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은 만물박사 돼야··· 비대면 사회 분위기도 어렵지만 수당도 현실적으로 부족”
서울시에는 지방행정의 모세혈관 역할을 하는 통장들이 1만2490명에 달한다. 단순히 기초단체의 정책을 주민들에게 홍보하는 것을 넘어 지역민원과 불편 사항을 해결하는 등 현장 최일선에서 뛰고 있다. 그중에서도 강남구는 통장이 774명(7월 기준)으로 가장 많다. 삼성2동의 통장 3명을 동주민센터에서 만나 업무 등을 들어봤다.
◇ 통장은 ‘만물박사’… 업무에 대중없어
강남구 통장협의회 연합회장을 맡고 있는 최경호(72)씨는 “통장은 ‘만물박사’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다양한 주거 형태와 직업을 지닌 주민들을 상대해야 하는 만큼 해박한 지식을 가져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 그래야 주민과 행정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통장들은 한 달에 한 번씩 경찰들과 함께 야간방범에 나서거나 독거어르신 등 복지사각지대를 찾아내 구청에 조치를 요청하는 등 다양한 업무를 하고 있다. 통장이자 총무인 이경희(51)씨는 특히 올해 장마에 대비해 빗물받이를 청소한 일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이씨는 “이면도로 하수구에 있는 빗물받이 곳곳에 쓰레기가 쌓여 있었다”며 “청소를 마치고 물고기 모양 스티커를 붙여 담배꽁초를 버리지 않도록 했다”고 말했다. 통장들은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면 위험 지역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단체 채팅방에 곧바로 올린다. 올해 삼성2동에 침수 지역이 발생하지 않은데 큰 역할을 했다.
최씨 역시 자전거를 타고 관내를 돌며 거리에서 불법 유흥 전단지 1000여장을 수거한 일을 떠올렸다. 그는 “삼성2동에는 지하철역이 다섯 군데나 있어 불법 전단지도 많다”고 말했다.
통장 부회장인 윤우선(69)씨는 일하다 주민들과의 친밀감이 높아진 점을 꼽았다. “통장을 하다 보니 일반 주민들이 모르는 정보를 잘 알게 됐어요. 우산 수리나 칼갈이 등 유용한 생활 정보를 주변에 알려주니까 주민들이 ‘윤 통장님’을 찾아 이것저것 묻고는 해요.”
◇ 대면 접촉 꺼리는 사회 분위기에 고충
통장들은 모두 ‘통장일’의 어려움에 대해 같은 이야기를 했다. 주민들이 대면 접촉을 꺼려 곤란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라는 것. 최 씨는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기에 통장들이 주민들에게 마스크를 직접 전달한 적이 있다”며 “코로나인 상황에서 전염도 걱정됐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일하는데 ‘놓고 가라’는 등 면박을 받을 때면 서운한 감정도 들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주민들의 직업군이 다양하다 보니 시간대를 맞추기 어렵다는 점이 특히 고충이라고 했다. 그는 “아침에 방문하면 이른 아침부터 왜 왔냐고 타박하는 주민도 있다. 퇴근 시간인 저녁 8시쯤에 맞추려고 하면 왜 늦은 시간에 왔느냐고 말하는 어르신도 있었다”고 했다. 통장으로선 거주사실조사 등 가가호호 방문해 본임임을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 만큼 피로감이 높다. 윤씨 역시 전입신고 사후조사를 위해 방문했는데 “동사무소에 등록해서 끝난 일인데 집에 왜 찾아오느냐”고 핀잔을 받은 일이 있다.
이씨는 주민들이 통장에 대해 잘 모르는 현실을 문제로 꼽았다. “시골에서는 이장 등의 역할이 뭔지 어느 정도는 알아요. 하지만 서울에서는 통장이 무슨 일을 하는지를 모르니까 협조를 받기 어려운 것 같아요. 통장에 대해 주민들에게 많이 홍보해줬으면 좋겠어요.”
◇ 동기 부여 필요… ‘수당 현실화’ 급선무
통장에게는 매달 기본수당으로 30만원이 지급된다. 3년 전까지 20만원이던 수당이 10만원 인상된 것이다. 하지만 통장들은 현실적으로 수당이 부족한 편이라고 입을 모았다. 상해보험이나 통장 자녀 장학금 제도 등 지원책은 있지만 그것만으론 역부족이라는 설명이다. 통장 역할에 충실하도록 하려면 동기부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씨는 “수당 인상이 아니더라도 주민들과 직접 대면을 하는 만큼 인플루엔자(독감) 예방 접종 지원 등의 혜택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최씨는 “주민 면담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개인 전화번호를 놓고 오는데, 업무용 전화를 지원받으면 좋겠다”고 했다. 윤씨는 “주민에게 내가 통장임을 인증할 수 있는 확실한 증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통장들은 삼성2동에 30대 통장이 한 명뿐이라는 사실을 들며 동기부여가 필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최씨는 “강남구 22개동 통장회장들은 통장들이 전력을 다하게 하기 위해선 수당 현실화가 필수라고들 말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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