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에 깃든 어두운 범죄, '소용없어 거짓말'의 득과 실
[엔터미디어=정덕현] 범죄 없는 드라마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물론 범죄 스릴러 장르야 당연히 범죄를 소재로 삼지만, 최근에는 코미디나 멜로에서도 범죄가 빠지지 않는다. tvN 월화드라마 <소용없어 거짓말>은 거짓말이 들리는 목솔희(김소현)라는 인물과 살인용의자로 알려진 후 무혐의로 풀려났지만 범인 취급받는 김도하(황민현)라는 작곡가의 사랑을 그리는 작품이다.
목솔희와 김도하 사이에 벌어지는 달달한 사랑과 뭐라 설명하지 않아도 믿어주는 것에 대한 먹먹한 위로를 전하는 이 이야기는 로맨틱 코미디가 주장르다. 그런데 김도하가 살인용의자로 몰렸던 과거 살인사건의 진실을 풀어가는 이야기가 깔려 있어 실종된 여성의 사체가 발굴되고, 실제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의 추격전이 벌어지는 등 범죄 스릴러의 색깔들이 겹쳐져 있다. 특히 드라마가 막바지에 이르면서 살인사건의 진실을 밝혀줄 범인을 찾는 이야기의 분량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소용없어 거짓말>은 이야기 구조상 범죄가 빠질 수 없다. 결국 이 이야기는 먼 길을 돌아왔지만 살인용의자였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마치 실제로는 범인일거라고 지탄받던 김도하를 중심에 두고, 믿음과 소통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거짓말이 들리는 능력을 갖고 있는 목솔희는 김도하가 자신이 죽였다고 자책하며 말할 때 그것이 심지어 진실로 들렸지만 그럼에도 그가 진범이 아니라는 걸 믿어준다.
또 목솔희는 거짓말을 읽는 능력을 갖고 있어 누군가를 쉽게 믿지 못하고 의심부터 하지만 김도하는 다르다. 그는 끝까지 사람을 믿는 걸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상대를 전적으로 믿어주는 것. 거기서부터 진정한 관계가 생겨날 수 있다는 걸 이 로맨틱 코미디는 그리고 있다. 산에서 자연인처럼 살아가는 그의 아버지 목태섭(안내상)이 하는 말에 그 주제의식이 담겨있다. "원래 믿음이라는 건 100% 밖에 없는 거야. 99% 믿고 1% 의심하면 그게 어디 믿는 건가? 니가 그 남자 믿을 거면 그냥 100%로 믿어."
그러면서 무조건 상대를 믿지 않고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믿는 '확증편향'이 만들어내는 비극 또한 다룬다. 김도하가 범인이 아니라는 걸 믿어주지 않고 자신의 정치인생에 걸림돌이 될까봐 형사를 매수해 가짜 증인을 세우기까지 한 그의 엄마 정연미 의원(서정연)이 바로 그 비극의 주인공이다. 결국 형사가 마음을 바꿔 양심고백을 하자 정연미 의원의 정치인생은 물론이고 그의 아들 김도하까지 진범으로 몰리는 안타까운 상황이 만들어진다.
결국 진범을 찾는 이야기가 깔려 있어 <소용없어 거짓말>은 그 로맨틱 코미디의 달달함에 살벌한 범죄가 끼어드는 걸 피하기 어려운 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로맨틱 코미디의 달달함과 범죄 스릴러의 살벌함은 장르적으로 보면 상치되는 것이 사실이다.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살짝 자극제로 들어가는 범죄 스릴러 정도는 괜찮을 수 있지만, 너무 몇 회에 걸쳐 범죄 이야기가 계속 채워지는 건 본래 갖고 있는 로맨틱 코미디의 흐름을 깨는 결과를 만들기도 한다.
최근 들어 드라마들은 코미디든 멜로든 흔하게 범죄를 끼워 넣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JTBC 토일드라마 <힙하게>는 멜로와 코미디 그리고 판타지가 주 장르라고 볼 수 있지만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는 범죄 스릴러와 엮어져 있고, 종영한 드라마 ENA <남남>이나 tvN <일타스캔들> 같은 작품에도 범죄 서사가 살짝 가미되어 있었다. 이런 경향은 과거 <별에서 온 그대>나 임상춘 작가의 <동백꽃 필 무렵>같은 멜로에서 연쇄살인마를 등장시키는 요소가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생겨난 면이 있는데, 중요한 건 균형감이다.
로맨틱 코미디 같은 멜로는 한없이 몽글몽글한 달달함과 유쾌함을 힘으로 끌고 가지만 최근 다양한 장르들을 경험한 시청자들에게는 어딘가 밋밋한 서사의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적절한 자극제로서 범죄 스릴러적 요소가 더해지는 게 최근 경향이라고 볼 수 있는데, 중요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작품의 주 장르인 멜로의 기조가 흔들릴 정도로 분량을 채우는 건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는 점이다.
<소용없어 거짓말>에서 범죄 소재는 빠질 수 없다. 그것이 결국 거짓말을 하거나 진실을 믿어주지 않는 현실의 밑그림을 그려주고 있고, 그 대척점으로 100% 서로를 믿어주는 남녀의 사랑이야기가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밑그림이 아니라 결국은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어떻게 설렘 가득 그려낼 것인가 라는 걸 잊지 않아야 한다. 그게 아니면 멜로를 기대했던 시청자들 앞에 범죄 스릴러를 내놓는 당혹스러움이 만들어질 수 있으니.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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