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와 지독하게 엮인 우리 집이 어떻게 망했는지 들어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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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이 망했다.'
책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프롤로그는 이처럼 강렬한 제목으로 시작한다.
가족이 거쳐온 아파트는 이름만 들어도 무척 화려하다.
1970년대 고도성장기의 신혼 시절, 100만 원에 산 울산 아파트가 단숨에 300만 원이 되는 경험을 잊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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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민지 다큐멘터리 '버블패밀리' 감독
'우리 집이 망했다.'
책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프롤로그는 이처럼 강렬한 제목으로 시작한다. 마민지(34) 다큐멘터리 감독의 자전적 에세이 '나의 이상하고 평범한 부동산 가족(클 발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망하고, 망하고, 끝끝내 망하는 가족 에피소드로 가득 차 있다. 그 촉발이 매개되는 소재는, 한국의 중산층 신화를 구성하는 핵심인 '부동산'이다.
가족이 거쳐온 아파트는 이름만 들어도 무척 화려하다. 서울 강동구와 송파구 일대의 둔촌주공아파트, 올림픽선수기자촌아파트 등 현재 가치로는 20억 원을 훌쩍 넘는 대단지 아파트다. 마 감독의 모친은 132㎡(약 40평) 중대형 아파트에 걸맞은 유럽 앤티크 가구, 600만 원짜리 가죽 소파, 400만 원짜리 6인용 식탁으로 집 안 곳곳을 채웠다. 그 시절 무려 '각 그랜저'를 타고 논현동 가구거리에서 사 온 것이었다. 중산층, 아니 도시 상류층의 삶이었다.
마 감독의 가족에게도 1990년대 말 외환위기는 닥쳤다.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었고, 사기를 당했다. 결국 가족은 아파트 단지를 떠났다. 크기도 점점 작아졌고 자가에서 전세로, 전세에서 월세로 형태도 바뀌었다. 어머니는 과거 47평 아파트에 살던 시절 샀던 고급 가구를 버리지 못해 셋방에 꾸역꾸역 집어넣었다.
그럼에도 부모는 부동산을 믿었다. 1970년대 고도성장기의 신혼 시절, 100만 원에 산 울산 아파트가 단숨에 300만 원이 되는 경험을 잊지 못했다. 건설 붐을 타고 소규모 공동주택을 만들어 파는 일을 하며 이른바 '집장사'를 가족 사업처럼 키워나갔다.
이상, 마 감독의 책에 담긴 그의 주거 역사이자 가족의 서사다. 동시에 그가 2017년 제작한 다큐멘터리 '버블 패밀리'의 주요 스토리라인이기도 하다. 30년에 걸친 가족의 흥망성쇠를 한국의 도시개발사와 함께 엮었다. 다큐멘터리는 국내 작품으로는 처음으로 2017년 EBS국제다큐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지난달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그를 만났다.
6년 전의 다큐멘터리와 책은 큰 틀에서는 유사한 서사를 공유하지만, 서술의 관점과 방식을 약간 변주했다. 마 감독은 "영화는 제 목소리로 내레이션을 입히는 등 저의 관점이 주로 담겨 있지만, 책은 조금 더 어머니의 삶을 조명하는 방식으로 썼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어머니 노해숙씨는 코로나19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이 책의 저술은 어머니를 향한 애도의 과정이기도 했다.
"엄마는 다큐멘터리가 나왔을 때도 'N차 관람(같은 작품을 여러 차례 보는 것)'을 할 정도로 제 작업을 좋아했어요. 특히 영화에 담지 못했던, 과거 '집장사'를 하던 시절 엄마가 인테리어를 도맡는 등 주도적으로 사업했던 부분 등을 구체적으로 담았어요. 살아 계셨다면 그 부분을 뿌듯해하셨을 것 같아요."
20대 내내 학자금 대출을 갚으며 셋방을 전전했던 그는 30대가 되면서 또래 친구들이 '영끌족'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세태를 목격한다. 책은 아파트에서 자라, 아파트가 익숙하며, 더 나아가 아파트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아파트 키즈'라면 십분 공감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부동산 불패 신화'가 여전히 암묵적으로 통용되는 한국 사회에서 '이상하고 평범한 부동산 가족' 속에서 자란 이는 한두 명이 아니기에.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가정의 힘든 사정을 말할 수 없었던 또래 친구들이 많았어요. 그들이 읽고 공감하며 어린 시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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