자녀 계획을 다 세워놓은 상태였는데 육아휴직을 보장받지 못할 것을 생각하면 고민이 되는 게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법적 제도를 조직 문화가 뒷받침하지 못한다면 육아휴직 기간과 예산을 늘리는 조치는 무의미할 수 있다 말한다.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현 시점에서 육아휴직 기간을 늘려도 출산율 증가 효과는 없을 수 있다”며 “육아휴직이 1년인지 1년 6개월인지보다는 1년짜리도 왜 쓰이지 못하는지 그 문화적 이유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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