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컵 보증금제 정착되기도 전에…환경부 전국시행 철회 방침
국내 일회용컵 사용량 '수백억 개'…작년 16개 브랜드서만 7억2천개
(서울=연합뉴스) 이재영 홍준석 기자 = 환경부가 일회용 컵 보증금제 시행 여부를 지방자치단체 자율에 맡기기로 했다.
법을 고쳐야 해 환경부 방침이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일회용 컵 사용량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제주와 세종에서 보증금제가 성과를 내고 다른 지자체나 기업이 호응하는 조처를 내놓는 가운데 장관이 공언한 제도 전국 시행을 사실상 포기하는 방침을 두고 비판이 거셀 전망이다.
특히 지난달 감사원이 환경부에 '법 취지대로 보증금제 전국 확대 시행 방안을 마련하라"라고 요구했는데 이후 환경부가 아예 법을 바꿔버리겠다고 나선 모양새라 논란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12일 환경부에 따르면 환경부는 자원재활용법을 고쳐 일회용 컵 보증금제 시행 여부를 지자체가 정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세종과 제주 외 지역에선 2025년 12월 2일 전 보증금제를 시행하도록 규정한 '1회용 컵 보증금 대상 사업자 지정 및 처리지원금 단가 고시' 개정도 검토 중이다.
일회용 컵 보증금제 시행 여부를 지자체에 맡기는 자원재활용법 개정안은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권명호 의원이 지난달 대표발의해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소상공인 부담과 제도 미적용 매장과 형평성이 개정안 발의 이유다.
일회용 컵 보증금제는 프랜차이즈 카페와 제과점에서 일회용 컵에 음료를 받으려면 보증금 300원을 내도록 하고 컵을 반납하면 보증금을 돌려주는 제도다.
일회용 컵 재활용률을 높이고 사용량은 줄이는 것이 목적이다.
녹색연합에 따르면 지난달 3일부터 한 달간 시민 271명이 거리에 버려진 일회용 컵을 수거해보니 2천385개에 달했다. 이 가운데 40%인 968개가 로고 등이 인쇄되지 않은 투명한 플라스틱 컵이었는데 제대로 분리배출만 됐다면 고품질 재생 원료가 됐을 것이다.
법대로면 작년 6월 10일 전국적으로 일회용 컵 보증금제가 시행됐어야 했으나 식음료 프랜차이즈 가맹점주와 여당이 부담과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를 이유로 반발했고 결국 환경부는 시행을 6개월 미뤘다.
환경부는 지난해 12월 2일 제주와 세종에서만 일회용 컵 보증금제를 시행했다.
제도 시행 유예와 지역 축소는 법적 근거가 없는 행위였다.
감사원은 일회용 컵 보증금제 시행 유예 과정 공익감사를 벌인 뒤 "현재까지 제주와 세종에서만 보증금제가 시행돼 자원재활용법상 시행일을 준수하지 못했고 법 취지가 충분히 달성되지 못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환경부 장관에게 "법 취지에 맞게 보증금제를 전국적으로 확대해 시행하는 등의 방안을 마련하라"라고 요구했다.
국내에서 한 해 사용되는 일회용 컵은 '수백억 개'로 추산된다.
2019년 환경부 발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일회용 컵 사용량은 2019년 기준 294억개에 달한다. 식품접객업이나 집단급식소에서 사용된 일회용 컵은 84억개(종이컵 37억개·합성수지컵 47억개)로 추정됐다.
일회용품 사용량을 줄이고자 환경부와 협약을 맺은 16개 커피 전문 브랜드에서 지난해 사용된 일회용 컵은 7억2천702만여개에 달한다. 코로나19 대유행 직전인 2019년(약 5억4천957만개)에 견줘 2억개 가까이 증가했다. 2020년(약 7억1천406만개)이나 2021년(약 6억7천916만개)과 비교해도 작년 사용량이 많았다.
작년 16개 브랜드에서 회수된 일회용 컵은 사용량 9%인 약 6천430만개였다.
일회용 컵 사용량은 늘고 회수는 저조한 상황에서 대책이 보증금제이다.
보증금제 성과를 보면 제주와 세종에서 지난달까지 약 314만개 일회용 컵이 판매업장에 돌아왔다. 사용량 대비 반환량인 반환율은 지난달 둘째 주 61%로 시행 첫 달 12%에서 급상승했다.
특히 관광객이 많아 제도 정착이 어렵다고 평가된 제주에서 반환율 상승세가 두드러졌다. 제주 반환율은 6월까지 30%대에 그쳤으나 7월 50%대로 올라섰고 지난달 둘째 주엔 63%에 이르렀다.
제주시가 6월부터 보증금제 미참여 매장에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하는 등의 조처를 단행한 것이 주효했다고 평가된다.
당국이 의지만 있으면 제도를 정착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제주와 세종에서 일회용 컵 보증금제가 성과를 내면서 다른 지자체들도 호응하는 조처를 내놓고 있다.
서울시가 7일 '일회용 플라스틱 감축 종합대책'으로 2025년부터 일회용 컵 보증금제를 시행하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서울시는 제주와 세종 사례를 참고하고 환경부와 협력해 보증금제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친환경 경영'이 화두인 기업들도 일회용 컵 보증금제에 호응하고 있다.
최근 하나은행은 환경부 탄소중립포인트제에 참여해 자사 애플리케이션으로 컵 보증금을 반환받으면 탄소중립포인트 300원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일회용 컵 보증금제는 전 정부에서 처음 추진됐지만 현 정부 국정과제에도 포함됐고 한화진 환경부 장관도 여러 차례 '전국 시행'을 약속한 제도다.
환경부는 제주와 세종 성과를 1년간 모니터링해 전국 시행일을 정하기로 했는데 전국 시행을 사실상 포기하는 방침을 내놓으면서 '말 바꾸기 논란'이 예상된다.
지자체에 일회용 컵 보증금제 시행 결정권을 넘겼을 때 모든 지자체가 적극적일 것이라고 기대하긴 어렵다.
환경운동연합이 최근 전국 지자체 일회용품 대응 계획을 평가했는데 평균 점수가 5점 만점에 2.63점에 그쳤다. 4년마다 선거로 지자체장이 바뀔 수 있는 현행 민선 체제에서 지자체장이 조례로 규제를 도입하기는 쉽지 않다.
플라스틱 규제는 세계적 추세다. 전 세계 국가 14%가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법으로 금지한다. 대표적으로 프랑스는 2021년 식당 등에서 의료목적을 제외한 일회용 컵과 컵 뚜껑 등의 사용을 금지했다.
국제사회는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 구속력 있는 국제협약을 마련키로 했고 한국은 이를 선도하겠다며 성안을 위한 최종 회의까지 유치한 상황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카페 등의 부담과 컵 무인회수기 설치비 등 (보증금제 시행) 비용이 효과를 넘는 것으로 판단된다"라면서 "국정감사 전에 환경부 방침을 확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jylee2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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