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 정상외교, 규범과 원칙에 기초한 외교기조의 본격화

2023. 9. 12.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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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기 국립외교원 교수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주 참석한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는 ▲한중일 3국이 각각 개별적으로 아세안 10개국과 개최하는 아세안+1 정상회의 ▲아세안과 한중일 3국 모두 참여하는 아세안+3 정상회의, 그리고 ▲아세안 10개국과 한중일을 포함한 미국, 인도, 러시아 등 역외 8개국 등 총 18개국이 참여하는 동아시아 정상회의(EAS)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는 역내 주요국이 모두 참여할 뿐만 아니라 회의 기간 내내 다수의 양자 정상회담도 동시다발적으로 개최됨으로써 인태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다자외교 무대라고 할 수 있다.

작년 11월 프놈펜에 이어서 두 번째로 아세안 정상회의에 참여한 윤 대통령은 사흘 회기 동안 한-아세안, 아세안+3 및 동아시아 정상회의를 소화했을 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 베트남, 싱가포르, 필리핀,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등 아세안 주요 국가들과도 양자회담을 개최하였다. 아울러 중국 리창 총리를 비롯해, 캐나다, 방글라데시 총리와도 양자회담을 개최하였고, 그 이외에도 다수의 정상들과도 회의 사이의 막간을 이용한 간단한 조우를 통해서 외교적 보폭을 확대했다.

윤 대통령의 이번 아세안 정상외교의 의미는 ▲규범과 원칙에 기반한 ‘글로벌 중추 외교’의 본격화 ▲‘한-아세안 연대구상’의 이행 구체방안 제시를 통한 아세안과 포괄 협력 기반 구축, 그리고 ▲적극적 ‘세일즈 외교’를 통한 아세안과의 경제협력 확대, 안정적 공급망 구축 및 신시장 확보 등 대략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이번 윤 대통령의 아세안 정상외교에서 관찰되는 가장 큰 특징은 현 정부의 “외교독트린”이라 할 수 있는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기조가 대(對) 아세안 정책뿐만 아니라 지역외교 및 글로벌 다자외교 현장에서 대통령의 구체적 외교언어와 행위로 선명하게 드러났다는 점이다. 윤 정부가 제시한 인태전략의 핵심은 한국의 국익이 인태지역 및 글로벌 차원의 규범 기반 질서의 유지 및 강화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고, 규범 기반 국제질서의 확립을 위해서 한국은 자유, 인권, 국제법과 규범에 근거하여 지역적 역할과 관여를 확대하고 국제적 지위에 상응하는 글로벌 책임과 기여를 다 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아세안 정상외교에서 윤 대통령은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의 고도화에 따른 한반도 안보 위협의 증가는 유엔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의 정면 위반이자 국제 비확산체제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는 점을 역설했다. 특히 북한의 핵 개발이 역내 질서의 불안을 가중시키는 등 중국의 국익에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안보리 이사국인 중국의 책임 있는 ‘건설적 역할’을 강력히 촉구했다. 또한 최근 북한과의 무기 거래를 포함한 군사협력을 도모하는 러시아를 강도 높게 비판하며, 국제사회의 단합된 대응과 공조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아울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과 아세안 당사국 간 최근 긴장이 높아지고 있는 남중국해 상황에 대해서도 ‘힘에 의한 일방적 현상 변경’은 어떠한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지난달 개최된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3국 정상회의에서도 확인된 이러한 ‘글로벌 중추외교’ 기조는 이번 아세안 정상외교 무대를 계기로 아세안 및 인태지역 차원에서 보다 구체적인 외교정책으로 현실화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컨벤션 센터(JCC)에서 열린 한·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정상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둘째, 이번 아세안 정상외교를 계기로 우리 정부의 새로운 아세안 정책인 ‘한-아세안 연대구상’의 이행이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는 점도 매우 의미 있는 대목이다. 한-아세안 연대구상은 그동안 아세안을 단순한 경제파트너로만 보던 협소한 시각을 넘어서 무역, 투자 및 개발협력뿐만 아니라 해양안보, 비전통 안보, 방산 및 국방협력 등의 분야를 포괄하는 ‘전략적 파트너’로서 인식하고, 협력의 폭과 범위를 전방위적으로 확대하고자 하는 아세안에 특화된 맞춤형 전략이다.

이를 위해서 이번 회의에서는 2024년 한-아세안 관계를 ‘포괄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는데 양측이 합의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인태전략과 아세안의 인태전략인 “인도태평양에 대한 아세안의 관점(AOIP)”과의 시너지를 거두기 위한 특별성명을 도출하기도 했으며, 메콩협력기금 및 한-아세안 협력기금의 확충을 통한 한-아세안 협력의 기반을 강화했다.

셋째, 우리 정상의 활발한 ‘세일즈 외교’를 통해 역동적이고 거대한 내수시장을 가지고 있는 인도네시아를 비롯해 아세안 주요국들과의 경제협력을 디지털, 핵심 광물, 전기차, 배터리, 방산 등의 분야로 확대함으로써 아세안에서의 ‘신시장 확충과 연대 강화’를 모색했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필리핀과의 FTA 타결을 통해서는 자동차 분야 등 필리핀 내수시장에 대한 접근을 강화하고, 보다 안정적인 제조업 공급망 구축을 위해 아세안 주요국에 우리 주력인 전기차, 배터리 등의 생산거점을 분산 구축하도록 지원하고자 했다. 현 디지털 분야에서 아세안과의 협력 강화를 위한 ‘디지털 혁신 플래그십’ 프로젝트를 추진함으로써 신성장 동력 분야에서 아세안 시장에 대한 접근성도 대폭 확대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이번 아세안 정상회의 의장국인 인도네시아와는 올해 수교 50주년을 맞아 단독 행사로서 정상회담 및 양국 주요 경제인들이 참여한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 등을 개최하고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디지털경제 분야를 망라하는 산업 협력, ▲지식재산 보호 ▲전기차 생태계 ▲할랄식품 분야 등에 관한 MOU 체결하는 등 양국 간 경제협력을 대폭 확대하는 기반을 마련했다.

요컨대 이번 윤 대통령의 아세안 정상외교는 ▲인태전략 기조에 기초한 외교정책 본격화 ▲한-아세안 연대구상의 구체적 이행 개시 ▲신시장 확충을 위한 아세안과의 경제협력 기반 확대라는 중요한 외교적·경제적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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