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퍽질퍽 황톳길..여기가 무릉도원”..전국은 ‘맨발걷기’ 열풍
흙과 맞닿은 발바닥 지압 및 오감 효과
건강·여가 동시에 챙기는 ‘운동법’ 확산
영광 물무산 ‘맨발 황토길’ 명소 입소문
전국 ‘맨발족’ 줄이어..힐링과 추억 즐겨
요즘 전국적으로 ‘맨발걷기’ 열풍이 거세게 일고 있습니다. 각 마을마다, 지역마다 맨발로 걸을 수 있는 산책로나 등산로 코스가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아침, 저녁으로 찾아와 운동을 즐기는 공원이나 학교, 마을동산, 강변, 숲 등에 흙을 직접 맨발로 밟을 수 있는 길을 만들고 있습니다.
‘맨발걷기 열풍’은 발바닥으로 땅을 직접 밟는 것이 신발을 신고 밟을 때 보다 흙의 촉감을 직감할 수 있고 지압효과 등으로 몸 전체의 혈액순환 효과가 증진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맨발이 흙과 맞닿으면서 느끼는 오감 체험도 색다른 경험인데다 자연과의 일체감도 기대할 수 있어 개인을 물론 건강과 여가를 동시에 즐기는 ‘맨발걷기 동호회’ 모임도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맨발 걷기가 최근 주목받고 있는 것은 자연과의 교감을 통한 치유의 행위로 다가오는 이유입니다. 오랜 불면증으로부터 해방된 사례를 비롯해 만성 두통, 고혈압에 효과가 있었고 심지어는 난치병 치유에도 도움을 주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 더욱 관심을 끈 것으로 보입니다.
전문가들도 ‘맨발걷기’에 숨겨진 건강 비밀로 ‘자연 지압이론’과 ‘접지이론’ 등을 소개하며 비용이 들지 않고 아무런 부작용이 없는 맨발걷기야말로 건강과 치유의 보물지도와 같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맨발걷기를 입법화와 정책전환을 촉구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 전남 영광군 물무산 ‘질퍽질퍽 황톳길’ 이색체험
현재의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예견이라도 하듯 벌써 5~6년 전에 만들어진 ‘전라도 황톳길’이 최근 맨발 걷기족들에게 명소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전남 영광군 묘량면 덕흥리 615 ‘물무산 행복숲 맨발 황톳길’이 그곳입니다.
영광읍 동편에 야트막하게 드러누운 물무산은 인근 주민들의 가벼운 산책로가 산 전체를 휘감고 있습니다.
서해안고속도로 영광IC에서 10분 이내 거리인 이 길은 물무산 동쪽 묘량면에서 시작해 2Km 정도 이어집니다. 출발하여 0.6Km는 질퍽질퍽한 황톳길로, 나머지 1.4Km는 마른 황톳길로 조성돼 왕복 10리길입니다. 천천히 걸어도 1시간30분이면 오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이곳이 다른 지역의 맨발걷기 코스와 다른 점은 먼저 길 전체에 황토를 깔아 놓은 것입니다. 대부분의 산속길이 마사토나 부엽토, 모레나 자갈이 섞여 잇는 것과는 달리 고운 황토를 다져놓아 그 촉감으로 그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차별화된 부분은 출발지점에서부터 600m 구간 왼편으로 질퍽질퍽한 황토반죽으로 조성해 놓아 걷는 사람의 발목까지 흙 속에 빠지며 걷도록 한 것입니다. 부드럽고 촉촉한 황토의 질감을 발 전체로 체감하는 이색적인 경험을 하며 걷는 즐거움을 배가 시킵니다.
그리고 그냥 걸어도 행복한 숲속 터널에 길을 놓아 나무와 지형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살려내 완만한 S자형 황톳길은 나뭇가지 사이로 파고든 햇살과 그림자가 덮여 시각적으로도 만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곳 물무산 행복숲 맨발황톳길은 지난 2018년 영광군이 군민의 건강을 위해 만들어 지금도 직접 관리하고 있습니다. 평일에는 400~500여명이 방문하고 주말에는 1,800~2,000여명이 찾는 명소로 자리잡아가고 있습니다.
최근 제2주차장과 진입로 확장 등 늘어나는 외지 방문객 맞이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전라남도가 전남을 돌아보는 여행프로그램으로 기획한 ‘남도한바퀴’의 영광군 첫 번째 방문지로 선택할 만큼 유명해진 이곳은 매일 경향각지의 등산객과 맨발족이 찾는 필수 코스가 되었습니다.
이 길을 내는데 최초의 아이디어를 낸 박정현 과장(당시 영광군 산림공원과장)은 “고향에 가서 일 하나 해야겠다 싶어 내려와 순천 봉화산 둘레길, 서울에 있는 둘레길을 돌아보았다”며 “또 대전 계족산 맨발 황토길을 접하게 돼 물무산에 황톳길을 만들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이어 “저는 산을 다루는 사람이라 숲이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게 있어서 너무 유명해지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면서 “최근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오면서 숲이 제공하는 쾌적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 부분이 보람이면서도 우려되는 부분이다”고 말했습니다.
◇ 숲속 황톳길 걸으며 떠올리는 ‘흙밟기 추억’
이곳을 찾는 시민들 대부분이 가족단위이거나 지인, 동호인들로 삼삼오오 무리지어 진흙길을 걸으며 저마다의 추억담을 풀어 놓습니다.
특히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들은 맨발로 질퍽한 흙밭을 걸어가는 아이들에게 ‘흙’에 대한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주기에 충분합니다.
반대로 기성세대들에게는 어린 시절 고향집을 짓거나 수리할 때 황토흙에 물을 붓고 짚을 썰어 넣어 발로 짓이겨 흙벽돌을 만들 때의 먼 기억이 소환됩니다.
이곳을 찾은 김 모 씨(전남 나주)는 “어렸을 때 무너진 담장을 다시 쌓으려고 흙벽돌을 만들 때 아버지가 ‘흙밟아라’라고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면서 “그때 맨발로 흙을 밟으며 느꼈던 발바닥의 감촉이 느껴지고 동생들과 장난치던 생각이 떠오른다”고 추억을 회상하기도 했습니다.
이 모 씨(광주광역시)는 “질퍽한 황토흙길을 걷다보니 어렸을 때 모를 심기 위해 못자리를 만들 때 써레질을 하고 나서 논바닥을 고르기 전에 덜 으깨진 흙덩어리를 발로 밟아 짓이겨 모판을 다지던 기억이 난다”면서 “맨발로 다시 흙을 밟는 것이 옛 생각이 나고 이렇게 즐겁고 재미 있을 줄 몰랐다”며 맨발 걷기로 얻은 추억에 젖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습니다.
질퍽질퍽한 길을 10여분 걷다가 벗어나면 숲속을 따라 S자로 이어지는 마른 황톳길도 역시 발바닥의 색다른 느낌에 운동효과를 확인하는 듯합니다. 딱딱한 땅바닥을 한참 걷다보면 나도 몰래 얼얼한 느낌이 전달되어 오기 마련입니다.
동행한 가족이나 친구들과 오붓한 대화를 나누며 걷다보면 길섶에 상사화 무더기, 일명 꽃무릇 군락이 붉게 흐드러져 장관을 이룹니다. 파란 하늘과 푸른 나무숲, 노란 황톳길, 그리고 붉은 꽃무리가 한눈에 차올라 아름다운 숲길의 색깔만찬을 누리는 듯합니다.
물론 꽃무리 사이를 날아다니는 검은 나비와 풀벌레의 울음소리, 새소리, 바람소리까지 자연의 소리가 합창을 이루어 힐링의 시공감을 제공하기에 충분합니다. 길 가다 불쑥 튀어 나오는 다람쥐와의 조우도 생태 트레킹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습니다.
황토길의 입구과 끝, 그리고 중간에는 발을 씻을 수 있는 세족장이 설치돼 발을 씻는 재미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주변에 가지런히 줄지어 놓여진 신발들이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공동체 정신을 보여 줍니다.
지위의 고하와 연령, 지역을 따지지 않고 여기선 신발을 벗어 놓고 오로지 맨발로 땅과 호흡하며 동행하는 동반자의 발자국을 찍는 것입니다.
나오는 길에 학창시절 외웠던 시가 생각납니다. 한하운 시인의 전남 고흥 소록도로 가는 길의 아픔과 회한을 읊은 시 ‘전라도길’을 음미해봅니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숨 막히는 더위뿐이더라/…/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길”
이 황톳길이 이제는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치유와 힐링의 ‘길’로 ‘발’에 닿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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