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반도체’ 원로학자가 서울대를 퇴직하고 한 일은?

최승진 기자(sjchoi@mk.co.kr) 2023. 9. 12.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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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준 전 서울대 공대 교수
제자들과 스타트업 라이팩 창업
“‘무어의 법칙’ 종료되는 시대
광엔진이 새로운 성장동력 될것”
박영준 라이팩 최고 기술·마케팅 책임자(CTMO) [라이팩]
박영준 라이팩 최고 기술·마케팅 책임자(CTMO) [라이팩]
“한국에서는 왜 엔비디아처럼 반도체 시장의 ‘게임체인저’가 되는 회사가 나오지 못할까요. 한국 반도체 기업들도 잘하고 있지만 전체 산업의 주도권을 쥐고 가는 것이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부족한 부분이 있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지만, 산업을 주도하는 기업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제가 광엔진 스타트업 라이팩을 설립한 이유입니다.”

한국 반도체의 ‘산 증인’이자 ‘대표 원로학자’로 꼽혀왔던 박영준 전 서울대 전기공학부 교수는 요즘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을 기대하고 있다. 그가 창업한 ‘라이팩’의 독보적인 광엔진 기술이 세계적인 관심을 끌고 있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1980년대 IBM과 금성반도체에서 반도체를 연구했고, 서울대에서 교수를 시작한 이후 서울대 반도체 공동연구소장, 현대전자산업(현 SK하이닉스) 메모리연구소장을 맡기도 했다.

국가 과학기술위원회 전문위원, 국가산업안보위원장도 역임하면서 한국의 ‘반도체 신화’를 산업계·학계 현장 모두에서 이끌어왔다.

그런 그가 2018년 서울대를 퇴직한 뒤 ‘광엔진’ 스타트업 ‘라이팩’을 창업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학계·업계는 그의 행보를 주목했다. 박 교수의 직책은 최고 기술·마케팅 책임자(CTMO). 그는 한국 반도체 산업계 곳곳에 있는 제자들을 불러모아 ‘드림팀’을 꾸렸다.

30대 초중반인 박동우 최고경영자(CEO)와 최성욱 최고기술책임자(CTO)를 영입한 이후 국내 대기업 출신인 40~50대 ‘실력자’들이 순차적으로 합류했다.

현재 라이팩에서 개발을 담당하는 최준후 개발1팀장, 한승만 개발2팀장은 삼성전자 출신이다. 삼성전기 출신인 정인섭 기술기획팀장, 삼성전자·삼성디스플레이를 거친 송진호 기술마케팅팀장과 한국IBM에서 근무했던 김은동 최고운영책임자(COO)도 있다.

박영준 CTMO는 “최고의 실력자들이 뜻한 바가 있어 라이팩에 합류했다”며 “예전에는 큰 회사 출신의 인재들은 퇴직 후 대기업 협력사 임원으로 취업해 편안한 노후를 보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들도 기술을 갖춰가는 회사에서 노하우와 업무 역량을 60~70세가 될때까지 펼치는 트렌드가 있다”고 말했다.

그를 중심으로 실력자들이 모인 것은 라이팩의 핵심 기술인 ‘광엔진’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다. 박 CTMO는 집적회로의 성능이 2년주기로 2배로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이 더 이상 효력을 상실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반도체 칩을 묶는 패키징, 특히 ‘광 패키징’이 정보기술(IT) 산업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대두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회사 이름도 ‘광(Light) 패키징(Packaging)’을 줄여 라이팩(LIPAC)이라고 지었다.

반도체와 반도체를 연결하기 위한 소재로 구리가 이용되지만, 빛을 이용하면 정보전달을 더 빠르게 하면서도 무게를 줄이고 전력효율도 높일 수 있다.

라이팩은 이를 가능케 하는 O-SiP(Optical-System in Package)이라는 독보적인 광엔진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 기술은 박 CTMO와 라이팩 임직원들의 기술력과 노하우를 총동원해 만든 ‘역작’으로 꼽힌다.

박 CTMO는 “앞으로는 컴퓨터 내부를 포함한 모든 유선 네트워크가 광으로 연결되는 ‘광 네트워크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며 “라이팩은 이같은 트란드 속에서 광엔진 기술 부문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구축해 전체 산업을 주도하는 글로벌 선도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목표”라고 강조했다.

현재 생성형 인공지능(AI) 분야의 학습 계산 엔진을 주도하는 엔비디아도 폭발하는 데이터를 감당하기 위해 실리콘밸리의 광엔진 스타트업, 대만 TSMC와 연계해 이 분야의 선점에 나선 상태다. 최근 엔비디아는 칩과 칩 사이에 ‘광엔진’을 두고 빛을 이용해 데이터를 전송하는 기술 ‘엔비디아 링크’를 선보이기도 했다.

박 CTMO는 이같은 변화의 흐름 속에서 라이팩이 엔비디아의 ‘대항마’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라이팩은 광학 기술의 표준을 만들어내는 기업 연합체 ‘온보드 광학 컨소시엄(COBO)’에 핵심 기술공여자로 참여하고 있다.

라이팩이 참여한 컨소시엄에는 미국 인텔도 함께해 심도있는 기술교류를 진행중이다. 그는 “라이팩은 인텔 등 기업과 함께 광 네트워크 기술을 소개했고, 이같은 시도는 엔비디아 일색인 광 네트워크에 대항하는 시도로 주목받고 있다”며 “라이팩의 기술은 개방성과 융합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 장점이 많다”고 설명했다.

박 CTMO는 “이런 관점에서 한국 정부가 예타 면제 사업으로 추진중인 K클라우드가 대한민국 광 네트워크 산업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기회가 될 수 있다”며 “라이팩은 인텔, IBM과 국제 컨소시엄 뿐 아니라 국내 유수 반도체 패키징 회사 등과 연계해 지속발전 가능한 인프라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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