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점도 안 한 국가기술자격 답안지 파쇄…사고의 이면엔
2020년 이후 7차례 답안지 인수인계 누락 반복
사고 이면엔 9년째 오르지 못한 검정 수수료
시험 볼수록 적자…고물가에 인력·예산 감당 못 해
[이데일리 최정훈 기자] 국가기술자격시험 답안지가 채점 전 파쇄되는 사태가 발생한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과거 유사한 사고가 최소 7차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험 전반에 대한 공단의 총체적 부실이 있었다는 게 고용노동부의 감사 결과다.
그러나 사고의 이면엔 시험 운영 예산의 기반인 검정 수수료가 9년째 동결되는 등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용노동부는 한국산업인력공단 국가자격시험 특정감사 결과를 12일 발표했다. 이번 감사는 채점도 하지 않은 600여 명의 국가자격시험 답안지가 공단의 실수로 파쇄되는 사건이 계기가 됐다.
앞서 공단은 지난 5월 정기 기사·산업기사 실기시험에 응시한 수험생 609명의 답안지를 채점도 하기 전에 실수로 파쇄했다. 이후 4건의 파쇄가 추가로 확인돼 총 613명의 피해자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피해 수험생들을 재시험을 치러야 했다. 당시 어수봉 이사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사고 직후 진행된 고용부의 감사 결과, 공단이 답안 인수인계와 파쇄 관련 공단 내부규정을 다수 위반한 사실이 확인됐다. 답안지가 이송되는 과정에서 답안 수량 확인 및 인수인계서 서명하지 않았고, 퇴직한 공단 직원이 시험관리위원으로 위촉되는 등의 문제도 있었다. 또 문서가 파쇄되는 과정에서는 파쇄 전 보존기록물 포함 여부도 확인하지 않았고, 점검직원도 상주하지 않았다.
특히 2020년 이후 공단에서는 최소 7차례 답안 인수인계 누락 사고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기사 작업형 실기시험에선 응시자 답안지 6매 중 1매를 분실한 사건도 있었다. 비슷한 사고사례에도 공단은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을 소홀히 했다는 게 고용부의 설명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비슷한 사고가 수차례 발생해 내부 보고까지 됐으면 문제를 살펴봐야 했지만, 각 단계별 문제는 계속 방치되고 있었다”며 “답안지 파쇄사고에 책임 있는 직원 등 총 22명에 대해 비위 정도에 따라 중·경징계 및 경고·주의조치 하도록 공단에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사고 이면엔 여론 눈치에 9년째 못 올린 검정 수수료
한편 답안지 파쇄사고는 정부가 키워온 구조적 문제의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의 근간에는 시험을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없을 정도의 적은 예산과 인력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물가가 천정부지로 오르는 상황에서도, 시험 운영 예산의 기반인 검정 수수료가 9년째 오르지 못한 점이 문제의 핵심으로 꼽힌다. 공단에서 관리하는 종목의 검정 수수료는 2014년 이후 9년째 동일하다. 필기시험의 경우 △기술가 6만7800원 △기능장 3만4400원 △기사와 산업기사 1만9400원 △기능사 1만4500원 등이다.
공단은 현재 497개의 검정형과 179개의 과정평가형 국가자격시험을 받아 운영하고 있다. 최근 3년간 검정형의 응시자만 약 399만명에 달한다. 즉 시험을 볼수록 인력과 예산이 부족해지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이번 감사에서 공단은 수험자 현황 관리 미흡부터 자체 시험장 부족, 채점위원에 대한 사후 평가 소홀까지 시험 운영 전반이 부실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는 고용부가 수수료 인상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의식해 인상을 최대한 기피하면서, 구조적 문제를 키운 책임도 있다는 지적이다.
한편 공단은 이날 입장문에서 “고용부 특정감사 결과를 겸허히 수용해 조치하겠다”며 “자체 ‘국가자격 운영혁신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해 이달 말까지 더욱 정밀하고 촘촘한 제도 개선안을 마련해 유사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강조했다.
최정훈 (hoonism@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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