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시속' 1인2역 전여빈 "눈빛뿐 아니라 색깔, 온도도 다르게끔"
(서울=연합뉴스) 오명언 기자 = "배우라는 일을 너무 잘 해내고 싶은 사람으로서 1인 2역은 정말 잘 수행해내고 싶은 과제였어요."
오토바이를 타고 밤길을 달리는 두 고등학생. 드라마에서 여러 차례 보여준 그림이지만, 어딘가 낯설게 느껴진다.
시헌(안효섭 분)의 뒤에 앉아 그를 바라보는 주희(전여빈)의 묘한 표정은 애틋한 마음으로 읽히지만, 헬멧을 벗는 몸짓, 어정쩡한 자세, 흔들리는 눈빛과 표정 등이 평소와 다르게 눈에 띄게 어색하다.
배우 전여빈은 넷플릭스 새 시리즈 '너의 시간 속으로'에서 한준희와 권민주를 동시에 연기했다. 권민주의 몸에 한준희가 들어오는 설정인데, 전여빈의 섬세한 연기는 화면 속 여자 주인공이 한준희인지 권민주인지 단번에 알아채게 만든다.
12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마주 앉은 전여빈은 "배우로서 풍부하게 고민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맡게 돼서 행복했지만 그만큼 어려운 과정이었다"며 "너무 힘들어서 혼자서 주저앉은 적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혼자서 막 한숨을 내뱉고 그러다가 다시 이제 '으쌰으쌰' 하면서 촬영을 이어 나가고 그랬죠. (웃음)"
1인 2역 자체도 큰 도전이었지만, 극 중 전여빈은 10대 후반에서 30대까지 거의 20여 년을 가로지른다.
고등학생 권민주와 타임슬립으로 그의 몸에 들어온 한준희, 이와는 별개로 동떨어진 시간을 살고 있는 대학생 한준희와 30대 직장인 한준희까지 모두 다르게 표현해내야 했다.
전여빈은 "한준희와 권민주를 시각적으로, 그리고 온도적으로도 다른 사람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극초반의 권민주가 검은색이었다면, 한준희는 빨간색으로, 극 후반의 권민주는 파란색으로 보이기를 바랐어요. 캐릭터들의 눈빛이 다르다고 느끼는 것을 넘어서 온도와 색깔 모두 아예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게 하는 게 목표였죠."
인기 대만 드라마 '상견니'를 원작으로 하는 '너의 시간 속으로'는 1년 전 세상을 떠난 남자친구를 그리워하던 한준희가 운명처럼 1998년으로 타임슬립해 남자친구와 똑같이 생긴 시헌과 친구 인규(강훈)를 만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타임슬립이라는 소재를 활용한 전개가 복잡하게 꼬여있다.
전개를 이해하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는 전여빈은 "결말이 마음에 들어서 작품을 꼭 하고 싶었다"고 짚었다.
전여빈은 "사람은 사랑을 갈구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운명적인 한 사람이 나를 알아봐 주길 바라는 마음은 많은 사람과 공통으로 나눌 수 있는 마음이라고 생각했다"며 "복잡하게 꼬여버린 시간 속에서도 결국 만나고야 마는 그런 결말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지난해 봄 촬영을 시작해서 사계절을 쏟아부은 작품이지만, 전여빈은 아직 시청자 반응을 찾아볼 엄두가 안 난다고 고백했다.
그는 "저도 정주행을 마친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아직 마음이 상기돼있다"고 말했다.
이어 "마음이 가라앉아야 피드백을 건강하게 수용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떨리는 마음을 누르며 천천히 용기를 모으는 중"이라고 웃음을 터트렸다.
지난 8일 넷플릭스에 작품이 공개된 후에야 편집본을 처음 봤다는 전여빈은 드라마를 보면서 "지켜내고 싶은 순간들이 불쑥불쑥 기억났다"고 전했다.
"연인 간 사랑 말고도 지켜내고 싶은 사랑의 순간들이 있잖아요. 그런 순간들을 환기하게 되는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시청자분들의 마음에는 어떤 순간들이 남아있는지, 어떤 사랑을 지키고 싶어 하시는지 궁금해졌어요."
2015년 영화 '간신'으로 데뷔해 드라마 '멜로가 체질', '빈센조' 등으로 이름을 알린 전여빈은 멜로, 누아르, 스릴러, 코미디, 공상과학(SF)을 오가며 다채로운 연기 색을 선보였다.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연기 있냐고 묻자, 그는 한참 고민하다가 이런 답을 내놓았다.
"사실 그런 걸 굳이 정해두지 않으려고 해요. 정하면 그대로 해야 할 것만 같달까요. (웃음) 전 백지 같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cou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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