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핵 오염수’ 선동의 진짜 노림수[시평]

2023. 9. 12.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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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창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과학적 근거 없이 반일 캠페인
日 수산물 수입 막고 항의 사태
내부 심각할 때 관제 민족주의
시진핑 체제의 내부 불안 확산
일본 때리기 통해 불만 돌파구
한국 동조 땐 한미일 결속 약화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처리수(일본 정부 명칭 ‘처리수’) 방류를 둘러싸고, 중국의 반발이 거세다. 최근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과 한중일 정상회의에서 리창(李强) 총리는 오염수를 ‘핵오염수’라고 비판하면서 일본을 몰아붙였다. 중국은 이미 일본의 수산물 수입을 모두 중단했고, 후쿠시마(福島)현에 전화로 항의하는 등 적극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에 반대하는 국가는 중국·러시아·북한 등 소수다. 그중에서 중국의 반발은 유독 강하다. 중국의 강력 반발에 대해 일본 내에서는 ‘과학을 도외시한 중국은 국제적으로 고립될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내심으로는 중국의 강한 비판에 당황하는 측면도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검사 결과조차도 인정하지 않는 중국의 태도는 그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30여 년의 중일 관계 역사를 돌아볼 때 중국의 대일 강경 태도는 국내 정치가 배경인 경우가 있었다. 우선, 중일 관계가 최악이었던 1990년대 후반은 중국 국내 정치와 연관성이 컸다. 당시 국가주석은 장쩌민(江澤民)이었다. 1989년 6월 톈안먼(天安門) 사태 이후 최고 실력자 덩샤오핑(鄧小平)에 의해 발탁된 장은 당과 군의 기반이 약했다. 역사문제에서 장이 앞서 반일 내셔널리즘을 주창하면서 장의 권력은 안정화될 수 있었다. 또, 2012년 9월 중·일이 대립한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문제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중국이 일본의 국유화에 반대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 장 전 국가주석에게서 권력을 장악한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은 대일 관계 개선에 전향적이었다.

그러나 경쟁자들의 비판을 저지하기 위해 후 주석은 강경한 대일 노선으로 전환했다. 중국의 권력자가 일본 때리기로 전환하면 중국의 관제 미디어들도 동원돼 일본 비판에 가세한다. 반일(反日) 시위가 확산하면서 일본계 공장과 백화점, 음식점 습격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런 상황은 한중 관계에서도 이미 경험한 바 있다.

오염수 문제도 시진핑(習近平) 정부가 자국 내 불만을 밖으로 돌리기 위해 지나치게 일본 때리기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현재 중국은 부동산 불황이 심해지고, 청년실업률도 20%를 넘어 사회적 불안감이 확산하고 있다. 또한, 미국의 대중 압박으로 중국의 성장은 한계를 보인다. 오염수에 대한 반일 감정은 시진핑에게는 국내의 불만을 잠재우기 좋은 소재임이 분명하다. 이를 입증하듯 최근 중국 왕이(王毅)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은 국제회의에 참석할 때마다 오염수 방류에 대한 일본 정부의 대응을 비판해 왔다.

그러나 중국도 오염수 문제로 계속 중일 관계를 파탄으로 가져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난 7일 열린 아세안 회의에서도 그 조짐은 보였다. 리 총리는 아세안 회원국 간 정상회의에서는 오염수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으며, 그 비판의 톤도 억제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와도 정식 회담은 아니지만, 대화를 했다. 국내적 이유로 중국이 오염수 문제에 강경 대응을 한다면 협상하기보다는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우리나라는 중·일 간 갈등을 양국 문제로만 봐선 안 된다. 복합적 상호 의존과 경쟁이 공존하는 국제 관계에서는 모든 문제가 연계돼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염처리수 문제를 둘러싼 중·일 간 갈등은 언제든 한일, 한미일 관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최근 한미일 3국은 캠프데이비드 공동성명을 통해 안보 협력을 강화하고 대중(對中) 관계를 염두에 둔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전략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른 중국의 위기 인식도 높아진 건 분명하다.

따라서 북중러는 최근 한미일 안보 협력 강화에 대한 맞대응 성격으로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이런 시기에 한국이 오염처리수 문제를 감정적으로만 대응한다면 중국의 의도대로 한국과 미일과 관계를 소원(疏遠)하게 하는 결과를 빚을 수 있다. 오염처리수 문제는 감정 차원을 넘어 국제정치 역학에도 영향을 준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런 만큼 우리는 과거 중국의 행동 패턴을 분석해 냉정히 대응할 필요가 있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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