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보험 청구간소화법’이 뭐길래…보건의료단체도, 의협도 모두 “반대”
이른바 ‘실손보험 청구간소화법’(보험업법 개정안)을 둘러싼 찬반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정부와 보험업계는 가입자 편익을 높일 수 있다고 찬성하고 보건의료·환자단체와 의료계는 정보 유출 우려 등을 들어 반대한다.
무상의료운동본부·보건의료노조·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등은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간 보험사의 환자 정보 약탈법”이라며 국회에 보험업법 개정안 처리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13일 전체회의에서 해당 법안을 상정한다.
지난 6월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한 보험업법 개정안의 골자는 실손보험 계약자·피보험자(환자) 등이 보험금 청구를 위해 요양기관(병·의원)에 필요한 서류(진료비 내역 등)를 전자적 형태로 보험회사에 전송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요청을 받은 요양기관은 전송 대행기관(중계기관)을 거쳐 보험사에 정보를 전송한다.
지금은 환자가 실손 보험료를 청구하려면 진료 이후 병원이나 약국에서 서류를 발급받은 뒤 팩스나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 등으로 보험사에 제출해야 한다. 법 개정이 이뤄지면 이런 절차 없이 환자의 서류를 바로 보험회사로 보낼 수 있다. 보험사도 서류 접수 작업 등의 업무가 줄어든다. 법 개정을 찬성하는 쪽은 절차가 간편해지면 소액 청구가 늘어나고 결국 가입자가 이익을 본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청구되지 않은 실손 보험금은 2512억원으로 추정된다.
무상의료운동본부 등은 “환자의 정보가 데이터베이스화 가능한 전자 형태로 더 손쉽게 보험사로 넘어간다”면서 “보험사들은 이 정보를 활용해 질병 위험이 클 것으로 추정되는 환자들의 새로운 보험 가입을 거절하거나 보험료를 인상하거나 보험금 지급 거절 등을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장 소액 보험료는 지급이 늘 수 있으나, 고액 보험료는 보험사가 거절하는 사례가 늘 것이라 본다.
단체들은 또 공적 보험인 건강보험 체계를 흔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향후 보험사와 의료기관이 보험료 직불체계를 만든다면 의료기관은 보험사가 지정한 진료만 주로 해 ‘미국식 의료보험 체계’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 6월 정무위 전체회의에서 “지금까지 종이서류로 하던 것을 전자적으로 하자는 것, 딱 그것 하나만 달라지는 것”이라며 개정안에 중계기관의 정보 집적·목적 외 사용을 금지하는 내용을 명시했다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도 환자 의료정보 유출이나 정보를 집적해 악용하는 사례를 방지하게끔 법안을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중계기관은 거쳐 가는 기관일 뿐이고 문제는 보험사가 의료정보를 쌓아가면서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보험료나 가입조건을 조정할 수 있다는 점”이라며 “소액 보험료를 쉽게 받을 수 있게 하려면 제출해야 하는 서류 자체를 간소화하는 방식도 있지만 보험사는 정보 수집은 포기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대한병원협회·대한치과의사협회·대한약사회 등 의약단체들도 이 법안이 “민간보험사의 편익만을 위한 법”이라며 반대한다.
김종민 의협 보험이사와 이정근 의협 상근부회장도 이날 오전과 오후 각각 국회 앞에서 ‘병원과 약국의 정보 전송 강제하는 보험업법 반대’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였다.
의약단체가 반대하는 이유는 보건의료·환자 단체와 조금 다르다. 이들은 ‘중계기관’에 대해서 정부·보험업계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그간 법 개정 검토 과정에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나 보험개발원 등이 언급됐는데 보험개발원은 보험사들의 견해를 대변한다는 점에서 반대 목소리가 나왔다. 의료계 안에선 평가기관인 심평원이 비급여 진료 정보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결국 개정안에서 중계기관은 시행령(대통령령)에서 정하도록 했다. 의협 등은 의료기관의 직접 정보 전송을 포함해 전송 방식의 자율 선택이 가능하도록 법안에 명문화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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