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관·독립운동가·서예가…'근대 문예인' 오세창을 다시 보다

김예나 2023. 9. 12.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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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1786∼1856)가 썼다고 하는 '손자'(孫子)는 필체가 독특해 진위에 대한 의견이 끊이지 않았다.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위창 오세창(1864∼1953)은 '손자'에 찍힌 인장이 김정희의 제자인 신헌(1810∼1884)의 것이라 밝히고 김정희의 진품으로 결론 내렸다.

오세창은 오래된 금속이나 돌에 새긴 글씨인 금석문(金石文)을 수집하고 연구한 부친의 영향을 받아 서예, 회화, 금석문 등 여러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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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서거 70주년 맞아 소장품 등 56점 전시로 선보여
옛 글씨 연구하며 독창적 서체 창안…탁월한 감식안으로도 주목
'근역석묵' 오세창이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금석문 탑본을 오려 붙여 두 첩으로 편집한 첩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추사 김정희(1786∼1856)가 썼다고 하는 '손자'(孫子)는 필체가 독특해 진위에 대한 의견이 끊이지 않았다.

누군가는 김정희에게 이런 글씨가 없다고 했고, 다른 이는 김정희 글씨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위창 오세창(1864∼1953)은 '손자'에 찍힌 인장이 김정희의 제자인 신헌(1810∼1884)의 것이라 밝히고 김정희의 진품으로 결론 내렸다.

위창 오세창 노년 시절 모습이 담긴 사진 [독립기념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는 '만약 가슴에 수백, 수천 권의 금석(金石)과 관련한 저서를 담지 않은 사람은 이 글씨를 변별할 수 없다'는 글을 남겼다. 오랜 기간 옛것을 연구하며 감식안을 키워 온 자신감이었다.

3·1운동에 참여한 애국지사이자 우리 서화 연구에 힘쓴 오세창을 조명한 전시가 열린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오세창 서거 70주년을 기념해 상설전시관 2층 서화실에 그의 생애와 예술 활동을 보여줄 수 있는 유물 56점을 선보인다고 12일 밝혔다.

'기미독립선언서' 독립선언서 왼쪽 두 번째 줄 상단에 적힌 '오세창'의 이름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근대 격동기를 살아온 오세창은 다양한 직업을 거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조선 말 역관이었던 오경석(1831∼1879)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부친을 이어 1879년 중국어 역관이 된 이후 언론인, 독립운동가, 서예가 등으로도 활동했다.

통번역 업무를 담당한 관원 명단을 적은 '통문관 관안', 1906년 신문사 사장으로 있을 때 발행한 '만세보', 1919년 3·1운동 때 인쇄된 '기미독립선언서'에는 오세창의 이름이 등장한다.

상형문자로 쓴 '어·거·주' 국립중앙박물관회 기증품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전시장에는 옛 글씨를 모으고 정리한 수집가로서의 면면도 볼 수 있다.

오세창은 오래된 금속이나 돌에 새긴 글씨인 금석문(金石文)을 수집하고 연구한 부친의 영향을 받아 서예, 회화, 금석문 등 여러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자료가 '근역석묵'(槿域石墨)이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금석문 탑본(비석, 기와 등에 새겨진 글씨나 무늬를 종이에 그대로 떠냄) 78건을 수록한 첩에는 469년 고구려가 평양 성벽을 축조하면서 새긴 '고구려 평양성 석편' 탑본도 포함돼 있다.

김정희가 쓴 '손자'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박물관 관계자는 "석편은 1855년 오경석이 수집해 오세창에게 전해진 것으로, 이후 일부 결실되었으나 '근역석묵'의 탑본은 결실 전 모습으로 가치가 높다"고 설명했다.

전시에서는 오세창 특유의 독창적인 서체도 만나볼 수 있다.

그가 1929년 쓴 것으로 알려진 상형문자로 쓴 '어·거·주'는 보는 순간 문자가 아닌 그림이 연상되는 작품으로, 마치 고대의 그림 문자와 같은 특성을 잘 살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정희가 쓴 '손자'에 대한 오세창의 의견 (1933년)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전서로 쓴 우리나라 문인의 시'는 이번에 처음 공개하는 유물로, 바다 동쪽에서 물결이 일렁이는 모습을 보는 사람이라는 뜻의 '영동관란도인'(瀛東觀瀾道人)이라는 호가 적혀 있다.

박물관은 오세창이 정치적 사건에 휘말려 일본에 망명했던 1902∼1906년에 쓴 호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박물관 관계자는 "오세창의 손길이 남아있는 여러 작품을 감상하며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이루고자 했던 '법고창신'(法古創新) 노력을 느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서로 쓴 우리나라 문인의 시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한편, 박물관은 서화실의 전시품을 바꾸면서 새로운 유물 16건도 함께 선보인다.

책장에 서책과 문방구 등을 그려 넣은 그림인 책가도(冊架圖)로 이름난 화가 이형록(1808∼1883 이후)이 그린 8폭 병풍과 그가 이응록으로 개명한 뒤의 인장 등을 볼 수 있다.

'책가도'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ye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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