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의 '인술 발자취'를 엿보다

장해봉 시민기자 2023. 9. 12.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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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동구 초량동에 우리나라 당대 최고의 외과 의사이자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린 성산 장기려 박사를 기념하는 더 나눔센터가 있다.

'장기려 기념관 더 나눔센터'는 평생 가난한 이웃에게 나눔을 실천하고 인술을 펼친 그의 뜻을 기리기 위해 2013년 개관했다.

장기려 기념관 더 나눔센터에는 그가 생전에 사용하던 물건이 전시돼 있다.

기념관은 옥상 사택에서 살던 장 박사의 생전 모습을 상상하기에 딱 좋을 만큼 자그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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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동구 초량동에 아주 소박한 '기념관'
가난한 환자 진료 의료기기 등 생전 물품 전시

부산 동구 초량동에 우리나라 당대 최고의 외과 의사이자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린 성산 장기려 박사를 기념하는 더 나눔센터가 있다.

‘장기려 기념관 더 나눔센터’는 평생 가난한 이웃에게 나눔을 실천하고 인술을 펼친 그의 뜻을 기리기 위해 2013년 개관했다. 1911년 평안도에서 태어난 장 박사는 1928년 송도고보를 졸업하고 1936년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졸업했다. 그 후 외과의사 백인제의 제자로서 수련했다. 당시 병원에 입원 중이던 소설가 춘원 이광수가 장기려를 알게 되어 소설 ‘사랑’의 주인공 안빈의 모델로 삼았다는 설이 유력하나, 장 박사는 춘원이 창작한 소설 속의 인물이 아니라며 부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부산 동구 초량동 ‘장기려 기념관 ’전경.


그는 1943년 우리나라 최초로 간의 윗 조각을 떼어내는 수술인 간암 설상 절제 수술에 성공했다. 1947년 평양의과대학, 김일성종합대학의 외과 교수를 지냈다. 1950년 12월 한국전쟁의 혼란 중에 처자를 두고 차남 장가용과 월남했고,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과 교수가 됐다. 이듬해 부산으로 피란 와서 영도구 남항동에 무료진료 기관인 복음병원(현 고신의료원의 전신)을 설립, 피란민과 행려병자들을 위한 진료를 했다. 1976년까지 25년간 복음병원 원장으로 근무하면서 1968년에는 청십자 의료보험조합을 만들었다. 수많은 영세민에게 의료복지 혜택을 주기 위한 기틀을 마련했으며, 1975년 청십자 의료보험조합 직영의 청십자병원을 개설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막사이사이상(사회봉사 부분)을 수상했다.

인술을 펼친 장기려 박사 사진과 안내판.


장 박사는 1974년 한국간연구회 창립을 주도하여 초대회장을 맡았다. 간 대량 절제술에 성공(1959년)한 10월 20일은 ‘간의 날’로 지정되어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2006년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헌정됐다. 그는 부산 생명의 전화 설립, 장애자재활협회 부산지부 창립에도 앞장섰다.

장 박사에 관한 일화는 수없이 많다. 그는 수술비가 없는 환자를 위해 자신의 돈으로 수술을 하기도 했다. 병원비를 못 내서 퇴원을 못 하는 딱한 사정을 듣고 밤에 병원 문을 열어주고, 차비까지 주며 몰래 환자를 내보낸 적도 있다. 그러다 보니 평생 자기 집 한 채 가지지 못하고 병원 옥상 사택에서 살았다. 정부에서 이산가족 상봉에 특혜를 주려 했으나 끝끝내 거절하고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다 북한에 두고 온 가족을 만나지 못한 채 1995년 겨울 새벽에 세상을 떠났다.

장기려 박사가 사용한 물품들.


장기려 박사가 수상한 막사이사이 상장과 메달.


장기려 기념관 더 나눔센터에는 그가 생전에 사용하던 물건이 전시돼 있다. 기독교 신앙에 기반해 65년간 인술을 실천한 그의 인품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의사를 한 번도 못 보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뒷산 바윗돌처럼 항상 서 있는 의사가 되겠다’라는 명언도 남겼다. 기념관은 옥상 사택에서 살던 장 박사의 생전 모습을 상상하기에 딱 좋을 만큼 자그마하다. 더 나눔센터 인근에 동구 이바구골목이 있으며, 청마 유치환 우체통도 멀지 않은 곳에 있어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부산 원도심의 풍경도 같이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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